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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청산가리막걸리 사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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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은 우연히 시작됐다. 몇 해 전 지금은 은퇴한 전직 검찰 수사관과 만났다. 수사관 시절 이야기를 하던 그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글로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당시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던 글도 제공했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이 사건에 대한 취재는 이렇게 시작했다. 전직 검찰 수사관이 작가에게 이 사건을 추천한 이유는 뭘까. 우선 이 사건을 되짚어보자.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지난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사건 발생 마을은 순천 시내에서 버스로 30, 4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이 사건에 등장하는 가족관계도를 살펴보자. 수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마당에서 발견한 막걸리병, 이걸 마시고 2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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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바로 부모와 막내딸,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던 집에서 발생했다. 당시 아버지는 60세, 어머니는 57세, 막내딸은 26세였다. 사건 현장인 집 구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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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는 창고 2개와 화장실, 화단이 있다. 그리고 화단 옆에서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제 사건 발생 당일 아침으로 가보자. 경찰 조사에서 남편 백경환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2009년 7월 6일 백경환씨는 오전 5시경 일어났다. 세수하고 풀을 벨 때 쓸 낫을 갈았다. 당시 남편 백경환씨는 산림 하청을 받아 풀 베는 작업을 했으며, 부인 최명자씨는 순천시청에서 하는 희망 근로를 다녔다. 남편 백씨는 집을 나서기 전에 대문 옆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 주차한 봉고 트럭 뒤에 검은 비닐봉지가 보였다. 봉지 안에는 막걸리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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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는 비닐봉지를 뜰방(토방)에 놓고 부엌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막걸리병이 차 뒤에 있데. 누가 갖고 가라고 한 건가? 그곳에 있데."
"예."

남편은 바로 트럭을 몰고 일터로 향했다.

부인 최씨도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 한 아주머니가 현장에 먼저 나와 있었다. 그는 최씨가 자전거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는 것을 보고 무엇인지 물었다.

"아침에 누가 갖다놨네요."
"자네가 애쓴다고 누가 갖다놨나 보네."

곧 풀베기가 시작됐다. 오전 일을 하는 중 최씨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잔' 마실 것을 재촉했다고 한다. 오전 9시경 휴식이 시작되자 최씨는 막걸리 한 병을 가져왔다. 두 병 가운데 '염색한 놈'이었다. 최씨는 둘러앉은 세 명에게 막걸리를 먼저 따랐다. 막걸리 색이 갈색인 것에 대해 사람들은 '고급술', '칡술'이라며 추켜세웠다. 최명자씨가 먼저 마셨다.

잠시 후 119가 출동했다. 네 명이 가까운 구례병원으로 실려 갔다. 최씨를 포함해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순천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약 45일이 지난 시점에 범인을 찾아낸 것은 바로 검찰이었다. 사건을 맡은 순천경찰서가 한 달 넘게 뚜렷한 물증을 찾지 못하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강력사건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당시 순천지청은 순천경찰서에 수사 중단과 모든 사건 관련 기록을 요구했다. 물론 경찰 처지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신속하게 남편 백경환과 그의 막내딸에게 자백을 받아낸 것은 사실이다.

수사 결과, 살인의 동기는 놀랍게도 부녀 간 성관계가 원인이었다. 검찰은 남편 백경환과 그의 막내딸 백희정 부녀가 약 15년 전부터 성관계를 해왔는데, 죽은 최씨가 이를 알고 부녀를 나무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밝혀낸 부녀의 범행과정을 살펴보자.

검찰은 사건 발생 나흘 전부터 부녀가 범행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하루씩 살펴보자.

나흘 전부터 범행 준비했다는 부녀의 자백,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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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일을 마치고 돌아온 백경환씨는 오후 6시쯤 부인 최명자씨를 태우고 순천으로 향했다.

약 40분을 달려 순천 시내 한 식당에 도착했다. 백씨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평소 부인이 잘 먹는 국밥을 사줬다. 국밥을 먹고 막걸리 3병을 구매했다.

마을 앞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면 범행이 쉽게 발각될 수 있어 순천에서 산 것이다.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구매한 막걸리 3병 가운데 2병만 부엌 냉장고 안에 보관했다. 나머지 한 병은 거실에서 나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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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인 3일 금요일, 남편 백경환씨는 부엌 냉장고에서 막걸리 두 병을 꺼냈다. 마당을 지나 막걸리를 창고로 가져간 백씨는 창고 왼편 선반 구석에 보관한 청산가리 봉지를 꺼냈다.

청산가리는 약 17년 전에 구매한 것이다. 벌레를 잡을 때 한 번 사용하고 나서 남은 것을 선반 구석에 그간 보관해뒀다. 그리고 아버지는 막내딸 희정에게 창고에 가보라고 했다. 희정씨는 창고 안에서 청산가리와 막걸리 두 병을 확인했다. 지문이 남을까 싶어 만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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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토요일 오후 8시, 희정씨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숨겨둔 면장갑과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를 옥상 한쪽에 두고 창고에서 막걸리와 청산가리를 챙겨왔다.

면장갑을 양손에 낀 희정씨는 청산가리 두 숟가락을 막걸리병 안에 넣고 흔들어 섞었다. 그 막걸리는 부엌 냉장고 채소 보관실에 숨겼다. 그날 희정씨는 부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5일 일요일 오후 8시 30분, 희정씨는 마을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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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2시 30분쯤 잠에서 깬 희정씨는 냉장고에 보관했던 막걸리 두 병을 꺼내 지문을 없애고 마당 화단 앞에 내려놓았다. 그 시각이 오전 3시쯤이었다. 희정씨는 집 밖으로 나가 하천에 청산가리 봉지를 버렸다. 그리고 면장갑은 마당에 있던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이상이 부녀가 검찰에서 자백한 내용이었다. 검찰은 부녀를 기소했다. 검찰은 이미 유죄입증을 자신했다. 피고인들의 쌍방자백은 'X자' 형태로 서로 보강 증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막내딸 진술 증거는 아버지 자백이며, 아버지 진술 증거는 딸의 자백인 셈이다.

재판은 판결을 위해 피의자 자백 내용이 얼마나 타당한지 먼저 검토한다. 1심 재판부는 피의자들이 검찰에 한 자백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은 무죄였다. 하지만 1년 뒤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는다. 피의자 자백이 타당하다며 각각 무기징역과 20년 형을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도 피의자가 검찰에서 한 자백이 타당하다고 보고 유죄를 확정한다.

자백 외에 증거 없어... 가족도 재수사 원해

이처럼 '순천 막걸리 사건'은 이미 수사 단계에서 자백을 받았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끝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안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판결했지만,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 주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자백 말고 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 틈새 때문에 지난 2013년 대법원 판결까지 난 사건을 놓고 부녀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부녀와 가족은 재수사를 원하고 있다. 가족과 친척 반응도 비슷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전직 수사관 또한 이들 부녀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도 자백 말고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수사 정당성에 논란이 될 불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궁금했다. 피의자 자백을 받은 검찰이 어떻게 증거를 하나도 찾지 못했을까. 오히려 피의자는 범행을 일체 부정하고 검찰이 증거로 압박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게 상식적이지 않은가. 이 사건은 증거 없이 자백만 나왔고 법원은 그 자백을 증거로 채택했다.

필자는 아버지 백경환을 면회했고 그를 통해서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재판서류들을 모두 넘겨받았다.

필자는 사건 기록과 현장을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은 혼자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전직 판사 출신 변호사와 전직 형사과장도 사건 기록 검토에 동참했다. 이 연재를 통해서 현장에서 찾은 증거를 펼쳐 놓겠다. 왜 수사단계에서는 그런 증거들을 지나쳤을까. 혹시 수사 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글은 현재 독자를 비롯한 검찰과 경찰 모두에게, 현 수사체제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이해를 돕고자 사건 쟁점을 하나씩 점검하겠다. 먼저 범행에 쓰인 막걸리와 청산가리 구입처부터 가보자.

(제2화 '범행도구들'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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