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떠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떠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1심 판결과 항소심 공판을 관심을 두고 지켜봐 왔다.

특히 1심 판결에서 조 교육감이 고승덕 당시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이 '미필적 고의'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라고 인정한 건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자의 진술에 대한 형사 처벌의 폭을 획기적으로 넓혀놓는 것이라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선거에서 돈은 막고 입은 풀어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과정으로서 선거를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 선거법의 발전 방향에 역행하는 판결이다. 나는 항소심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해 1심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제출한 탄원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간단하게 미국 선거법과 판례의 동향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의 법리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뒤, 조희연 사건 1심 판결의 오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미국 선거운동시 정치적 허위진술에 대한 법과 판례 동향

실제적 해악·고의성·미필적 고의성 등을 근거할 때에만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법원의 통설로 정립돼 있다
 실제적 해악·고의성·미필적 고의성 등을 근거할 때에만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법원의 통설로 정립돼 있다
ⓒ flickr

관련사진보기


미국 연방법원에서는 최근 선거에서 행한 정치적 허위진술에 대해 정부가 개입해서 처벌하는 것이 합헌인가에 대해 중대한 판단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선거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기 이전인 1964년에 이미 미국 대법원은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New York Times vs. Sullivan) 사건을 통해,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의 폭을 확대하여, 공인인 경우에는 허위의 진술이라 하더라도 진술자가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만 명예훼손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실제적 악의'의 중대한 구성요소는 그것이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knowingly), 또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비상식적·비합리적인 무시(reckless disregard of material facts) 속에서 허위 진술을 할 경우가 아니라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2년의 정부 대 알바레즈(U.S. vs. Alvarez)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허위의 사실 진술도 무조건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다른 법익을 위해 그러한 표현을 부득이 제한할 경우에도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기에 필요한 엄격한 기준(strict scrutiny), 즉 급박한 정부의 이익(compelling governmental interest)을 위해 필요하고, 제한의 내용도 최대한 좁게 한정된(narrowly tailored) 경우에만 헌법적으로 용인된 자유의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14년 9월 2일 미 연방 제8 순회항소법원은 선거캠페인에서 그것이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 또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비상식적인 무시 속에서 허위의 진술을 할 경우 이를 처벌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미네소타주의 '정치적 허위진술에 관한 법(Political False Statements Laws)'에 대해 "불필요하며,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여러 측면을 포괄적으로 검토하지 못하고 있으며, 법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한된 수단에 한정하지 않고 있다"(is not necessary, is simultaneously overbroad and underinclusive, and is not the least restrictive means of achieving any stated goal)라고 해 위헌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2014년 9월 14일에는 오하이오주에서 연방지방법원이, 미네소타법과 거의 유사한 오하이오주의 '정치적 허위진술에 관한 법'(Ohio's Political False Statements Laws)의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오하이오주 연방지방법원은 선거와 관련한 정치적 캠페인에서 나온 허위 사실의 진술은 설령 그것이 허위라 하더라도 미국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으며, 특히 정치적 캠페인 과정에서 허위 진술에 대한 대응은 선거 속에서 진실을 밝히고 유권자가 표로 심판하는 방식이 옳으며, 정치적 선거에 법원이 개입해 처벌하는 것은 정치적 공포 분위기(political chilling)를 조성하게 돼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위의 법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오하이오주 연방지방법원은 "우리는 거짓말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진술에 대해 정부가 그 진위를 판단하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We are not arguing for a right to lie. We're arguing that we have a right not to have the truth of our political statements be judged by the Government)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요컨대 미국에서는 적어도 정치적 캠페인에 대해선, 허위 진술이라고 해서 무조건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니다. 실제적 해악·고의성·미필적 고의성 등에 근거할 때만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법원의 통설로 정립돼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법부가 선거에서 한 발언의 진위와 처벌 여부를 가리는 형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정치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사실상 선거의 목적 자체를 흐리고 민주주의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의 법리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미국 법의 현 상황과 비교할 때, 한국의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의 문안과 해석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한국의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 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해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와 허위의 사실을 게재한 선전 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조문은 위법 행위의 구체적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시하지 않은 채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위법의 구성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모호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과잉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돼 위헌의 소지가 매우 크다.

또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고의성과 미필적 고의성 등의 원칙에 대해서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공직선거법상의 표현에는 적시돼 있지 않지만,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그 문제 해석에 대한 일정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헌법재판소는 '허위사실의 표현'도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 출판의 자유의 보호영역에는 해당하되, 다만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법원은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에 분명히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허위사실 공표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가 구성요건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라는 것은 사실상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라는 기준과 거의 동일한 접근으로 판단된다. 특히 미필적 고의란 비상식적·비합리적인 무시의 결과, 고의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뜻하므로, 우리 법원은 그것이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 또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비상식적·비합리적인 무시의 결과로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보고 있다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희연 교육감 1심 판결은 미필적 고의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했다. 또한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소명을 할 경우 위법성과 책임성을 조각하게 된다는 상이한 두 측면을 부당하게 연결해 이 사건에서의 구성요건상의 고의성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조희연 교육감 1심 판결의 법리 오해와 사실인식 오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8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치고 재판장에서 나와 자리를 떠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8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치고 재판장에서 나와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런 관점에서 조희연 교육감 1심 판결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째, 1심 판결은 조희연 교육감이 고승덕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의혹 해명을 요구했다는 판단을 했으나, 그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범죄의 구성 요건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조희연 교육감은 고 후보의 영주권 의혹 해명을 요구하면서, 이미 SNS 상에서 광범위하게 의혹이 퍼져 있다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했고 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였을 뿐이다. 그는 허위임을 알면서 공표하지 않았고, 중요한 사실에 대한 비상식적·비합리적인 무시의 결과로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바도 없으며, 단언적 주장을 하지도 않았다. 이를 공직선거법제250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허위사실 공표 행위로 보는 것은 명백한 법리 오해와 사실 오인이다.

셋째, 1심 판결은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 여부를 판단의 근거로 삼고, "의혹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피고인에게 지우고, "그러한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허위사실 공표의 책임을 진다"라고 판단했다. 이는 허위사실공표죄의 고의성에 대한 법리를 명백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만약 여기서 "의혹사실의 존재"라는 것을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해석한다면 옳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제기된 의혹이 진실임을 소명할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고의의 법리에 대해 분명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1심 판결은 "비상식적 비합리적으로 진실여부를 무시한 채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을 명백한 증거를 통해 입증하지 못했다.

글을 맺으며

허위사실 공표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판단에서 그것이 허위임을 알았거나, 단순한 과실을 넘어서 심각하게 그 진위를 무시함으로써 거의 고의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경우에만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어야 한다. 그런데 1심 판결은 이에 대한 법리 오해와 사실 인식의 오류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또한 직접적으로 허위사실을 제작하고 공표한 것이 아니라, 의혹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해당 사실을 언급하게 되는 경우, 그 공표의 내용과 형식 또 그 내포된 사실이 결과적으로 허위임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선거 과정에서 해명과 토론을 통해서 자정의 과정을 거쳤다는 구체적 사정을 감안하면서, 고의에 대한 입증은 한층 높은 수준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의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부 미검증의 사실이 들어 있다고 할 때, 그 부분에 대한 검증의 책임은 직접적 사실에 대한 진술의 경우에 져야 할 사실 확인의 책임보다 훨씬 더 완화돼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스스로의 주장으로 그것을 공표한 적이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 사실이 허위인지 아닌지를 밝힐 것을 선거의 상대방에게 요구했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 조희연 교육감은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주관적 객관적 요소를 만족시키지 않았고, 또한 그 위법성과 책임성을 질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1심 판결은 그러한 법률적 사실적 내용을 충분히 판단한 위에서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

이상과 같은 1심의 오류가 항소심에서는 반드시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백태웅님은 미국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비교법·국제법·국제인권법·국제형법·한국법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백태웅 교수가 지난 7월 20일 항소심 재판에 제출한 탄원서(의견서)를 재구성해 작성한 글입니다. 첨부파일을 내려받으면 탄원서를 볼 수 있습니다.



태그:#백태웅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