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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이 '청년배당'을 실시하겠다고 하자 '기본소득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본소득'은 좌우는 물론이고 좌파 내에서도 토론과 입장 정리가 필요한 쟁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무산되기는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공약도 기본소득제의 일환이었다. 분명한 것은 모두에게, 조건없이 그냥 주자는 '기본소득'이 이념을 떠나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단계까지 왔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을 단순히 사회복지정책이라고 한정해버리면 그 의미가 상당히 축소된다. 사실 기본소득은 시대 인식에 관한 문제, 노동에 대한 시각, 경제 발전 전략, 사회 문화와 패러다임의 전환 등을 포괄하는 철학에 관한 문제이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바티스트 밀롱도의 <조건없이 기본소득>(바다출판사 펴냄)은 기본소득에 제기되는 오해와 위험요인들을 짚어가며 기본소득제 도입의 정당성을 논증한다. 그에 따르면 19세기에는 노예해방, 20기에는 보통선거권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기본소득이다. 그만큼 기본소득제 도입이 가져올 변화는 전방위적이고, 기본소득제 도입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해 1] 놀고 먹는 '베짱이'들만 늘어난다?

<조건없이 기본소득> 표지
 <조건없이 기본소득> 표지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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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급하는 돈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소득재분배 정책과 확연히 구분된다. 당연히 오해가 많다. '눈먼 돈'이라는 것이다. '놀고 먹는 '베짱이'들만 양산하지 않을까,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준다는데 누가 힘들여 일을 하려고 할까'라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것도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미국에서의 일이다.

기본소득은 최근에 갑작스럽게 생겨난 기획이 아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가족부조 계획의 틀에서 '음의 소득세'를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걷어 저소득자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음의 소득세'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이 계획이 '근로 의욕'이 떨어질수 있다는 반대에 부딪치자 거액의 연구비를 들여 '음의 소득세'가 낳을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영향을 조사했다.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미국 최초의 대규모 사회과학 프로젝트였다.

뉴저지와 펜실베니아 주 6개 도시 1400가구 이상이 4년 동안 '음의 소득세'를 받았다. 결과는 흥미롭다. 노동 양의 감소 현상은 예상보다 심하지 않았다. 이 실험 전체를 분석한 경제학자 마이클 킬리(Michal C. Keely)는 전체 노동시간에서 평균 7~9%가 줄었다고 결론을 냈다.(126쪽) 이것은 생계를 잇기 곤란이 이들이 일이 끝난 후 하던 아르바이트를 줄이거나, 여성 혹은 학업을 마치지 않은 성인들이 노동시간을 줄인 것으로 풀이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사례도 있다. 이번에도 미국이다. 알래스카주에서는 공유자원인 석유 채구에서 생기는 이익으로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설립하고 30년 넘게 주민 전부에게 매년 1000달러에서 3000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한다. 이 주민 배당금은 알래스카주의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기본소득은 시민 각자가 자유롭게 사회에 기여하는 데 필요한 돈을 보장해주는 것"이라며 "기본소득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향후 사회적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충분한 삶의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이기 때문"(102쪽)이라고 강조한다.

[오해 2] 재벌회장과 쪽방촌 노인이 똑같이 받는다고?

무상을 전제로 하는 기본소득은 사회적 존재, 그 자체를 위해 지급되는 돈이다.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조건성'이다. 무상급식 논란 당시 부자집 아이한테까지도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일었는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논리로도 작용한다.

기본소득제는 소득을 받는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고, 모든 소외와 낙인을 남길 우려가 있는 자격조건도 없어야 한다. 저자는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은 원칙의 문제이자 곧 효율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본소득이 효율의 문제인 까닭은 여러 조건을 내걸 경우 빈곤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 시행한 제도가 오히려 많은 이를 열외로 취급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산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면 수령자들은 '가난을 증명해야'하는 고통을 받고 사회적 낙인을 피할 수 없다. 국가가 지불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대상자들의 재산 상태를 일일히 조사하고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결국 사회적 소외를 없애기 위한 빈곤 퇴치제도가 역설적으로 잠재적 수령자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37쪽) 비판한다.

중요한 것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 관계다. 따라서 자립을 위해 지급되는 소득에는 주는 손도, 받는 손도 없어야 한다. 그 소득은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사회와 의존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자립을 보장한다. 각 개인에게 고립되어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생각하는 좋은 삶을 실현하라는 것이며,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즉 '존재' 그 자체를 위한 소득이다. (43쪽)

[오해 3] 기본소득이 '일할 권리'를 박탈한다?

기본소득제에 대해 좌파 안에서도 논란을 빚는 부분이 바로 '일할 권리'에 관한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일하지 않고도 소득을 받을 권리를 도입함으로써 '일할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기본소득이 개인을 사회에 종속시키고 노동의 가치를 욕되게 하며 자발적으로 사회적 소외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이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개인을 해방시키는 행복한 일과, 매일 반복되고 고된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가 하고 있는 현실적인 일, 이 두 종류의 일을 아주 마음 놓고 헷갈리고 있다"(90쪽)며 '터무니없이 열악한 일터'에서 일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이상한 '운명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우리 삶을 짓누르는 일이라는 육중한 무게는 받아들이면서 왜 용납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가. 기본소득 도입을 지지함으로써 우리는 일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그릇된 통념을 깰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일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지 일할 권리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킬 뿐이다. 일할 권리를 재정의해야 한다. (91쪽)

저자가 보기에 진보진영이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완전고용'을 주장하는 것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일할 권리'란 원래 '구시대적 생산방식의 산물인 노예노동, 봉건적 생산방식의 산물인 예속 상태의 노동, 전체주의 체제에서 의무화한 노역과 구분되는, 마르크스가 말한 형식상의 자유로운 노동, 노동 계약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92쪽)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통해 구체화되고 일할 권리를 통해 추구해야 할 바는 개인의 자유에 의해 선택한 일을 하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 진정으로 일할 권리란 개인이 일을 할지 말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활동은 무엇인지 정의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다. 저자는 "기본소득을 통해 완전고용보다 훨신 더 바람직한 완전 자유활동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93쪽) 본다.

이런 철학적 근거 외에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 기본소득은 일자리를 나누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시간이 줄어 개인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이라는 일자리를 나누는 효과를 발휘한다. 더구나 첨단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가까운 미래에 수많은 일자리들이 소멸할 것이라 예측되는 가운데, 노동시간의 단축과 일자리 나눔은 필연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그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고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는데 있어서도 '기본소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은 가능할까?

한신대 강남훈 교수는 '2014년 한국형 기본 소득 모델'을 발표하기도 했다. 5천만 국민에게 매달 30만 원씩 지급할 경우 1년에 총 181조 5천 억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됐다. 재원은 기본소득과 유사한 복지 제도의 예산을 끌어오고 나머지는 불로소득, 지하경제, 생태세, 토지세 등에서 충당하겠다는 안이다. 과연 가능할까. 아직은 미지수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공약을 지켰다면 제한적이나마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최초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을 스스로 걷어찼다. 이제 성남에서 '청년 배당'이 실시된다면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의 가능성 여부를 타진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청년 배당 외에도 쓰러져가는 농업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민들을 '공익농민'으로 대우하고 월급을 지급하자는 '농민기본소득제' 주장도 있다. 그러고보면 사회양극화와 빈곤 확산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청년, 노인, 농민 등의 취약 집단에게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집중되는 건 당연지사다.

저자는 "기본소득은 유토피아적 제도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제도는 아니다"라며 "기본소득은 부와 일이 새로이 분배되는 신 사회 모델을 탄생시킬 것이고 오늘날 패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승자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 판도도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187쪽) 강조한다. 아직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전 국민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그만큼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를 넓혀나가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조건없이 기본소득>(바티스트 밀롱도 지음 / 권효정 옮김 / 바다출판사 펴냄 / 2014. 06.)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

바티스트 밀롱도 지음, 권효정 옮김, 바다출판사(2014)


태그:#기본소득, #청년배당, #기초노령연금, #생활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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