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학기가 시작된 만큼 우리(5학년)는 다시 교실을 꾸려야 했다. 한 학기 내내 우리 반을 지탱해 준 '학급의회'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그 첫 번째였다. '학급의회'라 함은 행정부, 감사부, 정책부(인성부, 환경부, 학습부) 세 축으로 나뉜 우리 반만의 자치 기구다. 아이들은 학급의회를 통해, 우리 반의 모든 일을 함께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단, 제한점은 한 가지. '모두가 행복한' 정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급 의회의 부서 조직은 딱 두 번 이뤄진다. 한 번은 3월, 다른 한 번은 9월이다. 학기마다 새롭게 개편된다고 보면 된다. 학급 의회 재조직에서의 규칙은 단 하나. 내가 1학기 때 활동하던 부서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부서 조직 전, 내가 1학기에 활동하던 부서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하니, 아이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갈렸다.

"오예! 난 인성부 가야지!!"
"나도, 나도!"
"선생님, 왜 했던 데 또 하면 안 돼요? 인성부 또 할래요."
"아 진짜, 나 인성부 또 하려고 했는데..."

인기 폭발 인성부, 왜?

인성부의 8월말 회의록, 교실놀이에 대한 전체 투표가 눈에 띈다.
 인성부의 8월말 회의록, 교실놀이에 대한 전체 투표가 눈에 띈다.
ⓒ 고상훈

관련사진보기


인성부를 갈 수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두 그룹의 반응이 확실히 갈린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인성부의 인기가 좋은 것일까?

때는 4월 말로 돌아간다. 4월 말 학급의회에서 감사부는 정책부(인성부, 환경부, 학습부)의 정책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놨다. '월말 학급의회 때 투표해 최고, 최악의 정책을 뽑는다'가 바로 그것이었다. 단, 최고의 정책은 폐지가 불가하고 작은 선물을 받으며, 최악의 정책은 어떤 방법으로든 수정을 거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이후 학급의회마다 진행된 5월, 6월, 7월 정책 투표에는 3연속으로 '최고의 정책'으로 뽑힌 정책이 있었다. 바로 인성부의 '선생님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교실 놀이 하기' 정책이었다. 스물여섯 표 중 매번 스무 표 이상이 나올 정도로 항상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정책이었다. 수업시간이 한 시간 빠진다는 것, 친구들과 재밌는 놀이로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교실 놀이 정책의 치명적 매력이었다.

이 치명적 매력의 정책을 가지고 있는 인성부를 모두가 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성부를 선택할 수 있는 18명 중 무려 12명이 손을 들었다. 2대 1이라는 높은 가위바위보 경쟁률을 뚫고 단 6명만이 선택 받았다.

인성부 뿐만 아니라, 정책부와 감사부 그리고 행정부까지 조직을 마친 뒤에서야 아이들은 개인 회의록을 받아들었다. 학급의회의 개회는 다음 날이었다. 아이들은 하루 동안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부서가 가지고 있는 기존 정책을 스스로 평가하고 대안이나 새롭게 제시할 정책들을 찾게 된다.

이튿날, 2시간 동안의 학급의회가 시작됐다. 각 부서별로 모여,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함께 하고 개선과 혹은 폐지를 하고 때로는, 우리 반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나도 부서별로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돌고 돌아 인성부에 도착한 순간, 나는 인성부의 회의록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응? 교실 놀이를 폐지하겠다고?"
"아니, 아직 폐지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전체 투표로 부쳐서 결정할 거에요."
"왜? 왜 갑자기 폐지를 하겠다는 거야?"
"교실 놀이 정책이 원래는 우리가 서로 놀면서, 다 친해지려고 만든 거였는데 교실 놀이 할 때마다 몇 명은 막 싸우니까 없애려고요."

정말 충격적인 선택이었다. 인성부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정책을 스스로 없애려 할 것이라는 생각은 감히 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본래 교실 놀이 정책이 가지고 있었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정책부터 생각하는 아이들

사실, 4월 말 학급의회에서 인성부는 서로 서먹서먹한 친구들 간에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담임선생님과도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한 번 교실 놀이 하기'를 제안했다. 그러나 경쟁의 요소가 가미된 교실 놀이에서는 아이들의 지나친 승부욕과 사소한 갈등들이 몇 가지 문제점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도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긴했지만 교실 놀이 폐지를 논하지는 않았다. 너무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성부의 이번 결정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마음이 깊고 생각이 깊다는 생각이 주변을 맴돌았다.

결국, 교실놀이 존폐 여부를 두고 전체 투표에 부쳤다. 예상치 못한 교실놀이에 대한 논란으로 다른 아이들은 웅성거렸다. 결과는 교실 놀이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인성부의 이 시도는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우리 반의 '학급의회'가 가진 취지를 더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급의회의 단 하나의 제한점, 만든 정책은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난 이번 학급의회를 통해서 아이들이 한 발 짝 더 성장했다고 믿고 있다. 단순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를 보게 된 순간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