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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시선이 궁금했습니다. 22기 대학생 인턴 기자들이 치마를 입는 남성, 임신한 여성, 남자 누드 모델 등으로 분했습니다. 그리고 시선이란 말 뜻 그대로, '눈이 가는 길'에 서봤습니다. 그 생생한 체험담을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이마트 일산 풍산점 화장실에서 한 남성과 마주쳤다.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내 다리를 보더니 얼굴을 본다. 그리고선 가슴 쪽을 훑더니 다시 얼굴을 본다.

"아… 저 남자예요."

내가 선수쳤다. 굵은 목소리를 들려주어 그를 안심하게 했다. 그제야 그는 안도하며 소변기 앞에 섰다. 그러면서도 거울 앞에 선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거울 앞 내 모습은 그가 놀랄 만했다. 지난 19일, 나는 하얀 티셔츠에 회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불볕더위보다 더 뜨거운 사람들의 시선

치마가 입어보고 싶었다. 바람도 잘 통하고 하체가 자유로워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치마를 입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남자라는 것이다.
 치마가 입어보고 싶었다. 바람도 잘 통하고 하체가 자유로워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치마를 입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남자라는 것이다.
ⓒ 양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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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최고기온 32.9도. 폭염주의보가 발동됐다. 치마가 입어보고 싶었다. 바람도 잘 통하고 하체가 자유로워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치마를 입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남자라는 것이다.

'남자가 치마를 입으면 이상하다'는 편견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결국 치마를 사러 갔다. 치마가 거기서 거기인 줄 알았건만, 치마의 세계는 넓고 다양했다. A라인, H라인, 맥시, 미디, 테니스, 플레어 등. 나로서는 도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종류별로 집어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매장 점원이 이상한 눈길을 보냈다. '쿨'하게 무시하고 하나씩 입어보았다.

'착' 달라붙는 치마를 입었더니 나의 중요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바지엔 충분한 공간이 있지만, 치마는 그렇지 않았다. 아래가 펑퍼짐한 치마를 위로 올려 입어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맵시가 영 아니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는 것까진 할 만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길거리로 나왔는데, 아무것도 안 입은 느낌이었다. 하체가 자유롭고 바람이 잘 통하긴 했다. 그러나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불볕더위보다 내 꼬락서니가 더 낯 뜨거웠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내 꼴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차마 부끄러워 휴대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하철 안에서는 더 심했다.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위아래를 훑었다.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다'는 패기로 시작했는데, 패기는 사라지고 부끄러움만 커졌다.

"한번 들춰봐, 꼬추 달렸나 보게"

지하철역에서 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남자인데 왜 치마를 입었어. 호호. 예쁘네. 시원하지?"
 지하철역에서 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남자인데 왜 치마를 입었어. 호호. 예쁘네. 시원하지?"
ⓒ 양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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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를 여자로 볼까 남자로 볼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내가 봐도 헷갈렸다. 볼수록 이상했다.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노약자석에 계신 할머니 세 분이 대화를 시작했다.

"저것 봐 저거. 저게 남자여 여자여?"
"다리 보니께 남자 같은디."
"가슴이 없잖어. 남자네. 아이구 세상에나. 근데 왜 저러고 다닌댜. 호호호."


할머니들은 귓속말하셨지만, 내 귀엔 적나라하게 들렸다. 내 얘기를 하는 게 분명했지만 나는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할머니들의 예상대로 내가 남자였기에 망정이지, 내가 다리에 털이 있고 가슴이 없는 여자였다면 그 수치심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 말대로 다리에 털이 있고 가슴이 납작한 남성이다. 하지만 내가 입은 치마 한 장이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종로에서 할아버지 여럿이 모인 자리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할아버지들 사이에 끼어 토론 거리가 되었다. 한 분은 나를 보며 "피부가 곱상하니 여자"라고 말하셨고 또 다른 분은 "가슴이 없으므로 남자"라고 반박하셨다. 내가 남성임을 밝혔는데도 논쟁은 계속됐다.

"한번 위로 이렇게 들춰봐. 꼬치 달렸나 보게."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자 내 뒤에 있던 할아버지가 진짜로 내 치마를 들추셨다. 나는 졸지에 할아버지들에게 내 정체를 확인사살 해드렸다. 성별 논쟁을 끝낸 할아버지들은 나를 두고 품평회를 열었다.

"불알에 땀은 안 차서 좋겠구먼."
"브라자만 하면 딱 이쁘겄네. 이쁘장하니 남자들이 좋아하게 생겼어."
"치마가 더 짧아야 해. 미니스카트로. 그래야 예뻐."


성희롱 섞인 농담이 이어졌다. 내겐 별다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기분이 묘했다.

종로에서 할아버지 여럿이 모인 자리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할아버지들 사이에 끼어 토론 거리가 되었다.
 종로에서 할아버지 여럿이 모인 자리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할아버지들 사이에 끼어 토론 거리가 되었다.
ⓒ 양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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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입은 나를 본 엄마 "부모 망신 시키지 마라"

치마를 입으면 앉을 때가 고역이다. 다리가 좀처럼 오므려지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으니 자꾸 벌어진다. 다리를 계속 오므리고 있으려니 골반이 아렸다. 혹여나 내 속이 보이진 않았을까 상대편 사람에게 미안했다. 신발 끈도 함부로 묶을 수가 없었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뒤를 자꾸 신경 써야 했다. 결국 가방으로 치마 뒤를 가렸다. 편하자고 입었던 치마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길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예쁘다"라며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니까 마음대로 입고 다녀도 된다"라고 격려하셨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게 이렇게 당부했다.

"아버지 앞에선 입지마. 부모에게 상처 주면 안 돼."

정말일까. 부모님께 치마 입은 내 사진을 보냈다. 곧 답장이 왔다.

"부모 망신 시키지 마라."

나는 항상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치마를 입은 순간 망신거리가 되었다. 엄마는 "징그럽다"라며 "네가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부모를 욕한다"라고 만류했다. 내 사진을 본 아빠는 밤새 우울했다고 한다. 아빠는 "너의 돌발행동에 부모는 심히 우려된다"라며 걱정을 표시했다.

고작 치마 하나 입은 게 그리 큰일일까. 치마는 원래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고대부터 스커트(치마)는 남녀를 불문하고 편하게 입는 복식 형태였다. 로마 군인의 스커트나 스코틀랜드의 '킬트(kilt)'는 남성성을 상징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치마를 입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움직임도 곳곳에 있다. 패션계에서는 남성 스커트 패션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연예계의 대표적인 패셔니스타 지드래곤(권지용)도 종종 치마를 입었다. 그때마다 지드래곤에겐 '간지 좔좔', '패션 선구자'라는 식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내가 치마를 입으면 부끄러움만 가득하다. 내가 치마를 다시 입는 날이 올까?

계단을 올라갈 때는 뒤를 자꾸 신경 써야 했다. 결국 가방으로 치마 뒤를 가렸다. 편하자고 입었던 치마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뒤를 자꾸 신경 써야 했다. 결국 가방으로 치마 뒤를 가렸다. 편하자고 입었던 치마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 양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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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임성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남자 치마 입기, #체험기,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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