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큰따옴표는 언제 쓸까?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직접 대화를 표시하거나 말이나 글을 직접 인용할 때 쓴다.

8. 큰따옴표(" ")
(1) 글 가운데에서 직접 대화를 표시할 때 쓴다.
   "어머니, 제가 가겠어요."
   "아니다. 내가 다녀오마."
(2) 말이나 글을 직접 인용할 때 쓴다.
   나는 "어, 광훈이 아니냐?"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라는 시구를 떠올렸다.
   편지의 끝머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할머니, 편지에 사진을 동봉했다고 하셨지만 봉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말이나 글을 그대로 인용하고 해당 부분을 큰따옴표로 두르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영어로 된 글을 읽다 보면 인용문 안에 '[sic]'라고 표시한 것을 곧잘 보게 된다. 이것은 '원문 그대로임'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즉, 인용하려는 글에 오타나 다른 잘못이 있지만 이를 임의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표시하니 오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용자가 내용을 추가할 경우에는 대괄호로 표시한다. 이렇듯 영어에서는 말이나 글을 인용할 때 조금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다(법적으로 보자면 저작 인격권의 동일성 유지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종종 깨지는 큰따옴표 원칙

ⓒ 오마이뉴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이 원칙이 종종 깨진다. 특히 언론 보도에서 취재원의 말을 인용할 때 단어를 고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사의 취지에서 불필요한 내용이 있을 때 독자의 편의를 위해 원문을 다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마이뉴스> 2015년 9월 6일자 기사에서는 이렇게 인용한다.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당 혁신위원회 활동에 "제도 개선으론 혁신을 이룰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 혁신위와 당 일각에서 자신의 "혁신 실패" 발언을 비판한 것을 놓고 "총선 위기감 속에 가만히 있으라는 지적도 옳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위 기사는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기자 간담회 발언을 보도한 것인데, 정작 기자 회견문에는 "제도 개선으론 혁신을 이룰 수 없다"라는 말이 없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제도개선만으로는 근본적인 혁신이 이루어지기 힘듭니다"라고 말했다. "총선 위기감 속에 가만히 있으라는 지적도 옳지 않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제가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이대로 간다면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절박감 때문입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충심어린 제안과 지적에 대해서,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위의 기사만 이런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원문을 수정하여 인용하는 것은 대다수 한국 언론의 관행이다. 나는, 이렇게 하려면 큰따옴표를 붙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과 글을 임의로 손대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수많은 인터뷰이가 증언하는 바다.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엮어넣기 인용 원칙

둘째, (이것이 나의 관심사인데) 직접 인용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라고'를 '고'로 바꾸면서 어말 어미(또는 서술격 조사)를 고친다. 이를테면 같은 기자 간담회를 다룬 <한겨레> 2015년 9월 6일자 기사를 보자.

안 의원은 특히 "그동안 당 내부의 부조리와 윤리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왔다"면서 "순혈주의와 배타주의, 진영논리로 당의 민주성, 개방성, 확장성을 가로막으며 기득권을 공고히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 결과로 정치에서 양비론을 자초하고, 대북 문제와 안보 그리고 경제 문제에서 기득권 보수 세력들에게 끌려 다녔고 도덕적 우위도 점하지 못했다"며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클린 정치'를 주도하지 못하는 야당이 과연 경쟁력이 있겠느나[sic]"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그동안 당 내부의 부조리와 윤리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왔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동안 당 내부의 부조리와 윤리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겨레> 기사와 같은 인용 방식은 한국어 어법에는 없는 방식으로, 직접 대화를 표시하는 것도아니요, 말이나 글을 직접 인용하는 것도 아니요, 문장 전체를 인용하지 않고 일부만 가져다 자신의 문장과 엮는 방법(Weave in the Quotation)이다. <문체>라는 책에서는 '엮어넣기 인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인용문을 글 속에 함께 엮기

…… 글의 구조 안에 인용문을 함께 엮는다(이렇게 하면 인용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어진다).
In The Argument Culture, Deborah Tannen treats the male-female polarity "more like ends of a continuum than a discrete dualism," because the men and wemen we know display "a vast range of behaviors, personalities, and habits."
(데버러 태넌은 『논증의 문화』에서 남녀의
양극성을 "별개의 이중적 성격이라기보다는 연속체의 양 끝으로" 간주한다. 이는 우리가 아는바 남성과 여성이 나타내는 "행동, 성격, 습관이 넓은 범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 출처: 조셉 윌리엄스, 『문체』(홍문관, 2010) 262~263쪽. 예문의 한국어 번역은 필자.

<한겨레>의 인용문은 큰따옴표를 다 빼고 "안 의원은 특히 그동안 당 내부의 부조리와 윤리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왔다면서 순혈주의와 배타주의, 진영논리로 당의 민주성, 개방성, 확장성을 가로막으며 기득권을 공고히 해왔다고 주장했다"라고 써도 자연스럽다. 큰따옴표를 붙인 것은 인용 문구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독창적인 표현임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런데 영어의 엮어넣기 인용에서는 원문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 반면에 한국어에서는 경어체 어말 어미(또는 서술격 조사)를 비경어체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위의 <한겨레> 기사에서는 '왔습니다'를 '왔다'로, '못했습니다'를 '못했다'로, '있겠습니까'를 '있겠나[sic]'로 바꿨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분명히 높임말을 썼는데 기사에서는 이것이 반말로 둔갑한 것이다. 이것이 관행이기는 하지만, 한국어에서 어말 어미와 서술격 조사는 임의로 바꿔도 괜찮은 성분일까?

나는 원문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 엮어넣기 인용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이것은 논문이나 학술 서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엮어넣기 인용에서는 용언의 어간이나 선어말 어미 뒤에서 큰따옴표를 닫자는 것이다. 즉, <한겨레> 인용문은 이렇게 바뀔 것이다.

안 의원은 특히 "그동안 당 내부의 부조리와 윤리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왔"다면서 "순혈주의와 배타주의, 진영논리로 당의 민주성, 개방성, 확장성을 가로막으며 기득권을 공고히 해왔"다고 주장했다.

큰따옴표의 위치만 한 칸 옮겼는데,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말을 고스란히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큰따옴표 안의 문장이 종결되지 않은 채 인용되는 문제가 있지만, 엮어넣기 인용에서는 인용문이 종결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한겨레> 기사에는 이런 인용문도 있으니 말이다.

안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낡은 진보 청산이나 당 부패 척결 문제는 시대적 흐름과 요구인데도 그동안의 당내 타성과 기득권에 막혀 금기시돼 왔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당 혁신의 첫 걸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어 어법엔 원칙 없는 엮어넣기 인용

그런데 아래와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2)번 문장에서 큰따옴표를 어디에 찍어야 할까?

(1) 철수: 당신, 많이 좋아합니다.
(2) 철수가 영희에게 많이 좋아한다며 사랑을 고백했다.

철수의 말에는 '좋아한'이라는 형태가 들어 있지 않다. '좋아하다'의 어간은 '좋아하'이기 때문에 정확히 표시하자면

철수가 영희에게 "많이 좋아하"ㄴ다며 사랑을 고백했다.

와 같은 식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음절을 분해하여 '하'와 'ㄴ' 사이에 큰따옴표가 들어가는 것은 적절치 않으므로 음절 경계를 살려 아래와 같이 표시하는 것이 좋겠다.

철수가 영희에게 "많이 좋아한"다며 사랑을 고백했다.

나는 영어 책을 번역하다가 엮어넣기 인용이 나오면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출판사에 따라서 나의 방식을 그대로 두는 곳도 있고 <한겨레>처럼 고치는 곳도 있다. 엮어넣기 인용은 한국어 어법에는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았으나 번역을 통해 암묵적으로 도입된 인용법으로, 명확한 원칙 없이 자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타인의 말을 큰따옴표 안에 인용할 때는 한 글자도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언어생활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엮어넣기 인용이 효과적인 인용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제안한 방법을 고려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태그:#맞춤법, #인용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라고 생각한다. 번역한 책으로는『새의 감각』『숲에서 우주를 보다』『통증연대기』『측정의 역사』『자연 모방』『만물의 공식』『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스토리텔링 애니멀』『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