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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 속의 미술관> 표지
 <책장 속의 미술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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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문맹을 위한 책"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6세기 교황이었던 그레고리 1세라고 전해진다. 이 말을 증명하는 것은 동굴벽화다.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로 추정되는 스페인 북부의 엘카스티요 동굴벽화는 약 4만 년 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하는데 벽화 속의 들소와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술이 순수하게 미술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미술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이용되거나 고도의 정치적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삼강행실도>라든가 불교의 탱화, 기독교의 성화 등이 대표적이다.

'불후의 작가 70인의 캠퍼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책장 속의 미술관>을 읽었다. 중국인이면서 미술교사 출신이기도 한 쉬즈룽이란 이름의 저자가 쓴 책이다. 몇 년 전에 읽으면서 재미를 느꼈는데, 다시 읽어보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은 르네상스의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등의 유파가 16세기와 17세기를 지나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사실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를 만나고 양차 세계대전을 거쳐 유파는 상징과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현대회화로 진화한다.

르네상스시대의 두 거장에 비해 다소 쳐지는 실력을 가졌던 라파엘로는 <대공의 성모> <베일의 성모> <시스티나 성모> 등 성모와 아기 예수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정작 본인은 문란한 성생활로 성병에 걸려 요절했다는 설의 주인공이 됐다고 한다. 성스러움과 속됨 사이에서의방황이 창작의 원천이 된 것일까.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7세였다고.

르네상스의 정신은 북유럽의 독일과 네덜란드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졌다. 특히, 독일의 알프레드 뒤러는 나무판에 유채로 자화상을 그렸는데(1498년), "스스로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북유럽 사람들의 자기 성찰과 이성적 사고와 관계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설명은 뒤러의 자화상이 인류 최초의 자화상이기 때문에 덧붙여졌다.

바로크 미술의 태동

바로크 미술의 탄생배경에는 신교와 구교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 내용은 "인간은 오로지 성경에 입각해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으므로 성직자가 중개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구교(가톨릭)의 심한 착취에 시달리던 독일은'로마교황의 암소'라고 까지 불릴 정도였다고 하는데 독일, 네덜란드, 제네바 등지로 신교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실질적인 커다란 이유는이 나라들이 가톨릭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도모했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구교, 가톨릭은 신교의 세력확장이라는 대세에 대항하기 위해 그림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사실을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최후의 심판에 대한 공포심과하느님에 대한 경외감을 대중에게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명암대비법을 창조한 카라바조, 바로크 회화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루벤스, 스페인의 5대 화가중 하나인 벨라스케스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프랑스 혁명을 부른 로코코 미술

독일, 스페인, 플랑드르와 같은 가톨릭 국가들이 바로크 양식을 발전시키는 동안 루이 14세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던 프랑스는 이들 나라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뒤이어 집권한 루이 15세가 국사를 돌보지 않고 향락에 빠져 지냈는데 이때 정치활동의 중심이 궁에서 살롱으로 옮겨져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이 전반적으로 퇴폐적인 경향을 보이게 됐다고 한다.

프라고나르의 <그네>라는 작품을 보면 당시 귀족들의 생활이 어땠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네를 타고 있는 귀부인 아래쪽엔 손을 뻗은 남자가 치마 속을 훔쳐보고 있고 귀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한쪽 다리를 들어올리고 있다.

정권 실세의 사위가 또 다른 정권 실세의 인척들 그리고 잘 나가는 연예인들과 함께 마약파티를 벌였다는 최근 기사를 보면서 나는 프랑스에서 혁명 전에 유행했다던 로코코 미술을 떠올렸다. 당시 화가들이 빵 한 조각이 없어서 굶어 죽는 국민들을 외면하고 흥청거리던 왕족과귀족들을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당시의 왕족과 귀족들의 말로에는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약파티를 벌인 당사자들과 이를 심판해야 할 검사, 판사, 언론, 정치인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속담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을 살고 있다.

책을 읽으며 새로 발견한 사실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집 방안에서 굴러다녔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책을 회상하게 하는 그림이 있다. 이 책을 보다가 알게 됐는데 그 표지의 그림이 낭만주의 시대 화가 드라클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이다. 오스만 제국의 잔혹한 통치에 견디다 못한 그리스 사람들이 1821년 독립을 위한저항운동을 하게 됐는데 그리스는1832년 드디어 독립을 쟁취했다고 한다.

그림은 1822년 터키인들이 키오스섬에서그리스인들 2만3000여 명을 학살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은 그로부터 약 100년 후 일어나는데 그 전쟁을 다룬 소설이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였던 것이다. 

색채와 색조의 조화를 최우선 가치로 둔 화가는 인상파의 시조로 알려진 마네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를 보고 에밀졸라는 퇴폐적이라고 고개를 돌렸으나 세잔은 달랐다고 한다. "색조 자체가 매우세밀하고 정확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피카소가 그를 "현대회화의 아버지"라고 칭송한 이유를 알 수 있는 일화다.

순간의 느낌 만큼이나 구도를 중시했던 드가는 인상파의 뛰어난 화가라고 한다. 현대회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의 제자 툴루즈로트렉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화가가 바로 피카소라고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이 말은 4만 년도 훨씬 전에 그려졌던 스페인 엘 카스티요의 동굴벽화가 증명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도 요즘의 정치가 증명하고 있다. 오래 남을 인류의 유산들은 그림과 글뿐이 아니라 정신의 계승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민초들의 행동이었다. 그 역사 속 민초들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다. 오늘날에도 버젓이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사는 로코코 미술 속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책장 속의 미술관> 쉬즈룽 지음, 황선영 옮김, 눈과 마음, 2008년 출판



책장 속의 미술관 - 불후의 화가 70인의 캔버스

쉬즈룽 지음, 황선영 옮김, 눈과마음(스쿨타운)(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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