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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효창운동장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 사진을 본다. 정면 오른쪽에 흑대리석으로 된 안내석이 서 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셔질 자리로 1946년에 조성된 가묘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유해가 없는 '가짜 무덤'이 가묘다. 안 의사의 유해는 어디에 있을까. 가묘는 '주인'을 맞을 수 있을까.

안 의사의 사형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에 집행되었다. 105년이 지났다. 1세기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안 의사는 이국 땅 차디찬 곳에 묻혀 있다. 국민들로부터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유해 봉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눈에 띄는 게 없다.

 뤼순의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간양록
ⓒ 청동거울
<뤼순의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간양록>은 김월배 다렌외국어대학교 교수가 "10년 동안 안중근 의사의 유해에 관하여 연구하고 추적한 현장의 세세한 기록"(13쪽)이다. 안 의사 유해 매장지에 대한 당시 신문 보도와 사료, 뤼순 감옥 수감 당시 중국 측 근무자나 수감자 관련 자료와 그들의 증언, 1970년대 뤼순 감옥 주변 거주자들의 증언 들이 실려 있어 사료적 의의가 큰 책이다.

책명의 '간양록'은 조선 중기 문신 강항(1567~1618)이 정유재란 때 왜군 포로가 되었을 당시를 기록한 책 이름인 <간양록>에서 빌려온 것이다. '간양'은 흉노에게 포로로 잡혀간 한나라 소무(蘇武)의 충절을 뜻한다. 소무, 강항, 안중근으로 이어지는 애국충절의 계보를 강조한 저자의 뜻이 제목에 담겨 있다.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아야 하는 이유

저자가 안 의사의 유해 찾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제의 부당했던 안중근 의사 재판으로 안 의사의 유해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를 우리 국민들에게 사실대로 알리기 위해서"(13쪽)다. 그래서 이 책에는 안 의사의 유해에 대한 모든 자료와, 중국 내에서 진행된 발굴 사업의 성과,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에 참고가 될 만한 모든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다.

저자는 안 의사 유해의 매장지가 뤼순, 곧 '관동도독부 감옥서'라고 단정한다. 일제가 남긴 '관동도독부 사형집행 보고서'와 '안 사형 집행전말서',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도쿄일일신문> <만주신보> <만주일일신문> 등 다수의 당대 신문 들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많은 기록을 보면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뤼순과 관동도독부 감옥서 공공묘지가 아닌 다른 곳에 묻혔다는 주장은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히신 자리까지 입증할 순 없지만, 1910년 3월 26일 오후 1시에 관동도독부 감옥서 공동묘지에 묻히신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수많은 이견들이 떠돌던 안중근 의사 유해의 도쿄 매장설, 이토 히로부미 무덤 밑 매장설, 하얼빈 공원(현 조린 공원) 매장설, 바다 수장설 등은 모두 근거가 없다. (92쪽)

저자가 안 의사의 의거 이후 공판과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사정들을 서술한 대목을 보면 일제가 안 의사(의 의거)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1909년 10월 30일 처음 열린 제1회 심문에서 일본 미조부치 검찰관은 안 의사로부터 '이토 히로부미 죄상 15개조'를 듣고 안 의사를 '동양의 의사'라고 말했다. 당시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에서는 안 의사 의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무기징역 판결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 외무성이 12월 2일 "안중근을 극형에 처하라"라는 비밀명령을 내리면서 바뀌었다. 공판은 1주일간 6회에 걸쳐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이 시기 안 의사가 일제 사법기관에 맞서 벌인 투쟁을 저자는 '안중근 의사 관동도독부 공판 투쟁기'로 명명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일제는 안 의사를 사형대에 세웠다. 조선통감부의 통역 촉탁(通譯囑託) 소노끼 스데요시(園木末嘉)가 보고한 <안중근 사형 집행 상황>에 순국 상황, 순국 후 유해 매장 시간과 매장지역, 유해 교부와 관련된 상황 등이 명기되어 있다.

이보다 앞서 두 아우(안정근, 안공근-기자 주)는 오늘 사형집행의 취지를 전해 듣고 그 시체를 사정해 얻어 내어 곧 귀국하기 위해 여장을 갖추고 감옥서에 출두할 준비 중이라는 보고에 접했으므로 급히 수배를 해 그들의 외출을 금하고 형의 집행 후에 이르러 소환한 다음 전옥으로부터 피고의 시체는 감옥법 제74조 및 정부의 명에 의해 교부하지 않는다는 취지를 언도하고 특별히 시체에 대한 예배는 허가한다는 뜻을 유고(諭告)한 데 대해 두 아우는 몹시 분격하면서 (중략) 울부짖으며 쓰러진 채 막무가내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경찰의 힘을 빌려 실외로 끌어내어 다시 백방으로 간곡히 타이른 결과 간신히 약간 정상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대로 정거장으로 호송해 두 명의 형사 경호 하에 오후 5시발 대련행 열차로 귀국시켰던 것입니다. (하략) (88쪽에서 재인용)

2014년 1월 19일, 중국 정부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열었다. 개관 직후인 1월 20일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거세게 항의했다.

극에 달한 안중근 의사 의거 폄하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빌렘 신부와 면회를 갖고 있는 안중근(맞은편) 의사. 왼쪽에 안 의사의 두 동생 정근·공근 형제가 함께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 순교자 안중근 의사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빌렘 신부와 면회를 갖고 있는 안중근(맞은편) 의사. 왼쪽에 안 의사의 두 동생 정근·공근 형제가 함께하고 있다.
ⓒ 안중근의사숭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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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최근 일본 위정자들 사이에서 안 의사에 대한 폄하와 왜곡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 살인자, 범죄자로 보는 왜곡된 시선들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무덤에 "한국의 독립운동가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라는 비문이 버젓이 새겨지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들일 것이다.

저자는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로 보는 스가 요시히데 류의 시각이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단면만을 본 단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을 바로잡음으로써 동양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본이 대외정책을 시정하지 않는 한 동양의 평화와 한국의 독립은 요원할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해법을 따르지 않고 1910년 한국의 강점, 1931년 만주사변에 의한 중국 동북지역 지배,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확대,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다가 1945년 8월 세계의 보복을 받고 원자탄에 의하여 전쟁에 패망하고 말았다. (53쪽)

스가 요시히데 류의 '망언'은 자국의 부당한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신군국주의'를 향해 치닫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의 반동적인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 정부는 제대로 대처하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라고 말했다. '건국' 관련 내용을 운운하는 게 올해로 3년째라고 한다.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대한민국 수립 66주년"이라고 했다.

'건국 67주년' 식의 표현은 이명박 정부 이후 뉴라이트와 보수 우파들이 추진하고 있는 '건국절'과 동궤의 역사의식을 갖는다. '건국절' 추진 세력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역사를 한사코 외면하려 한다. 박 대통령이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끈질기게 밀어부치고 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 시안에서 임시정부 법통성 관련 내용이 제외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권 입맛에 맞는 역사만을 가르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뤼순 감옥 지하 어느 자리에 묻힌 안 의사가 무덤을 박차고 나올 일들이 아닐까.

<뤼순의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간양록>(김월배․김종서 지음 / 청동거울 / 2015.8.15. / 319쪽 / 1,8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뤼순의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간양록

김월배.김종서 지음, 청동거울(2015)


태그:#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뤼순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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