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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 농가가 어렵다고 하는데요, 닭고기를 얼마나 팔아주면 좀 도움이 될까요? 한 50만 마리 정도면 될까요? 턱도 없죠. 그 정도로는 한 농가 정도도 구원 못합니다. 그럼 치킨 가격을 내리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더 치킨을 많이 먹을 테고 양계 농가에도 도움되지 않겠어요? 글쎄요, 올해 잡은 닭만 벌써 8억1000만 마리인데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최근 롯데마트가 '5500원짜리 국민치킨' 행사를 하며 내건 명분을 질문으로 바꿔봤다. 그에 대한 답은 <대한민국 치킨전>(따비)의 정은정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대신했다. "너무나도 착한 가격"이라든가 "싼 게 비지떡이 아닌 것 같다"는 소비자들 호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 작가는 왜 이런 글을 올렸을까.

<대한민국 치킨전>, 치킨 하나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시선까지 두루 담아낸 책이다. '치킨은 누구인가'에 집중했다. 누가 키우고, 누가 튀기고, 누가 먹는지 등을 소상하게 다뤘다. 농촌사회학자로서의 문제의식을 '발'로도 풀어냈다. 양계농가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인터뷰 등을 어렵게 성사시켜 책에 담아냈다. 한 언론사가 "치킨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의 경계는 <대한민국 치킨전>을 통해 갈린다고 해도 손색없다"고 평했을 정도다.

치킨 중량이 브랜드를 고르는 기준

최근 롯데마트는 양계 농가 돕기를 명분으로 내걸고 '국민치킨'을 5천 5백원에 판매하는 등 닭고기 소비 촉진 행사를 진행했다
 최근 롯데마트는 양계 농가 돕기를 명분으로 내걸고 '국민치킨'을 5천 5백원에 판매하는 등 닭고기 소비 촉진 행사를 진행했다
ⓒ 롯데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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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의 눈에 국민치킨이 어떻게 보이는지 직접 만나 더 듣고 싶었다. '착한 일'처럼 보이는 그 이면에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진실이 뭔가 있는 듯했다. 지난 21일 인터뷰에서 미리 시켜놓은 치킨을 보자마자 건넨 정 작가의 첫 마디는 "어? 여기는 콜라 제공 안 하네!"였다. 이어 "영수증을 좀 보여달라", 꼼꼼하게 챙겨보는 포스에 곧바로 무장 해제됐고, 튀어나온 첫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 혹시 치킨 시켜 먹을 때 애용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있습니다. ○○○○ 먹어요. 그런 질문 정말 많이 받는데, 에두르지 않고 정확히 답해요. 그럼 '더 좋은 기름을 쓰나요?' '좋은 닭을 쓰나요?', 이렇게들 물어보시곤 하는데 그건 아니고요. 중량이 커요. 치킨이 전반적으로 작아졌거든요. 닭이 작아진다는 건 그만큼 회전율이 나온다는 거예요. 사료를 덜 먹이면서 더 빨리 키울 수 있는 쪽으로 유도된다는 것, 그걸 추구한다는 얘기가 되죠."

회전율, 달리 말하면 병아리에서 도계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를 뜻한다. 따라서 정 작가의 말은 치킨 중량만 눈여겨봐도 해당 프랜차이즈 업체는 물론 닭을 공급하는 육계업체의 품질 정책까지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정 작가는 말을 이어나갔다.

"육계업체와 계약한 농가에서 닭을 정성스럽게 키운다는 건 불가능해요. 어떤 결정권이 없으니까요. 육계업체가 그냥 사육 프로그램을 줘요. 이렇게 몇 킬로그램 만들어라, 그러면 공장 제품처럼 '딱딱딱' 떨어지거든요. 이게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거죠."

그래서 정 작가는 50만 마리 정도로 국내 양계농가를 돕는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평균 한 농가가 1회전에 키우는 닭이 5만 마리에서 6만 마리, 책에서 인터뷰했던 농가의 경우는 1회전에 11만∼12만 수를 키우는 곳인데 1년에 7~8회전을 돌린다. 일곱 번만 키워도 80만 마리가 넘는다"고 했다. "50만 마리면, 중간 규모 농가 한 곳을 돕는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치킨을 최대한 먹고 있어요"

<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정은정 작가
 <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정은정 작가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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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마트 측에서 국민치킨을 판매하며 내세운 또 하나 이유가 치킨 소비 심리 회복이었습니다. 치킨 가격이 높아져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는 것인데요,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아뇨, 동의하지 않아요. 도계량을 주도하는 건 아무래도 치킨 시장인데요, 소비량이 줄었으면 도계량이 줄어야 하잖아요. 국립축산원 통계로 작년에 7억9000만 마리를 도계했어요. 그런데 올해 벌써 8억1000만 마리를 잡았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최대한 먹고 있어요(웃음). 또 치킨은 피자 등 대체제가 많아요. 이것저것 먹으니까 소비가 줄어들 수 있는 거죠. 단순히 치킨 가격이 높아져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생산자 단체에서도 나온 바 있다. 지난 7월 대한양계협회는 비슷한 논리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에게 치킨 가격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 작가는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도 완전히 양극화돼 있다"며 "비주류 브랜드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정 작가가 책에서 소개한 모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 가맹점의 치킨 한 마리 당 원가를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말이다.

염지닭(소금 간 등으로 맛을 낸 닭) 시세가 5300원 선, 치킨 한 마리 당 식용유 원가가 1000원 정도라고 한다. 튀김옷 비용 500∼800원, 배달용 치킨 박스 값 300∼380원에 치킨무 400원, 소스 70원, 냅킨 6원, 포장박스에 까는 유산지 10원 등. 여기에 탄산음료, 쿠폰, 배달 인건비, 게다가 임대료 등 매장 운영비까지 더하면 치킨 마진율은 매우 낮은 쪽에 속한다는 것이다. 비주류 브랜드 '치킨집 사장님'의 보수는 더욱 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롯데마트는 어떻게 5500원짜리 국민치킨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정 작가는 "재벌 치킨 집과 동네 치킨 집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자체가 잘못된 비교"라고 했다. 닭, 식용유, 튀김 가루 등을 싸게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통 재벌이 하는 '닭 장사'는 임대료나 배달비가 들어가지 않으니 '착한 치킨'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순살 치킨이 브라질 산인 이유... 핵심은 '구조적 선취'

- 국민치킨에 대한 소비자들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현행 치킨 가격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잖아요.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고 봐요. 2010년 '통큰치킨' 때문에 난리 났을 때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원가 공개하면서 그렇게 많이 안 남는 장사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제가 만난 점주들 실상과는 동떨어진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가맹점주들 가장 스트레스 받을 때가 신상품이 나올 때예요. 신제품이 나오면 포장 스타일, 하다 못해 쇼핑백도 달라져요. 전단지나 메뉴판도 바꿔야죠.

때로는 이벤트도 해야 하고 사은품도 줘야 해요. 셀카봉 잔뜩 갖다놔요. 그리고 CF가 붙죠. 홍보비가 든단 말이죠. 그런데 이런 비용을 가맹점들한테 다 '밀어내기'해요. 그렇다고 '나는 신상품 안 팔래, 이벤트 안 할래', 이런 게 안 돼요. 선택권이 없어요. 그냥 '내 룰에 따라' 이런 식이거든요. 이렇게 프랜차이즈 본사가 얻는 이윤이 상당할 거라 보고 있고요."

정 작가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지정한 식용유, 치킨 무, 음료, 주류" 등 수직 계열화를 통해 발생하는 이윤, 육계업체로부터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생닭을 대량으로 구매하면서 얻는 이윤들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더 투명하게 원가 공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 작가는 이어 닭값이 떨어져도 치킨 값은 오르는 이상한 현상에 또 다른 '배후'가 있다고 강조했다.

"닭을 틀어쥐고 있는 대형 육계업체의 독점 문제도 굉장히 커요. 수요와 공급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이미 그들에게 있어요. 아무리 국내 생산량이 늘어도 수입을 멈추지 않아요. 예를 들어 순살 치킨, 뼈를 다 발라낸 거죠. 이걸 만들 때 일부 프랜차이즈들은 아예 브라질 산 닭을 써요. 왜냐, 브라질이 닭을 되게 크게 키우거든요. 그래서 살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브라질 닭을 갖고 와 순살 치킨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딱 정착이 되고 있는 거예요. 국내 소비자들의 치킨 소비가 국내 생산자와 연결이 안 되는 거죠.

지금 핵심은 이겁니다. 누군가 과하게 '선취'하고 있는 몫을 생산자 쪽에 조금이라도 더 돌려줘야 한다는 것. 하림 회장님, 26억 원짜리 나폴레옹 모자를 사 갖고 와요. 물론 재벌 회장님이니 그 정도 쓸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돈으로 하다 못해 하림 계약 농가 자녀들 학자금이라도 주고 그러면 더 좋지 않겠어요? 양계 농민들은 너무 힘들어 하는데….

이런 극강의 모순을 계속 보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치킨을 많이 먹어준다 한들, 양계 농가들은 계속 힘들고, 가맹점주들의 상황 또한 그렇게 나아지지 않을 거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동네 정육점 다 없어질 것"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작가가 치킨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의미를 두루 담아낸 책 <대한민국 치킨전>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작가가 치킨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의미를 두루 담아낸 책 <대한민국 치킨전>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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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 못지 않게 대형 육계업체의 원가 공개 역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 개입의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현재와 같은 대형 육계업체 중심의 양계 산업 구도를 짜 준 것이 바로 정부"요, "일찌감치 가공권 역시 큰 기업들에게 넘겨준 것이 정부"이니 기대할 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킨회사 회장님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출마를 선언하는 현실이 남다르게 보이는 듯 했다.

"제가 왜 치킨 얘기를 하느냐, 삼겹살 때문이라고 얘기해요. 닭이 먹혔으니까 다음은 양돈 차례, 또 그다음은 소 차례 아니겠어요? 수십 년간 외국 대형 축산기업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이미 양돈 시장에 진출하고 있죠.

이대로 간다면 동네 조그만 정육점들 다 없어질 겁니다. 어디나 다 똑같은 브랜드 삼겹살을 구워먹는 상상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거죠. 소비자 가격은 지금보다 당연히 오르지 않겠어요? 재미없는 사회가 되는 거죠. 치킨을 보면, 우리 미래의 먹거리 지형도가 보인다는 거죠."

이어 치킨 재벌들과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추는 언론의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도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한 대목도 떠올랐다.

"이제 밖에서는 하림이 만든 닭으로 치킨을 튀겨 먹고, 집에서는 하림이 만든 용가리 치킨을 또 튀겨 먹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게 하림 닭으로 튀겨 먹다 찐 살은 하림이 만든 '닭 가슴살 캔'을 먹어가며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하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림 "회사 영업 비밀", 롯데마트 "오비이락"


2014년 11월 하림 김홍국 회장이 경매를 통해 나폴레옹 모자를 25억8천만원에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2014년 11월 하림 김홍국 회장이 경매를 통해 나폴레옹 모자를 25억8천만원에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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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닭은 누가 다 키울까. 책을 보면 하림,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하림과 계약을 맺은 양계 농가가 키우는 닭이 참 많다.

<대한민국 치킨전>을 보면 "양계 농가의 90퍼센트 이상이 육계기업에 소속된 '계약농가'고, 그 육계기업의 50퍼센트가 하림에 소속돼 있다"고 한다. 정은정 작가가 하림그룹의 '힘'에 주목할 만한 상황인 셈이다.

2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하림그룹 측은 정 작가의 원가 공개 요구 주장에 대해 "회사 영업 비밀로 공개가 어렵다"고 답했다. 김홍국 회장의 나폴레옹 모자 구입과 관련해서도 "개인 돈으로 구입한 것"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작년 11월 하림 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 회장이 평소 나폴레옹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 정신을 높이 평가했으며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모자를 구매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롯데마트 측은 국민치킨 행사와 관련하여 회사가 최대한 노력한 것이란 입장을 전했다. 26일 전화통화에서 롯데마트 측은 "보통 국민치킨이 한 주에 9톤 정도 나가지만, 행사 기간 122톤을 목표로 물량을 확보했다"며 "갑자기 수요가 널뛰기하는 것은 아닌 만큼, 50만 마리란 숫자가 적게 보일 수 있어도 회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롯데그룹 승계 문제로 불거진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질의에 대해 "이와 같은 행사를 하려면 적어도 한 달 전에 기획을 짠다. 롯데그룹 관련 이슈가 발생했던 시기와 비교해보면 관련성이 없다"며 "일종의 오비이락"이라고 답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치킨, #정은정, #국민치킨, #하림, #롯데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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