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 천만' 영화의 출현이 가시화됐다. 27일 기준으로 관객 수 1,179만 명을 돌파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에 이어 959만 명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이번 주 토요일 천만 고지 점령을 예약한 상태다. 두 편 모두 두 감독의 연출력과 장르적 재미, 멀티 캐스팅의 위력이 여름 극장가에 제대로 꽂힌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광복 70주년이나 8.15 특별사면과 맞물리며 현실과 조응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위력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반면, 이제는 스크린 독과점이나 수직 계열화를 넘어 CGV와 롯데, 메가박스 세 멀티플렉스 체인의 '공고한 스크린 나눠 먹기'가 안정권 수준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물론 그 수혜는 올여름 흥행작인 <암살>과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이하 <미션>), <베테랑>이 고스란히 가져갔다.

그 틈바구니에서, 무협과 공포를 표방한 두 편의 장르영화가 보여준 실패는 되새겨봄 직하다. 무협을 흡수한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과 한국적인 공포를 표방한 <퇴마: 무녀굴>(이하 <무녀굴>)은 각각 8월 13일과 20일 개봉, 26일까지 42만5천과 11만1천 명을 동원 중이다.

[협녀] '이병헌 악재'가 전부가 아니다 

 영화 <협녀>의 스틸컷.

영화 <협녀>의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먼저 '이병헌 악재'를 만난 <협녀>의 진정한 악재는 다른 요소와 관련이 있었다. 배급과 장르에 대한 이해도 말이다.

작년 겨울을 개봉 시기로 잡았던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이병헌의 스캔들로 인해 개봉 시기를 늦춘 끝에 텐트폴 영화들(한 투자배급사의 라인업에서 확실히 흥행할 만한 영화-편집자 주)이 즐비한 여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병헌이 출연한 자사 배급작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개봉 후였다. 그런데 <미션>을 피해 개봉한 <암살>과 <베테랑>이 승승장구했던 반면, <협녀>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급기야, 롯데시네마가 스크린을 이미 흥행 궤도에 오른 <미션>에 몰아주는 인상이 짙었다.

한편 일찌감치 포털 사이트에 평점을 낮게 주는 등 개봉 전부터 주연배우에 대한 비호감을 표시한 관객들과 엇비슷하게 관람 후 불만을 토로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 게시판이나 영화 커뮤니티엔 무협멜로로 소개된 <협녀>에 대해 "장르를 모르겠다"거나 "진지하기만 하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반면 이병헌의 연기에 대해서는 매체를 중심으로 호평이 우세였다.

<협녀>는 무협 장르를 빌려 감정을 설득하고 설파하는 영화다. 경공술이 가능한 무협의 세계와 고려 무신정권을 배경으로 이병헌, 전도연, 김고은의 캐릭터가 실핏줄처럼 연결된다. 하지만 액션 장면들은 종종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배우, 스태프의 노력과 촬영의 완성도를 고려해도 그러하다. 촘촘하지 못한 인과관계와 감정선은 장중한 음악에 묻혀 과잉의 수사를 반복할 뿐이다.

어쩌면 무협이란 장르 자체가 비한국적인 동시에, 동시대성마저 탈색되어 버린 장르였을지 모른다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 안에서 박흥식 감독은 장예모의 <영웅>이나 <연인> 같은 대륙적 허세와 왕가위의 <동사서독>나 <일대종사>처럼 감정과 역사가 얽힌 무협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든 감독의 욕심과 그 장르를 받아들이는 관객들이 충돌하는 지점은 어디었을까. 박흥식 감독 스스로 고민해 볼 부분이다. 과연 <협녀> 이후 무협이란 장르는 한국에서 부활할 수 있을까.

[무녀굴] 산업이 만들어 가는 한국 공포물의 한계

 영화 <퇴마:무녀굴>의 한 장면.

영화 <퇴마:무녀굴>의 한 장면. ⓒ 씨네그루㈜다우기술


<무녀굴>은 자신의 '사이즈'를 스스로 알고 있어서 안타까운 경우라 할 수 있다. 자의든 타의든 여름 시장 안에 갇혀버린 공포물은 한국 영화산업 안에서 저예산과 촉박한 기획 단계를 감수해야 하며, 신인급 감독의 등용문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색 있는 장르 영화를 선보이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조차 볼만한 한국 공포영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명백한 증거다.

<무녀굴> 역시 "공포는 돈이 안된다"는 선입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20여억 원의 순제작비는 그렇다 쳐도, 작년 말 투자 결정이 난 이후 실질적인 제작 기간이 반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대중영화로서 완성도 자체를 거론하기에 민망한 여건이라 할 수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해야 하는 장면에서 어설픈 CG와 분장으로 인해 실소를 터뜨렸다면 더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무녀굴>은 꽤 정통적인 공포물이라 할 수 있다. 퇴마와 빙의, 귀신과 엑소시즘 등 전통적인 장르의 설정들과 한국 현대사의 한 시점이 결부돼, 귀기 어린 한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다는 서사를 채택했다. 여러 기본 설정의 친숙함과 모나지 않는 연출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방대함을 줄이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소소함이 실종됐고 이야기 구조는 거칠어졌다. 무엇보다 공포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약점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한국 공포물의 부활과 부침에 관한 분석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선 아이디어나 연출력만큼이나 기획이나 프리 프로덕션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중진 투자배급사가 제작하고, 300여 개 스크린을 확보한 <무녀굴>의 흥행 성적보다 제작 과정과 완성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협녀: 칼의 기억 퇴마: 무녀굴 암살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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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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