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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4 블랙넛 출연 모습.
 쇼미더머니4 블랙넛 출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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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쇼미더머니 4>가 끝날 무렵이다. 2012년에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했을 때, 티저 영상 속 "대한민국 힙합은 <쇼미더머니> 전과 후로 나뉠 수 있다"라는 말은 프로그램이 4년째 접어든 지금에 와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건지, 파이만 커지고 속은 텅텅 빈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질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를 것이다.

다만, 이번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힙합 씬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즌이었다. 모두가 스눕독(Snoop Dogg) 앞에서 했던 싸이퍼라 부르고 난장판이라고 읽는 스테이지를 겪으며 지금 이 상황만 견디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느냐며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식의 논리를 들이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으려 한 사람이 소수거나 없었다면 바보가 되는 건 제작진이었을 것이다.

물론, 처참한 상황을 견딤으로써 오를 래퍼들의 가치(혹은 몸값)가 마지막에 남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눈치 게임의 승자만이 받는 리워드일지, 아니면 <데스노트> 속 수명의 절반을 내놓으며 얻는 사신의 눈처럼 문화를 갉아먹으면서 미리 땡겨 받는 사채일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모든 건 시간이 알려줄 테지만, 아마 그 시간조차도 엠넷(M.Net)과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힙합? 아~ 그 양아치 음악!

어쨌든 <쇼미더머니>가 계속됨과 동시에 이번 시즌에도 앞서 말한 '싸이퍼 스테이지' 등으로 한국 힙합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송민호, 블랙넛(Black Nut)이 주범이 된 이른바 '힙합 여성 혐오 사태'가 최고 이슈였다.

한국은 올해 들어 장동민이 과거에 했던 여성 혐오 발언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트렌드가 됐다. 덕분에(?) 김성주가 아내를 굴복시킬 때는 아이를 빼돌린다는 토크쇼에서의 발언도, 유재석이 <무한도전>에서 홍진경에게 한 "천상 여자네"라는 말까지도 크게 혹은 소소하게 회자되곤 했다.

그런 와중에 안 그래도 관심이 전혀 없는 몇몇 사람에게는 '사회 비판하면서 군대는 안 가는 가수들이 하는 음악', '욕하고, 마약 하고, 돈 많다고 유세 떠는 양아치 음악'으로만 제멋대로 인식되고 있는 힙합이 도마 위에 올랐으니 이 얼마나 공격하기 좋았겠는가.

실제로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래퍼들의 여성 혐오성 가사들을 모아 편집한 이미지 안에는 힙합이라는 외래문화가 국내에서 제대로 로컬라이징되지 못함으로써 생겨난 경우가 많았다(뉘앙스가 조금 다른 몇 개의 케이스까지 싸잡히긴 했다). 그리고 송민호의 가사는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힙합 웹진 리드머(Rhythmer)에 올라온 <'쇼미더머니' 여성비하 랩 가사 논란, 왜 문제시해야 하는가>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길게 얘기할 필요 없을 듯하다. "힙합은 원래 그래"라는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비교적 최근의 추세를 반영한 좋은 사례들이 열거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표적은 단연 블랙넛이었다. 하지만 그간 블랙넛에 관한 기사를 쓴 그 어떤 매체도 그가 가진 맥락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이윽고 다음 스테이지가 진행되면서 논란은 말 그대로 냄비처럼 사그라졌다.

이제는 블랙넛이라는 이름 앞에 '극혐'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거나 블랙넛의 본명 김대웅에 '갓'을 붙인 '갓대웅'이라고 부르는 두 파만이 생겼을 뿐이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보다 심층적으로 힙합, 디시인사이드(dcinside)와 일베가 주도하는 한국 특유의 인터넷 문화, 더 나아가 한국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적 구조 등의 맥락을 블랙넛과 엮어 짚어보려 한다.

디시인사이드, 일베, 그리고 모쏠아다

김콤비 시절의 음악
 김콤비 시절의 음악
ⓒ 유투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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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른 일인 만큼 사람들이 얼마나 자세히 알지는 모르겠지만, 블랙넛의 과거는 MC 기형아였고, 또 보이스웨어를 이용하여 랩 비스름한 걸 구사하고, 그걸 비트 위에 올려 음원을 공개하곤 했던 김콤비였다. 그는 김콤비 시절부터 디시인사이드 합성 필수요소 갤러리에서 유행하는 요소를 사운드 소스로 활용하거나 소스를 배치하는 방법을 비슷하게 가져가며 해당 커뮤니티의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 왔다.

또한, 당시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주요 갤러리의 주요 유행 코드였던 지역 차별, 성별에 무관하게 습관적으로 이뤄졌던 성적 희화화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가사를 선보였다. 이는 당시 김콤비에 열광하고 있던 힙합 커뮤니티 유저들에게는 길티 플레저로 인식되고 있었다. 개중에는 현재 주로 문제시되고 있는 MC 기형아 시절의 곡 '졸업앨범'에 버금가는, 표현 수위가 높은 트랙들이 대다수였다.

근래 흐름만 보면, 도덕적 기준에서 가장 저질스러운 커뮤니티로는 단연 일베가 꼽힌다. 하지만 일베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까지는 디시인사이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베에 비해 세분화된 갤러리의 수를 자랑하고, 또 저질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건 유저가 많고 문제가 자주 야기되는 몇몇 갤러리의 몫이었기에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7, 8년 전까지만 해도 "너, 디시하냐?"라는 말은 지금의 "너, 일베하냐?"와 거의 동급에 가까운 말이었다. 위의 두 집단은 시기나 결집력 등 몇몇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전성기 시절 주요 유저들이 가진 감성의 결만큼은 어느 정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기에 웹상으로 디시인사이드와 일베 유저들의 성별, 나이, 출신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들이 게시판에 올리는 글로만 유저들의 정보나 성향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감성 중 하나로 '모쏠아다'를 꼽을 수 있다.

이 해괴한 말이 무엇인고 하니, 모쏠은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본 사람을 뜻하는 모태 솔로의 줄임말이다. 아다는 한 번도 섹스를 안(못) 해본 사람을 뜻하는 말로 새롭다, 신선하다는 뜻의 일본말인 아따라시이(あたらしい)에서 유래됐다. 커뮤니티의 골수 유저들이 현실에서 연애 혹은 섹스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길은 없다. 다만, 그들은 게시판에서 자신들이 모쏠아다인 상태라 주장하며 자조적인 말을 늘어놓고, 더 나아가 그 사실을 희화화시키기까지 한다.

모쏠아다들에게 광명을 찾아다 준 인터넷

인터넷을 통해 모쏠아다 키워드가 자리 잡고, 또 그것이 커뮤니티를 크게 아우르는 몇몇 감성 중 하나가 된 것은 사실 우연이 아니다. 이에 가장 크게 기인한 요소로는 성 경험을 기준으로 권력관계가 구축된 한국 남성 커뮤니티를 꼽을 수 있다. 한국 남성들에게 성 경험은 마치 훈장 혹은 면허증이나 다름 없었다. 남성들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섹스 경험은 무용담이 됐고, 성관계를 맺은 여자의 얼굴과 몸매는 전장(커뮤니티)에서의 싸움을 위한 무기와도 같았다.

그 속에서 여성들은 그저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풀어주는 단순 성적대상으로 전락한다. 정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본질 없이 쓸데없는 싸움에 열을 올리는 남자들의 괜한 자존심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사이 서로의 몸을 공유하며 상대방의 애정을 느끼는 섹스의 정서적 기능은 삭제된다. 이는 곧 군대 가기 전에 섹스는 해봐야 할 것 같아서 클럽에 가서 원나잇을 시도해보거나 성매매 업소를 가서 총각 딱지만 떼고 오는 식의 추한 행동까지 낳는다.

하지만 모쏠아다들은 조금 특별하다. 과하게 마초적인 마인드를 갖거나 남성들끼리 정립해놓은 정상성에 부합하지 못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남자들과 다르게 그들은 클럽에 가지도, 성매매 업소에 가지도 않는다. 그들은 키나 얼굴 같은 신체적 조건이나 자존감, 자신감 같은 정서적 조건, 지역적 조건, 경제적 조건 등 몇몇 조건을 따져봤을 때 스스로 남성으로서 결핍된 상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핍 상태는 오랜 기간 유지되어오던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 아버지 세대들이 표방해오던 전형적인 남성의 이미지와 합치되지 않으며 모쏠아다들을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뜨린다. 지금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한 가정을 짊어지는 가장의 노릇을 해야 했고, 가족에게만큼은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즉, 남자는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울지 않아야 하며, 매사에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학습 받아온 셈이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컸음에도 모쏠아다들은 아버지와 거리가 먼 자신을 보면서 괴리감과 박탈감을 느낀다. 남자라고 다 그러란 법도 없는데 말이다.

이렇게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진 그들을 구원해준 건 건 다름 아닌 인터넷이었다. 무엇이 먼저였는가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쏠아다들은 현실 세계로 당당히 나오지 못해 인터넷 뒤로 숨거나 인터넷 뒤로 숨으면서 더욱더 현실 세계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 모쏠아다들은 실생활에서 쌓인 풀지 못한 분노를 인터넷을 통해 풀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화에 기본적으로 지역, 성별, 학력 등 이미 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종류의 여러 차별을 전제로 깔아놓곤 했다. 이러한 커뮤니티 내에서의 차별적 전제는 일종의 룰처럼 작용하기도 했다.

바닥에서 정상으로, 나약함을 강함으로

쇼미더머니 블랙넛 출연 모습
 쇼미더머니 블랙넛 출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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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얘기를 지나 다시 블랙넛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 역시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듯 김콤비 시절부터 지금에 오기까지 모쏠아다를 주된 캐릭터로 삼아 왔다. 더불어 앞서 말했던 PC함(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는 거리가 먼 위험한 수위의 발언으로 점철된 가사를 뱉어대 왔다.

물론, 블랙넛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나서 발표한 "양아치", "100", "Higher Than E-Sens"와 같은 트랙들은 과거 무료로 마구 공개했던 노래들에 비해 그 수위가 낮고, 감성의 결이 잘 다듬어져 있는 편이다. 그의 주 무기인 '최약자의 호전성'은 그대로인 채로 말이다.

힙합에서의 호전성은 보통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을 강조하며 나타난다. 래퍼들은 경쟁적인 속성을 지닌 랩 배틀에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자신의 장점(혹은 상대보다 나은 점)을 부각한다. 배틀랩 스타일의 노래에서도 자신의 랩 스킬이 얼마나 뛰어난지 다양한 표현법으로 과시한다.

반면, 블랙넛은 자신이 얼마나 한없이 약한지를 드러내면서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다'와 같은 마인드로 호전성을 드러낸다. 적절한 희화화도 물론 섞여 있다. 그의 노래와 <쇼미더머니 4>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블랙넛은 실제로 서울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호남 출신의 고졸 백수이고, 170이 안 되는 키와 깡마른 체격의 소유자다.

평범하게 생긴 데다가 친화력도 부족하며, 부모님의 부채를 먼 미래에 대물림받을 운명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사회에서, 또 힙합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게 없었다. 그저 랩을 잘하는 것 그 이상으로 충격을 가져다줄 수 있는 요소가 음악에 필요했으며, 블랙넛은 그 수단으로 나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호전성을 선택한 것이다.

몇몇 곡을 통해 그의 호전성을 알아보면, 우선 데뷔 싱글 '100'에서는 100명의 프로 래퍼들을 거론하며 모두 이길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내지만, 끝내 마지막엔 농담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쇼미더머니 4> 1차 경연 곡인 "M.I.L.E. (Make It Look Easy)"에서도 "나 X나 멋있지?"라고 관객에게 자신 있게 말하지만, 곧바로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빈지노'에서는 소재로 쓰인 래퍼 빈지노(Beenzino)에게는 모욕적일 수도 있는 말을 노래 내내 늘어놓지만, 자신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닿을 수조차 없는 존재에 대한 헌사(?)를 보내는 거로 마무리한다.

또한, 호전성이란 코드와는 다른 결일 수도 있지만, '양아치'에서는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여자들을 욕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며, 찌질하고 더러운 양아치라고까지 묘사한다. 그의 호전성은 대체로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며 성립된다.

어쩌면 그가 내뿜는 특유의 호전성은 지금에 와서 다소 위협적으로 변모했을 수도 있다. 이제 그는 단순히 힙합 커뮤니티 속 자작 녹음 게시판에 자신의 녹음물을 올리는, 래퍼가 되겠다고 설치는 백수가 아닌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준결승 진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모쏠아다임을 자처하고, 메이크업과 카메라 마사지를 받고도 딱히 잘생겨지지 않았다. 그저 딱딱한 국어책 플로우를 자랑하는 랩만 할 줄 안다. 세상에 욕만 했던 어제를 부끄러워하면서도 오늘을 떳떳하게 살기 위해 이제 겨우 세상에 한 발짝 나선 그가 과연 진정으로 위협적인지는 다소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대중들 중 일부가 그런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배제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은 왜 보지 않는가 

논란이 되고 있는 블랙넛의 가사와 노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의 지점이 남는다. 우선, 예술, 그리고 음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선에서 이뤄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졸업앨범'을 비롯한 과거 믹스테잎의 가사들은 하나같이 현재 한국 사회 분위기상 용인될 수 없는 지경이다. 중학교 짝꿍과 그의 남자친구를 강간, 살해하고, 친구의 엄마를 탐하고 싶다는 등의 내용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하지만 이 역시 트랙 안에 담긴 내용 그 자체가 아닌 믹스테잎 전체에 다른 어떤 맥락이 있다고 보면 판단은 달라질 수도 있다.

음란물에 관한 영미권 사회의 판결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히클린 판결과 율리시즈 판결은 이에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히클린 판결은 1868년 영국에서 내려진 엄격한 음란물 규제의 효시가 된 판결로, 받아들이는 주체를 청소년과 같은 정서적 취약체로 지정하고 음란물을 판단한 사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부분적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음란한 지점이 있으면 무조건 음란물로 간주했었다.

그와 다르게 1934년, 미 연방 대법원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를 두고서 내린 판결은 음란한 지점이 부분적으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이 어떤 의도에서, 왜 쓰였는지와 같은 큰 그림까지 보는 판결이었다. 이는 히클린 판결이 있은 후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오던 음란물에 대한 기준을 확 뒤바꿔놓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에서 내려진 판결이라지만, 율리시즈 판결은 지금까지도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거론되는 사례다.

문제시되고 있는 블랙넛의 믹스테잎 [기형아 : Malformed]에는 그가 <쇼미더머니 4> 준결승에서 불렀던 '내가 할 수 있는 건'의 원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이 곡에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랩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얼마나 어두운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그런데 대중들은 서두에서 말했던 '졸업앨범'의 가사만을 본다.

믹스테잎의 다른 수록곡들이 워낙 저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만으로 그 모든 내용을 퉁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는 명백히 모두에게 공개된 맥락 중 일부분만을 편집한 것이다. 만약 '졸업앨범'뿐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건'까지 함께 웹을 돌아다녔다면 대중들 중 일부분은 어쩌면 지금의 히클린 판결과 같은 판단이 아닌 율리시즈 판결과 같은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블랙넛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했으면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걸 공개적으로 풀어놨다. 아마 준결승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대를 보고 감동한 사람 중 한 달 전쯤에는 그를 신랄하게 욕하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돌연변이

쇼미더머니4 블랙넛 출연 모습.
 쇼미더머니4 블랙넛 출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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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한다. 그런 극악무도한 내용의 가사를 쓰지 않고도 충분히 잘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방 출신, 고졸, 빚쟁이의 자식, 찌질이, 모쏠아다와 같은 타이틀을 가진 채로 절망하는 사람이 밝은 이야기를 하며 희망을 꿈꾸는 게 과연 쉬울까?

이를 부정하며 블랙넛을 '똘아이'로만 낙인 찍는 건 가부장제, 남성 커뮤니티 내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 우리 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던 구조적 모순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블랙넛에게 이 모든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방법은 그저 발발대며 자신이 그나마 가장 잘하는 랩을 과격한 가사와 함께 뱉는 것뿐이었다.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겠지만, 마치 마약이 창궐하는 빈민가에서 랩 아니면 농구만이 가난의 굴레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가난했던 흑인들처럼 말이다.

지금도 블랙넛은 어느 커뮤니티에서 욕을 먹고 있을지 모르며, 그의 고향 집 앞에는 누군가가 그와 그의 가족을 욕하기 위해 서 있을 수도 있다. 또, 송민호처럼 무대에 태양을 섭외할 수도, 멋들어지게 핸드폰 CF를 찍을 수도 없다. 그래도 블랙넛의 선전은 값지다. 시쳇말로 '일반인 코스프레'하며 잘된 게 아니라, 준결승 무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을 부르며, 자기 서사를 꾸밈없이 선보이면서 앞서 언급한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가 정당한 것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할 것도 아니지만, 이로써 그는 모쏠아다인 채로 계속 주저앉아 있기보다는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한다. 이 긴 글에 많은 말을 담았지만,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블랙넛은 싸이코나 또라이가 아닌 우리 주변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이 시대의 돌연변이라는 걸. 그리고 남들과 똑같이 성공하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웹진 힙합엘이(http://hiphople.com/)에도 올라갈 예정입니다.



태그:#쇼미더머니4, #블랙넛, #디시인사이드, #저스트뮤직, #돌연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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