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일 광주지법 형사 5단독 재판장은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5월에도 동 재판장은 3명의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적이 있다. 첫 번째 무죄 선고 법정에서 "작은 불씨가 큰 변화의 불씨를 일으키기 바란다"고 부언한 것을 보면 이미 예상된 판결이다.

13일에는 수원지방법원 형사 2단독도 2명의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하는 하급심 법정의 분위기로 보아 전국적으로 확산할 여지가 크다. 일선 법관들의 고뇌의 표현이다. 피고인들도 불쏘시개로 위헌제청과 헌법소원 신청을 계속하며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도 유럽도 이스라엘도 인정하는 병역거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관련 여론 수렴을 위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열리는 지난 7월 9일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죄수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은 위헌'이라며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 '다양한 양심이 존중받는 사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관련 여론 수렴을 위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열리는 지난 7월 9일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죄수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은 위헌'이라며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번 판결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시기적으로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 폭발 사건과 겹쳐져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2004년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 전에는 연평해전, 2011년 헌법재판소의 2차 판결 전에는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피격이 있었다. 지난달 7월 초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이 있었고 빠르면 올해 안에 선고가 예상된다. 북쪽의 도발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어찌 되었건 병역거부 반대 측에게는 호재이고 찬성 측에게는 악재로 보인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를 보면 평화 시기가 아니라 전시에 해결책이 모색되었다. 미국은 남북 전쟁 당시, 유럽은 세계대전 이후, 병역거부자 문제를 해결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반도의 러시아 침공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자를 위한 민간 행정청 주관의 대체복무를 마련했다. 한반도가 유일한 분단국가이고 휴전 상태라는 사실만으로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대한민국과 대조가 된다.

여성도 징집을 하는 이스라엘은 근본주의 유대교 신자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서 면제해 주고 있다. 외신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은 혁명과 내전의 정국 불안을 경험한 바 있지만, 지난 1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서구사회는 소수자들의 양심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국가 형별권의 남용을 막고 대체복무를 통해서 사회 대통합을 이뤘다. 반면, 한국 국민의 병역에 대한 인식 형성의 기저에는 피해의식으로 인한 불만이 스며들어 있다. 무장하고 인명 살상을 훈련하는 데 대한 거부감. 우리 사회는 이 거부감을 인정하는 시각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병역이 신성하다는 국가의 주장은 구호일 뿐이다. 국가가 군대를 신성하게 운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필자들은 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타인도 자신과 똑같은 군대의 피해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당연히 병역거부자들과 병역기피자를 구분하지 않고 둘 다 무임승차자라며 저주한다.

병역거부자들이 이기적인 병역기피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도 조건 없는 반대에 부닥치는 데는, 국방부의 인권 의식 빈약과 보수개신교의 반공 정책이 한몫을 한다. 종교는 현실 순응의 나약함이 아니라 현실을 극복하는 내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일제강점시기나 지금이나 신앙심이 도전을 받을 때마다 현실에 순응하고, 저항을 적게 받는 길을 택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신앙상의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개신교를 찾기가 어렵다. 서구 사회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에는 주류 개신교의 지지가 있었다. 한국 개신교는 그들의 뿌리인 서구 개신교단이, 양차 세계대전을 후원한 데 대해 참회했음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역사적 사실을, 잊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도 순수한 민간 행정청이 주도하는 분야를 선정해서 징벌적 성격이 아닌 합리적인 기간의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관행을 중단하라는 UN 인권이사회의 반복되는 권고에 대해서 '권고'일 뿐 강제력이 없다는 대응은 인권 이사국의 태도가 아니다.

2015년 1월 22일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는 UN 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검토(UPR) 실무 그룹 21차 회기 아르메니아 보고서 심리에서 아르메니아 정부의 포괄적 보고서를 평가하면서 아르메니아 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한 것에 대해서 인권 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평가한다는 성명서를 배포했다.

아르메니아는 정부는 2013년 11월 12일, 군 복무를 거부하여 수용되어 있던 마지막 14명의 병역거부자를 석방했다. 지난 20년 넘게 450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한국처럼 수용되어 있었다. 한국은 60년 이상 1만8000명을 수감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자국의 병역거부자는 처벌하고 있으면서 아르메니아 정부의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인권의 증진이라고 평가하는 이 이중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GNP 세계 31위인 한국이 120위인 아르메니아보다 인권 상태가 더 열악해서야 되겠는가?


태그:#병역거부, #대체복무제, #UN인권이사회, #자의적 구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유-사회의 제반 문제거리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 이면 에 숨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저.... 관심분야- 소수자의 인권문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