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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도 역사이야기를 한 번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사이야기를 할까 생각중입니다. 실은 아우구스티누스 책을 지금 몇 권을 보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역사는 로마가 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는가를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서입니다. 일단 역사를 살펴보시죠.

기원후 37년 한 인물이 태어납니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황제로 만들어 버리죠! 그는 로마의 황제가 되었을 때도 기존의 황제들처럼 살지 않고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이했죠. 그는 자신의 황제직도 포기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특히 기원후 64년 기름 창고에서 불이 붙어 로마가 불타자 그 원인을 기독교인들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부터 하려고 시작합니다. 원래는 유대교나 기독교는 로마와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눈 돌릴 대상이 필요한 것이지요. 자신들의 잘못을 대신 욕먹어줄 대상이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욕먹어줄 기독교가 실제로 적이 되어버립니다. 하도 나쁘다. 나쁘다 하니까 정말로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로마인들은 기독교를 박해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인을 숨기면서 살아가지만 그들만의 생활공간을 만듭니다. 인터넷에 카타콤이라 쳐보시면 굉장히 신기한 거주지역이 나오는데요, 무덤을 개조해서 살았던 곳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무덤에서 살았습니다.

로마는 기독교인은 죽였지만, 기독교인들의 숫자를 줄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늘어났죠. 그리스 문화를 지키고 싶었던 황제들이 기독교 문화를 막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박해를 했는데도 늘어났으니 말이죠. 또한 로마 황제들은 조금만 잘못하면 암살을 당하니, 이것도 저것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기원후 284년에 동부 주둔군이 황제로 선포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개혁을 통해 후기 제정을 확립합니다. 그는 자신만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죽을까봐, 막시미아누스를 공동 황제로, 코스탄초 클로로와 갈레리오를 부황제로 지명했습니다. 로마4두정의 시작입니다.

이와 같이 군부가 로마 제국의 통치권을 장악함으로써 원로원의 세력이 영영 회복될 수 없도록 했고, 두 부제들로 하여금 각기 두 황제의 계승자가 되게 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나라를 나눈 뒤에 로마적 전통을 계승하고, 무자비하게 기독교를 박해합니다. 그의 박해에도 살아남은 기독교는 오히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았지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망 후 4두정 제도가 위기에 놓였습니다. 305년에 끝난 첫 번째 4두정에 이어 들어선 2번째 4두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306년 콘스탄티우스가 죽자 갈리아와 브리튼의 군대는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황제로 선포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콘스탄티누스가 바로 기독교 박해를 끝내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가 대제로 불리기 전까지는 정치적, 종교적 어려움을 겪습니다. 막시미아누스의 아들 마센티오는 즉각 로마에서 스스로를 황제로 선포하고 아버지를 다시 황제로 복귀시켰으며 세베루스를 제거했습니다.

이에 로마는 308년 갈레리오가 콘스탄티누스에 맞세워 황제로 선포한 리키니우스와 아프리카에서 반란을 일으킨 도미티우스 알렉산드르를 포함해 7명의 황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계승자 상호간의 투쟁에서 콘스탄티누스와 마센치오가 세력을 장악하여 이 두 사람 사이의 싸움 역시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마센티오에 대항할 수가 있었고, 승리를 거둔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공포하여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에 대해서 항상 호감을 표시하여 성직자들에게 특혜를 베풀면서 선교 활동을 돕는 반면, 그 당시로써는 아직도 분명하게 볼 수 없었던 종교 세력에 대한 세속적인 도구화의 위험을 교회 안에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가 기독교인이어서 그가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요, 정치적인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황제가 될 수 없었는데 입지가 약하니까, 민중들의 지지로서 정치적 장악력을 높이려고 한 것인데, 딱 떨어진 것이지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만 공인했다고 해서,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서 황제가 아닌 대제가 된 것은 아닙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체제 개편 작업을 완성했고, 사회 다방면에서 개혁을 주도했으며, 비잔티움으로의 천도 조치를 한 것 등이 향후 제국의 1천년을 넘는 지속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합니다.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릴게요. 기원후 379년경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자신은 심한 병을 앓고 난 뒤 380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제국 내에서 신앙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했는데, 병에서 회복되자마자 교회 당국자들에게 아무런 자문도 구하지 않고 모든 시민들이 니케아 신경을 신봉해야 한다고 규정한 칙령을 발표했다. 그래서 국교가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흡수로 313년 밀라노 칙령 때, 기독교에 대한 자유가 선포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자신이 병이 낫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해 버립니다. 테오도시우스의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버리는 선포는 392년 모든 로마지역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택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철학인물사인데 역사 이야기를 두 시간이나 했네요! 잘 들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한 내용들을 단어로 정리해 보면 네로황제, 기독교박해, 로마4두정, 콘스탄티누스대제, 313년 밀라노칙령, 테오도시우스황제, 380년 기독교 국교선포정도로 될듯합니다. 한주동안 건강하시고 다음시간에 인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팟캐스트와 팟빵에서 방송하는 <철학인물사>의 내용을 기사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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