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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연방 상·하원 합동연설을 생중계하는 CNN 갈무리.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연방 상·하원 합동연설을 생중계하는 CNN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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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사적인 미국 의회 연설에서 다양하고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과감하게 쏟아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현지시각) 미국 연방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적 양극화, 이민자 수용, 사형제 폐지 등을 완곡하면서도 강력하게 주장하며 미국 정계에 큰 울림을 던졌다.

역대 가톨릭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의회 연단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위대한 이 (아메리칸) 대륙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영어로 연설을 시작했다. 교황은 우선 미국 정계가 뜨거운 논란을 벌이고 있는 기후변화 대책부터 거론했다.

교황은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막고 환경보호를 위해 자연 자원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라며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미국, 특히 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호소했다.

교황은 최근 국제사회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난민·이민자 사태에 대해서도 "미국은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됐고, 여기 있는 여러분 상당수도 이민자 가정의 후손"이라며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이 난민 사태 해결에 먼저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교황은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남이 네게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도 남에게 하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이 대륙의 사람들은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이 한때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편견 없는 이민자 수용을 촉구했다.

이어 교황은 양극화, 총기규제, 사형제도 폐지 등 미국을 둘러싼 주요 이슈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주장을 펼쳤다. 교황은 "어떠한 종교도 개인적 망상이나 이념적 극단주의 형태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라며 "우리 모두가 모든 근본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개인과 사회에 큰 고통을 끼치려는 사람에게 무기를 파는 이유는 슬프게도 단순히 돈 때문"이라며 "이는 무고한 피에 흠뻑 적셔진 돈"이라고 비판하며 미국의 총기규제를 완곡하게 요구했다.

또한 "모든 생명은 신성하고, 인간은 신으로부터 천부적인 존엄을 부여받았다"라며 "유죄 판결을 받은 죄인을 재활시킨다면 사회도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며 미국의 사형제도 폐지를 제안했다.

특히 교황은 "우리를 둘로 나누는 어떠한 형태의 양극화에도 맞서야 한다"라며 "정치는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와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 정치의 금권화를 향해 강력한 경고를 던졌다.

12차례 기립박수... 사안에 따라 절반만 일어서기도

교황은 "미국에 하나님의 은총을 주소서"라고 외치며 약 50분간의 연설을 마쳤다. 이날 연설에서 교황은 총 37차례의 박수를 받았고, 이 가운데 청중이 일어서는 기립박수는 입장할 때를 포함해 12차례였다. 일부 청중은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을 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나올 때면 '절반의 기립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교황이 총기규제, 기후변화 대책 등을 거론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립박수를 보낸 반면에 공화당 의원들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이 "결혼과 가족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을 비롯해 근본적인 사람이 관계가 의문시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가족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할 때는 공화당 의원들이 먼저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이민자 추방을 주장하는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 CNN 방송에 출연해 "교황의 말은 아름답고, 또 그를 존중하지만 불법 이민자는 범죄를 일으킨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기후변화 대책에 대해서도 "일자리가 취약해지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의회 앞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을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더 나아가 워싱턴 D.C. 도심 듀폰 써클에서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교황의 연설을 생중계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교황의 과감한 '정치 행보'.. 엇갈린 시선

하지만 교황의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렸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교황의 연설에 대해 "이민자 옹호, 환경호보 촉구, 사형제 폐지 등 진보 진영이 선호하는 현안을 힘있게 강조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존 F. 케네디가 대선에서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비방받았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톨릭 교황이 의회 연단에 오른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미국에서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세속적 정치의 전쟁터(미국)가 교황의 도덕적 권위를 손상할 수도 있다"라며 "수많은 정치 세력이 자신이 정치적 도덕성과 이익을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용하려고 한다"라고 우려와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여성은 CNN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간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가톨릭은 여전히 여성 사제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라며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불평등과 이중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의회 연설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인트 패트릭 성당 미사 집전, 불법 체류자와 노숙자를 만나 함께 식사하는 일정을 마친 뒤 뉴욕으로 이동해 25일 유엔 창립 70주년 기념 총회에서 연설한다.

이날 교황은 노숙자들과의 만남에서 "하느님 아들도 이 세상에 올 때는 집 없는 사람이었다"라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고,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 #미국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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