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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깨끗하고 안전한 소금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천일염을 다룬 이야기들에 많은 과학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싱겁게 끝난 토론회였다. 천일염이 몸에 좋다는 주장을 해온 패널들은 토론회가 진행된 2시간 내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평소 언론 인터뷰, 연구 발표 등으로 천일염의 우수성을 주장해온 패널 중 일부는 이날 토론회에 갑자기 불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일 오후 홍대입구역 부근 '카페 후'에서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등이 참석한 가운데 'SBS스페셜' 주최 소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국내 천일염 권위자 중 하나인 함경식 목포대 교수와 최경숙 요리연구가는 토론회 직전 불참을 통보해와서 자리가 비어 있다.
 4일 오후 홍대입구역 부근 '카페 후'에서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등이 참석한 가운데 'SBS스페셜' 주최 소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국내 천일염 권위자 중 하나인 함경식 목포대 교수와 최경숙 요리연구가는 토론회 직전 불참을 통보해와서 자리가 비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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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페 후'에서는 <SBS스페셜>이 주최한 소금 토론회가 열렸다. 최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천일염의 위생 문제를 거론해 '소금 논란'이 일자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과학적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다. 자세한 내용을 담은 방송은 오는 13일 방영될 예정이다.

"천일염 좋다? 화학 장판 성분, 천일염에 함유될 수 있어"

팽팽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날 토론회는 시작부터 한 축이 무너진 채로 열렸다. 국내 천일염 권위자 중 하나인 함경식 목포대 교수와 최경숙 요리연구가가 토론회 직전 불참을 통보해왔기 때문.

<SBS스페셜> 측은 "함경식 교수가 어제(3일) 오후 늦게 갑작스레 전화해서 '공개 토론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못 나가겠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 녹화분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테이프를 드리겠다고까지 말했는데도 못 온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천일염 생명연구소장인 함경식 교수는 천일염이 천연 갯벌에서 생산되는 미네랄이 풍부한 친환경적 자연식품이라는 통념을 국내에 전파한 주인공으로 꼽힌다. 그의 천일염 연구는 지난 2013년 말, 해양수산부가 10년간 총 10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수산연구센터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이날 토론회에서 함 교수가 퍼트린 천일염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며 위생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는 "갯벌 위에 비닐 장판을 깔고 그 위에서 소금을 만드는데 염전 근처에 가면 시궁창 냄새가 진동한다"고 설명했다. 

통상 한국의 천일염은 바다 인근에 염전을 만들고 여기에 바닷물을 부은 후 햇볕에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만든다. 갯벌 위에서는 소금을 만들 수 없으므로 그 위에 비닐 소재의 장판을 까는 곳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되면 장판 아래 갯벌이 썩는다는 것이다.

화합물 장판 위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도 지적됐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염전 특성상 장판 성분이 소금에 함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래 염전용 장판으로는 폴리염화비닐(PVC)을 많이 썼어요. 그러다가 환경호르몬 문제로 최근에는 가소제가 함유되지 않은 폴리프로필렌(PP)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런데 장판이 받는 직사광선이 엄청나서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분해가 됩니다. 자연히 소금에 장판 성분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요."

천일염의 위생 문제를 제기한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천일염의 위생 문제를 제기한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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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들, 천일염과 정제염 중 뭐가 더 우수하다는 인식은 없어"

천일염이 몸에 좋다고 주장하는 패널들은 천일염에 함유된 미네랄을 근거로 들었다. 바닷물에서 염소 이온과 나트륨 이온만을 걸러서 만드는 정제염에 비해 천일염은 우리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건강전문가인 안병수 후델 식품 건강연구소장은 '천일염에 들어있는 미네랄은 건강에 더 좋다'는 독특한 주장을 폈다. 이날 불참한 함경식 목포대 교수 역시 과거 논문을 통해 같은 내용을 주장한 바 있다. 안 소장은 "우리 몸은 염화나트륨(소금)을 먹을 때는 거기에 반드시 다른 미네랄을 같이 먹어야 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화학자인 이덕환 교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런 낭비적인 얘기는 좀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크게 반발했다. 그는 "그런 주장을 하려면 천일염에 들어있는 미네랄이 우유나 견과류 등에 들어있는 미네랄과 생리학적으로 다르다는 증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고 질타했다.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함에도 세간에 천일염이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과학이 정치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면서 "천일염도 그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고 평했다.

쌀의 경우, 생산량이 부족하던 1960~1970년대는 국내 식품영양학자들에게 '나쁜 식품'으로 낙인 찍혔었다. 이런 연구는 당시 정부의 혼분식 장려책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정부가 쌀 소비를 장려하는 최근에는 쌀이 '좋은 식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직 요리사인 장진모 앤다이닝 대표는 "요리사들이 정제염과 천일염 중 어떤 게 더 우수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입자 크기나 짠맛의 정도 등을 고려해 요리에 맞는 소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맛을 내는 측면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천일염은 쓴맛이 조금 섞여 있고 정제염은 더욱 찌르는 듯한 짠맛이 있지만, 이것은 소금을 직접 먹었을 때의 얘기"라면서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은 거의 물에 녹은 상태고 농도도 0.8%, 0.9% 정도라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천일염, #정제염, #황교익, #SBS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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