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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이 중동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탐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튀니지의 봄바람이 그곳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토록 긴 독재정권을 묵인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도 애초에 애초에...

끝도 없는 질문을 자신들에게 던지며 조국 시리아를 등진 이들의 행렬은 흡사 한국전 당시의 피난 행렬과도 같았다. 긴 내전과 IS의 도발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한 그 긴 여정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국에서 가장 지척인 마케도니아와 터키와 이탈리아로 향했다. 그 후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 따위를 구체적으로 계획할 경황도 없었다. '그저 무사히 유럽의 끄트머리에라도 닿을 수만 있다면...'이 당장 그들 앞에 놓인 절실한 희망일 뿐이었다. 너무 절박한 탓에 사람들은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조각배에도 올랐고, 국경을 넘기 위하여 냉동차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난민의 숫자는 올해 들어 급증하기 시작했다. 주로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및 아프리카는 물론 발칸반도에서도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 신문인 <엘 파이스>는 지난 8일 그리스에 도착한 6만 6000명과 헝가리에 도착한 5만 4000명, 이탈리아에 온 4만 명을 포함해 총 16만 명의 난민들이 유럽에 재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은 올해 난민 신청자가 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번 주 말에 1만 8000명이 도착한다고 발표했다.

난민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신문
 난민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신문
ⓒ 아미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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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등지로부터 난민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국가들을 최전선국가(front countries)라고 부른다. 그리스, 터키, 마케도니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이들은 유럽 내에서 결코 부국에 속하지 않으며 나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기존에 설치된 난민캠프를 더 이상 확대하거나 추가 난민을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리능력이 한계에 이르니 난민캠프 내 처우 또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일부 난민캠프에서는 식량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통제에 과격한 저항으로 맞서거나 대규모 탈출을 감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난민을 양산하는 국가 중 올 들어 단연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 시리아다. 유럽연합이 각국이 분담해서 지원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입을 모으는 한편 시리아로 군대를 파견해 근본원인을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이유다.

에이란 쿠르디, 그 영원해질 이름

난민을 분담해서 수용하자는 유럽연합의 쿼터제 제의를 일부 국가에서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올 즈음이었다. 터키 해변으로 어린소년의 주검이 떠밀려왔다. 한 눈에 보아도 덩치가 아주 작은 소년이었다. 소년의 시신을 수습한 구조대원도, 그 모습을 촬영한 사진기자도, 그 사진을 본 사람들도 모두 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의 신원과 사인이 밝혀졌다. 무려 스무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들이  타고 있었던 조각배는 전복되었으며 그 중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익사했다. 소년의 가족도 함께 희생되었지만 탈출한 그 두어 명 가운데에 소년의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에이란 쿠르디, 이제 겨우 세 살이었다. 터키 해안에 엎드려 있는 에이란 쿠르디의 사진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들이었고 누군가의 부모들이었기에 에이란의 사진 한 장은 아이를 죽음의 지경에서 방치했던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때렸다. 에이란 쿠르디의 사진은 난민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얼음장 같았던 세상을 움직였다.

호주는 앞으로 1만2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며 빗장을 풀었고, EU는 12만 명의 난민을 각 회원국에 수용하도록 할당할 것이며 이중 프랑스는 2만 4천 명을 수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상원의원들은 2500명이 지낼 수 있는 현 시리아 난민 수용수준을 최소한 5배 늘리라고 강력하게 정부에 요구했다.

유럽의 일부이면서도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비난을 받았던 영국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내외적으로 '더 위대한 인류애(greater humanity)를 보여주라'는 압박을 받은 영국의 데이빗 카메론 총리도 영국은 이미 시리아 난민 5000명을 수용했지만 2020년까지 2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더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바로 일주일 전 2000명을 더 받겠다고 했던 것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는 또한 "영국은 난민들의 재난과 고통에 머리와 가슴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은 소년 에이란 쿠르디가 천사가 되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른 난민들에게 빛을 내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할 때 종교를 물을 수는 없다

압둘라흐만씨
 압둘라흐만씨
ⓒ 아미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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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라흐만(Abdurahman Ibn Yahya)씨는 순수한 영국인이다. 올해로 환갑을 넘긴 그는 청년시절에 스스로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이슬람식으로 개명도 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이맘으로 재직중이다. 이맘은 이슬람교의 성직자를 일컫는다.

그의 일정은 일주일 내내 빼곡하게 차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무슬림 이민자들이 근무하는 영국 내 회사들을 방문한다. 금요일에는 온종일 모스크에 가서 봉사를 하며, 주말에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대접하기에 분주하다. 직접 이슬람센터를 세운 적도 있었지만 교회와 달리 정부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 접어야했다.

"그 아기가 시리아 난민이라는군요."

잠시의 침묵 끝에 그는 한마디로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난민과 이민자들을 위해 봉사를 해와서 그는 누구보다도 그네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비극이 발생한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일침도 잊지 않았다. 

아직 정식으로 국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카메론 정부가 시리아에서 직접 난민을 영국으로 데려온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치인들이 하는 말은 정치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언제든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고, 늘 그러했다는 뉘앙스였다.

영국 정부는 지금까지 각 지방정부(Council)에 예산을 지원하는 형태로 난민을 구제해왔으며, 그 예산들은 대개 주택지원(Housing benefit)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정부는 더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에 대해 뭐라 답변할 수 없지만"이라고 전제한 뒤 "각국이 (난민문제의 해결이라는) 짐을 나눠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피력했다. 서방 일부 국가에서 크리스천(기독교)이 아닌 난민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발표한 사실을 알리자 그는 매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OO국가일 것 같은데,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크리스천이냐 무슬림이냐를 물어보고 구조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소년 에이란 쿠르디의 시신이 발견된 그날 영국 내 모든 신문의 제1면이 해안가에 엎드려있던 소년의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다인종이 어울려 사는 대도시로부터 한적한 웨일즈의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어디를 가나 온통 그 얘기였다. 굳이 신문을 읽지 않고 뉴스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 10대들까지도 어느새 모두가 아는 사건이 되었다. 

"난민들에게 위험은 팔다리처럼 딸려있는 것"

초등학교 교사인 주디스 앗킨슨(Judith Atkinson)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난민들에게 위험은 팔다리(a limb)처럼 딸려있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하루 속히 평화로운 안식처를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직 음악가였던 마리온 플래처(Marion Fletcher)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난민수용을 위한 청원이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현 영국정부의 난민정책이나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답변을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흔쾌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가정주부들은 가슴은 따뜻했지만 정부의 대외정책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영국의 서민들은, 선거기간이 아닌 시기에, 정부의 정책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는 것마저도 '정치적'이라고 여겼고, 자신이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

영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슈는 오로지 축구와 <브리튼스 갓 탤런트>뿐인 것 같아 씁쓸했지만, 한편으로 자원봉사와 자선을 일상화하는 영국인들이기에 많은 난민이 유입된다 하더라도 큰 문제없이 영국에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품게 된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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