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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쌓인 비어있는 교실
 먼지가 쌓인 비어있는 교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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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들어섰다. 5개월 동안이나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교실인데도 8월 한 달 방학했다고 참 낯설게 느껴진다. 구석에는 그새 먼지도 내려앉았고, 텅 비어버린 교실은 허무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먼지가 쌓인 내 명찰을 집어 들고서야 내가 이 교실의 담임선생님임을 실감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서 책상 줄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제야 책상 사이를 오가며 장난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개학 첫 날 시간표를 교실 칠판에 붙이다 보니 문득, 아이들과 수업을 하던 때가 눈에 선했다. 비어있는 신발장은 아이들이 체육시간, 자기 먼저 운동장에 나가겠다며 서로 밀쳐대는 장면을 머릿속에 희미하게나마 그리게 하고 있었다. 먼지는 교실에만 내려앉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 오후 2시 반이 되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지금처럼 교실은 텅하고 비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번도, 지금처럼 아이들이 빠져나가 텅 비어 있는 교실이 허무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똑같이 비어있는 교실이지만 내가 지금 더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 나의 아이들과의 기억에도 먼지가 쌓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이들의 기억에도 한 달 간의 먼지가 소복이 쌓였을 것이다. 나는 2학기 시작을 이 먼지를 툴툴 털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내가 다시 행복했던 우리 반을 즐겁게 떠올리면서 시작할 수 있게 말이다.

개학을 하루 앞둔 아이들 책상에는 활동지 하나가 놓였다. 간단한 활동이었다. 우리 반 친구를 한 명 한 명 만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건넨 뒤에 사인을 받으면 된다. 물론, 내 이름도 있다. 우리 반 구성원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사인을 받고 나면, 그걸로 활동은 끝이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개학날 아침. 복도 끝에서부터 시끌시끌한 게 우리 반이 '분명'하다. 다른 반은 앉아서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안녕! 진주야, 우리 악수하자!"
"그래, 안녕!"

악수를 나누는 두 친구 사이에 웃음이 쏟아진다. 인사를 건네고 악수만 할 뿐인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꺄르르 꺄르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오랜 친구를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반가움 같은 걸까? 나 아니면, 몰라보게 달라진 친구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당황스러움 같은 걸까? 어쨌든, 아이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악수해요!"
"그래, 성진이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선생님은요?"
"잘 지냈지! 선생님은 방학동안 태국 다녀왔어!"
"우와, 근데 태국이 어디에요?"

그냥 단순하게 인사를 나누고 사인만 받는 것은 아니었다. 방학동안 했던 일, 머리 스타일은 왜 이렇게 했는지, 뭘 먹고 갑자기 이렇게 키가 컸는지, 왜 이렇게 새까맣게 타버렸는지. 아이들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 서로의 기억들에 먼지를 털어내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시끌시끌한 아이들이 가득 차 있는 교실에는 행복함이 그득그득 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서로 인사들을 나누었는지, 대부분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제 개학식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웬일?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더니 신발장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개학 첫날부터 지각한 친구의 때 아닌 팬 사인회(?)가 열렸다. 개학식 시작한다고 아이들을 겨우겨우 뜯어말리고 자리에 앉히고서야 완전히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설마, 선생님 이름 까먹은 사람은 없겠지? 우리 반으로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선생님,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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