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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이버 공간의 '여혐'이 새삼 관심을 끈다. 왜 '새삼'인가. 1990년대 PC 통신 시절에도 '성기드립'같은 성희롱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남성 아이돌을 축으로 형성된 여성 팬덤에 가해진 가혹한 선입견과 혐오 발언이, 여성 운신의 폭을 옥죈 흑역사도 빠뜨릴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여혐 자체가 '원데이 투데이'(하루 이틀 혹은 어제오늘)일인 건 아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의 '보X년' '김치녀' 발언 등 일상적 여혐은 예전보다 날것 그대로이며, 그들의 '제2의 천성'이 됐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여혐은 멀쩡한 젊은 남성들에게도 자주 포착된다. 자신의 실명을 걸고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이가 자그마치 16만 명이다.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여혐을 결혼시장에서 낙오된 남자들의 절망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다. 타당한 분석이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사진은 위키커먼스 프리이미지.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여혐을 결혼시장에서 낙오된 남자들의 절망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다. 타당한 분석이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사진은 위키커먼스 프리이미지.
ⓒ Allan Aji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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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하게도, 지난 17일 <시사IN>이 내놓은 기획 보도가 장안의 화제였다(관련 기사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와 함께, 여혐을 "날것 그대로 전시하는 쇼윈도"인 일베의 2011~2014년 게시글 43만 개를 수집했다. <시사IN>은 이를 바탕으로 '여성혐오 담론지형'을 그렸다.

<시사IN>은 여혐 문제를 과거 박정희의 산아제한 정책이 낳은 성비불균형까지 확장했다. 이 여파로 결혼시장에서 불리한 입지에 놓인 '남성 잉여세대'들이 상대 여성들의 자긍심 센서를 망가뜨려 '가격을 깎는' 전략을 택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양과 질 모두에서 성불평등으로 더 유리한 남성과, 연애시장에서 주로 상대를 승락하는 성으로서 더 유리한 여성이 쥔 패들을 비교해보면 서로를 이해할 법도 한데 여혐진영은 상대를 관용하지 못함을 지적했다.

한편 진화심리학적으로 남성은 상대의 외모를, 여성은 능력을 추구하는 게 보편적 경향이므로, 경제 불평등 격차가 심해질수록 여성의 승락 기준선(남성의 능력)을 넘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아짐도 지적했다. 여기서 이미 고민됐어야할 공통의 문제는 흥정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것까지 환기된다.

그러나 여혐진영은 애초에 협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사이버 공간에서 스스로의 값어치만 떨어뜨리며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있다는 게 <시사IN>의 결론이다. 필자는 이 같은 해석에 일부 동의하되, 해당 기사의 한계점을 짚고 좀 다른 관점을 소개하려 한다.

'모태솔로'와 '연애고자'들이 왜 여혐을?

약 16만5000여 명이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
 약 16만5000여 명이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
ⓒ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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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의 관점은 일리가 있다. 풍부한 데이터를 수집해 여혐 진영의 대표격 일베를 분석했고, '남성 잉여세대'의 성비불균형과 경제 불평등 문제까지 건드렸다. 또 다양한 사회과학을 동원해, 여혐진영 남성들의 자해적 가격 흥정 전략이 남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공통의 문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가격 흥정 문제로 여혐을 충분히 조망할 수 있을까. 중요한 의문이 있다. 여혐이 적극적인 가격 흥정의 발로라면, 왜 아직 데이트 경험이 전무한 어린 '모태솔로'나 이미 '연애고자'가 된 남성들까지 여혐에 열광할까.

일베는 10대 중반~30대 중반 연령층이 두텁다.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고, 새롭게 유입되는 10대 중후반도 만만치 않다. 30대 무렵부터는 사회진출을 하면서 점점 빠져나간다. 일베 급부상 기점인 2012년 대선 전후,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용 연령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대선 직전에는 21~25세(35%), 16~20세(22%), 26~35세(19%) 순으로 나타났고, 직후에도 22~27세(37%), 16~21세(36%), 28~33세(12%) 순으로 나타났다.

2012년 대선 직전과(왼쪽) 직후(오른쪽), 일베 이용자들이 자체 설문조사한 결과를 통해 연령층을 추론해볼 수 있었다.
 2012년 대선 직전과(왼쪽) 직후(오른쪽), 일베 이용자들이 자체 설문조사한 결과를 통해 연령층을 추론해볼 수 있었다.
ⓒ 일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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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출 시기를 고려하면 여혐이 결혼 시장에 놓인 절박한 '남성 잉여세대'들의 적극적 가격흥정 전략으로만 포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직 연애 경험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10대와 20대 초중반을 무시할 수 없다. "여성혐오의 원체험"이라는 데이트 좌절경험은 둘째치고 데이트 경험 자체가 전무한 경우도 가능하다.

데이트 경험 자체가 결핍된 사례는 제한적이지만 데이터도 있다. 지난 2014년 2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4년제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5.3%가 모태솔로였고 저학년(25.4%)일수록 더 그랬다. 이러한 경향성을 적용하면, 일베 이용자 중에도 나이가 적을 수록 모태솔로들이 더 많으리라 추정된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사회가 거세시킨 '연애고자'들의 탄생이다.

취업포털 사람인 설문조사 결과. 남녀 공히 '결혼' 포기 비중이 높다.
 취업포털 사람인 설문조사 결과. 남녀 공히 '결혼' 포기 비중이 높다.
ⓒ 사람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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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2030세대 28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눈길을 끈다.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중 포기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1660명(57.6%)이 '그렇다'고 응답한 가운데, '결혼'(50.2%, 복수응답), '내 집 마련'(46.8%), '출산'(45.9%), '연애'(43.1%), '대인관계'(38.7%) 순으로 나타났다.

그 중 남성은 '결혼'(53.2%, 복수응답), '연애'(48.5%), '내 집 마련'(47.2%), '출산'(41.9%), '대인관계'(40%) 순. 여성은 '출산'(50.7%), '결혼'(46.5%), '내 집 마련'(46.3%), '대인관계'(37.1%), '연애'(36.6%) 순으로 나타났다.

포기의 이유는 결혼은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49.8%, 복수응답), '현재 수입이 없거나 너무 적어서'(43.1%), '웬만큼 돈을 모아도 힘들어서'(40.9%), '제대로 잘 할 자신이 없어서'(35.1%), '가난 등을 대물림 하기 싫어서'(31.6%), '취업이 늦어져서'(29.3%) 순으로 대부분 경제적 이유였다.

물론 설문이 '포기'라는 말을 써서, 이 상황을 무슨 개인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오인시키고 있다. 성비 불균형과 경제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거세'를 가릴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미 뿌리 깊은 2030세대의 좌절과 환멸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결혼시장의 '적극적인' 가격흥정은 여혐 폭발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는 되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인터넷의 여혐을 움직이는 힘은 '반친목' 정신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사비니의 여인들>. 1799년에 제작 됐으며, 현재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루브르 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사비니의 여인들>. 1799년에 제작 됐으며, 현재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루브르 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 자크 루이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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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질문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여혐이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걸까. 여기에 답을 내리려면 김치녀, 결혼, 사랑 등과 같은 키워드(텍스트)나 데이터 말고도 2%가 더 필요하다. 바로 '콘텍스트(Context)' 즉 맥락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맥락을 강조하면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우선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단 전쟁은 보통 남자 쪽이 일으킨다. 고대 로마의 건국왕 로물루스도 이웃 도시 사비니를 침략했다. 도시에 여자가 적어 인구를 늘리고자 사비니의 여자들을 납치했다. 사비니 남자들은 빼앗긴 딸과 여동생들을 데려오고 로마에 복수하고자, 준비를 단단히 해 쳐들어갔다. 물론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사비니 장군의 딸이자 로물루스의 부인이 된 헤르실리아를 필두로 사비니의 여인들이 출산한 아이들을 데리고 뛰쳐 들어 싸움을 말렸다. 이제 모두 '친족'이라는 필사적 설득이, 남자들의 무기를 내려놓게 했다.

<사비니의 여인들>을 그린 화가도 기존의 남성은 '공적 가치를 대변하는 영웅'이고 여성은 '나약하고 사사로운 존재'라는 편견을 넘어, 여성의 화해와 연대의 중재자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터넷은 화해의 그림이 안 나온다. 왜? 간단하다.

랜선과 와이파이로는 섹스가 불가능해 후손을 낳을 수 없다. 따라서 '친족'관계도 탄생할 수 없는 것이다. 섹스가 아니라도, 이건 인간의 사랑과 연대 문제다. 초연결사회에서, 누리꾼들은 손쉽게 서로와 세상의 소식을 접할지언정 위치는 각자의 스마트폰과 모니터 앞에 머문다. 소식은 쏟아지는데, 거리감은 크니 웬만한 일이 아니면 꿈쩍 않는 공감 결핍과 냉소가 '습관화' 된다. 냉소를 넘어 혐오까지 치달은 사례를 우리는 이미 안다. 일베다.

일베의 조상격이라고 볼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바로 디씨인사이드(아래 디씨)다. 디씨인사이드의 바른 표기는 본래 '디시인사이드'이나, 문화인류학자 이길호는 '디씨'로 썼다.

"디씨는 디氏다."

일베 뿐 아니라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디씨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 그 디씨의 역사는 '여성의 피'로 얼룩져 있다. 뿌리 깊은 '반친목' 정신이란 게 있다. 이걸 지키려고 디씨인들은 수많은 여성들을 희생시켰다.

이길호는 일베가 디시 일각의 저열한 문화들을 흡수하며 독립된 누리집으로 탄생하기 전, 디씨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수년 간 참여관찰을 거쳐 <우리는 디씨>를 세상에 내놓았다. 여혐 풍조의 뿌리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사료니까, 주목해보자.

"(디시에서) 모든 친목 행위는 처단되고, 어떤 유순함의 태도도 거부된다. 평화는 퇴출된다. 여자는 추방된다. … 특히 강력한 남성적 에토스(정서적 태도)가 지배하는 갤러리들(게시판)에서 여성 갤러는 극단적으로 배척되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고, 하급의 존재로 치부되며 결국에는 퇴출당한다. 이 최악의 여성 혐오를 접할 때 많은 외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이들을 구제불능으로 여기고 접근을 꺼리게 된다.

…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이곳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부패의 상징은 명백히 '친목 행위'다. … 사람들은 언제나 곳곳에 숨어있는 '친목 종자'들을 발본색원해 처단하려고 애쓴다. 친목 종자는 악의 근원이며 모든 친목 행위는 집단의 붕괴를 초래한다. 사람들은 '사회적 유대' 따위에 가능한 한 최대의 조소를 날린다. … '내가 현실에서 무엇이다'라는 말들은 언제나 무시될 뿐…." - <우리는 디시> 본문 206~208쪽 중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이들 집단도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면 이들에게도 세상의 모든 사회들이 마주하는 공통의 고민거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 어떤 인간 동물도 랜선을 통해 교미를 할 수는 없다." - <우리는 디시> 본문 207쪽 중에서

이길호는 '공동체의 존속'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디씨를 일종의 거대한 원시 씨족 공동체와 흡사하다고 진단한다. 여기에 속한 수많은 주제별 갤러리들(게시판)은 하위 씨족 공동체들이다.

당시 각 부족의 원로들인 올드비(오래된 이용자)들은 공동체를 존속시키기 위해 후손이 필요했고, 꾸준히 유입되는 뉴비(새 이용자)들을 부족의 관습에 익숙해지는 기간인 "닥눈삼"(닥치고 눈팅 3일의 준말)을 거치게 해 동화시켰다.

이 끈기의 시간을 거치기도 전에 기존 이용자들의 일부가 형성한 '친목 카르텔'의 벽을 실감하고 떠난다면, 그들은 한낱 "유입종자"(부족에 동화되지 못한 유입인구를 낮잡는 말)일 뿐이라는 생각도 지녔다. 이 사상이 곧 여성들의 피를 불렀다.

"어느 날 갑자기 여성 갤러가 등장하면 사람들이 특유의 공격성과 이동성을 상실한 채 모두 여성 갤러의 관심을 끄는 데 집중했다. 그것은 사회적 유대 관계를 낳고 … 단단하고 고정된 테두리가 형성됐다.

… 어느 뉴비가 이 틈바구니에 끼려면 그는 기존 올드비들이 굳건히 세워놓은 관습의 장벽을 타고 넘어야 하는데, 그는 이제 그의 개별성으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 안 일부 요소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올드비, 더 정확히는 기존 관계들의 노예가 된다. 실제로 사람들은 갤러리의 이런 부패 과정을 목격했으며, 어느 "위대한 갤러리"(막장 갤러리를 말한다) 몰락 과정의 증인이 됐다.

이제 사람들은 갤러리가 생존하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확고한 결단과 선언, 양보나 타협 없는 실행을 요구한다. 모든 친목 종자들은 처형돼야 한다. 모든 여갤러들은 퇴출돼야 한다." - <우리는 디시> 본문 212~213쪽 중에서

(관련 기사 : 2010년 이미 예견된 '일베'의 탄생)

"나의 습관의 한계가 나의 사랑의 한계다"

헤르만 안톤 스타이크(1803~1860)가 묘사한 마녀사냥(화형) 당하는 잔 다르크.
 헤르만 안톤 스타이크(1803~1860)가 묘사한 마녀사냥(화형) 당하는 잔 다르크.
ⓒ 헤르만 안톤 스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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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공동체 존속의 주역이 아닌 방해자일 뿐이라는 '전도된 인식'은, 사이버 공간에 여혐 정서를 급격히 확산시켰다. 여성들의 운신의 폭은 좁아졌고, 거짓말처럼 2000년대 중후반 쭉빵카페·삼국카페(소울드레서·쌍화차·화장발)·여성시대 등 여초카페들이 급부상했다. 여성들은 자신들 만의 '안식처'를 건설했다. 남녀는 격리된 채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나간다. 후일 그들은 우연히 서로의 실체를 알게 되고, 큰 '문화충격'을 겪는다.

한편 디시의 갤러리들의 퍼져있던, 부정적 요소들을(지역차별·우경화·관심병·병맛·막장 등) 집약해 일베도 곧 독립했다. 물론 반친목 정신과 여혐 정서는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리고 일베 운영자 '새부'는 다음과 같은 공지를 공포한다.

"서로 너무 친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서로 매일 출근길에 보이는 아저씨 정도로 여기시고 거리를 유지해주세요. 그리고 너무 네임드 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적당적당히 해. 과도한 친목질은 커뮤니티를 망치는 주된 요인입니다."

적당과 과도의 기준이 모호하게 들리지만, 새부는 그 모호함을 "매일 출근길에 보이는 아저씨 정도"라는 이상을 제시해 해소한다. 실제로 일베에서 '친목'과 '친목질'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게시판의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면, 매번 일베에서 하지 말아야할 행동들을 열거한 팝업창이 뜬다.

여기에 "친목 ㄴㄴ(안 된다는 뜻)"가 명시돼 있다. 적당과 과도의 구분은 의미 없다. 이용자들 간의 연대는 그냥 "ㄴㄴ"다. 이제 그들만의 "놀이터"의 공식 룰이 선포됐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여성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차라리 '혐오스러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베에서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자료들을 모아놓는 '일간베스트' 게시판을 검색하면, "친목과 보빨(남성이 여성의 성기를 애무하듯, 친절하게 구는 태도를 낮잡는 말) 실태를 고발한다" "보밍(여자라 밝히는 걸 낮잡는 말)+친목+보빨러 퇴치했다!" "친목 보빨 이제 그만하고 철수하자" "친목질에 보밍 밥 먹듯 하는 보X년 저격" 등의 글이 쏟아진다.

결국 일베의 여혐은 분명 '관습'의 영향이 드리워져 있다. 해당 관습을 규정지은 운영자 '새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에게는 SNS에 '싫어요' 버튼 하나를 만드는 데도,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을 심사숙고하는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의 '인문적 통찰'의 반의 반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사실 '친목 vs. 반친목' 논쟁은, PC통신 시대부터 존재한 뜨거운 감자다(이만제:1997). 현재 상당수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성향을 가리지 않고(엄격함의 차이는 있을망정), '반친목 관습'을 지닌다. 반친목 관습은 '카르텔'을 제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지만, 한편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없애 공감 결핍을 초래하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지나치게 의식적인 반친목이라면 더 그렇다.

흥미로운 예외사례는 있다. 일부 여초커뮤니티나 디시 애니메이션 혹은 인물(연예인) 갤러리 등이 그런 사례다. 여기서는 '반친목'을 명목상 내세우는 경우에도, 연대가 자주 발견된다. 공통의 애환이나 취미가 뚜렷할 경우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최근 급부상한 메갈리아는 여혐에 노출된 피해자라는 애환이 연대를 만들고 있으며, 여성주의에 관한 학구적 분위기나 행사 같은 습속들도 연대를 보조하는 듯 보인다.

반면 일베는 앞서 다루었듯 연대가 강하게 통제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일베밖 불특정 다수의 젊은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김치녀' 사례를 수집에 나서는 문제에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까? '공동체 존속'의 측면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다르지도 않다.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공동체가 상호 갈등·경쟁이 심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만드는 불안을 피하려는 관습을 발동한다고 설명한다.

일시적으로 '만인의 1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조성해, '희생양'을 끌어들이는 의식을 거행해 참여자들의 '자긍심'을 회복시키는 전략이다. 물론 희생제의를 정당화시킴으로써 더 적극적으로 미워하고자 유리한 명분·논리가 덧붙는다. 하지만 흐름을 움직이는 원초적 힘은 감정이다. 여혐을 움직이는 감정은 그럼 뭘까. 모멸감이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모멸감.

흥미롭게도, <시사IN>의 담론지형 분석도 여혐진영이 '사랑'만은 놓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며, '사랑'도 인정의 한 유형이라고 설명한다. 사랑받지 못하면 타인의 심리적 지지와 배려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상실되고 불안하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사회가 조장하는 각자도생의 살육경쟁 하에서라면 더 그렇다. 물론 사람들은 울분을 느끼며 기득권들을 향해 존엄함을 인정해달라는 투쟁을 통해 공동체의 모순들을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헬조선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식 억압이 민초들을 짓누른다. 사람들은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하게 되고, 사랑이 전적으로 개인들만의 문제이기만 한 것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다.

감정은 응어리진다. 특히 "센 놈에게 붙어라" 생존 전략을 신천한,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 생존자) 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내면화"(<시사IN> 2014년 9월 29일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중에서)하는 것이 일베라면 더 그렇다. 그들은 이제 국가의 부조리한 체제, 또 커뮤니티의 부조리한 관습을 그대로 내면화한다. 그러나 조작된 감정이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분출되어야 한다.

응어리진 감정은 엉뚱하게도 수평폭력으로 튄다(물체를 누르면 옆으로 퍼진다).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김치녀'와 '여성'에게 말이다. 물론 연애를 못해본 어린 10대들도 '김치녀'라는 말 자체가 주는 강렬함에 이끌려, 섣불리 감정을 투사하고 여혐을 "그냥 노는"것처럼 즐기려고 할 수도 있다.

"제가 여혐에 가담한 고딩들한테도 신상 털려보고 욕 먹어 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혐오 발언의 자극성이 그들에게 매력을 가져다 주는 것 같기도 해요."

'김치녀' 페이지의 게시물에 비판적인 댓글을 달다가, 일베 사용자로부터 '신상이 털린' 한 익명의 누리꾼이, 기자와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관습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이 관습이 결혼시장의 절박한 맏형부터 철없는 10대까지 '김치녀' 화형식에 모여들게 만든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마녀사냥이다. 그녀들도 불평등한 체제 속에서 나름의 생존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고민됐어야할 것은 결국, 폭력적인 '구조'와 '관습(습관)'이다. 그럼 여혐은 뭘까.

"그것은 경제 불평등 구조의 토양 위에, 박정희가 뿌린 산아제한이라는 씨앗이, 희생양 찾기 풍속이라는 기후조건과 만나, 여성들의 피를 양분으로 흡수해 싹틔운 비극이다."

결국 "나의 습관의 한계가 나의 사랑의 한계다." 감정표현을 막는 꼰대질도 습관이고, 불평등 구조의 무비판적 답습도, 응어리져 엉뚱한 마녀사냥을 일삼는 것도 습관이다. 습관의 무한회귀는 남녀 모두에게 도움 안 된다. 습관이 감옥이라면, 여혐은 무기징역이다. 이제 그만 여기서 탈출하자. 탈출구가 있을까? 그렇다.

[새로운 사랑] '좋아요' 누른 우리는 과연 따봉충일까
[새로운 일상] '헬조선' 최후의 탈출구 죽창은 과연 분풀이 불과할까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설국열차와 르네 지라르>(박재영 / 문학과 영상 제14권 4호 / 문학과영상학회 / 2013)
<폭력과 성스러움>(르네 지라르 / 민음사 / 2000 / 1만8000원)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르네 지라르 / 문학과지성사 / 2004 / 1만8000원)
<한국 PC통신 문화에 관한 연구: Pierre Bourdieu의 장, 아비투스, 문화실천 개념을 중심으로>(이만제 / 경희대학교 학위논문(박사) / 1997)
<우리는 디씨>(이길호 / 이매진 / 2012 / 1만7000원)
<증여론>(마르셸 모스 / 한길사 / 2011 / 2만3000원)
<윤리적 노하우>(프란시스코 J. 바렐라 / 갈무리 / 2009 / 1만1000원)<인정투쟁>(악셀 호네트 / 사월의책 / 2011 / 2만3000원)
<한국인의 심리학>(최상진 / 학지사 / 2011 / 1만7000원)
<화병연구>(민성길 / 엠엠커뮤니케이션 / 2009 / 1만5000원)
<이제는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천관율 / 시사IN / 2014.9.29)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천관율 / 시사IN / 2015.9.17)
<여성 향한 외침, "왜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김도훈 / 시사IN / 2015.9.17)



태그:#여성혐오, #일베, #메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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