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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전후 70년에 관한 역사인식을 반영한 담화(일명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전후 70년에 관한 역사인식을 반영한 담화(일명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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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전후 70주년 '아베 담화'가 각의 결정을 거쳐서 8월 14일 오후 6시에 발표되었다. 애시 당초 아베 담화의 내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아베총리의 지금까지 우익적인 언동을 볼 때 주변국의 의구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은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계승을 요구하면서, 아베 담화가 한일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중국은 아베 담화에 분명한 사죄를 촉구하였다. 일본 지식인과 시민단체, 보수 언론까지 나서서 침략과 사죄 문구를 추가하라고 하였다. 나카소네 전 수상은 일본의 전쟁범죄 기억이 100년은 간다면서 사죄를 조언하였다. 연립여당으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공명당도 침략과 사죄라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며 압박하였다.

무라야마 담화보다 후퇴한 아베 담화

그러나 아베 담화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하는 실망스런 것이었다. 사죄의 진정성이 거의 엿보이지 않았다. 아베 본인이 직접 침략과 식민통치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할지가 관심사였지만, 역대 내각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전체적으로 무라야마, 고노 담화를 승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반성과 사죄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1995년 8월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각국에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되어 있다.

무라야마 담화 내용은 1998년10월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 1998년11월 장쩌민-오부치 중일 공동 선언에서 인용되었다.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가 되어 갔다. 후쿠다 내각, 아소 내각도 무라야마 담화를 수용하였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의 담화를 존중한다는 것으로 정리해 버렸다. 본인의 직접적인 사죄 표현으로 1984년 쇼와 일왕이 전두환 대통령과 만찬사에서 내놓았던 '통석(痛惜)의 염(念)'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그저 애끓는 심정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명시되지 않고, 아시아인보다 자국민의 손해와 고통을 우선시하였다. 1995년 아시아 각국과 일본 국민에 사죄하였던 무라야마 담화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일본 극우파와 동일한 아베의 역사관

아베 담화의 실망스런 수준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아베 총리는 담화 작성을 위해 '21세기 구상 간담회'를 설치하였다. 8월 6일 나온 최종 보고서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 조선과 타이완에서의 식민통치를 적고 있다. 보고서는 전쟁을 침략으로 규정했지만, 국제법상 침략 정의가 다르다는 주석도 달아 놓았다. 1930년 식민지배가 가혹했지만, 조선은 1920년대 경제성장을 맛보았다고 강변한다. 당시 서구 열강이 야만, 미개지역을 문명화하고자 식민지로 삼은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적고 있다.

아베 담화는 19세기말 서세동점 시대에 일본은 독립을 지켜냈으며, 러일전쟁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우익그룹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러일전쟁은 조선에게 식민지배로 인한 엄청난 고통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일본군 수송을 위해 부랴부랴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수많은 조선농민들이 강제 동원되고 토지를 강탈당했다. 이에 저항하는 의병들은 대량 학살되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의 원형으로 기록될 정도이다.

러일전쟁 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져 조선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시마네현이 일방적으로 독도를 편입시켜 영유권 분쟁의 씨를 뿌렸다. 한반도를 획득한 일본은 중국, 동남아로 진출하면서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결국 원폭을 맞고 패망하였다. 러일전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준 것이 아니고, 아시아와 일본 국민에게 살상과 고통을 유발한 죄악의 뿌리였을 따름이다.
 

아베 총리의 한국 무시는 노골적이다. 담화에서 '전쟁의 온갖 고통을 겪은 중국인', 미군 을 지칭하는 '포로'의 고통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빠져 있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도 없다. 그저 식민지배와 영원히 결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도 아시아 각국을 식민지화했고 일본도 그랬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그런데 이제 식민지배는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불법점거와 식민통치 과정에서 벌어진 약 7천 명의 3.1 운동 참가자 학살,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창씨개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 명백하고 직접적인 사죄는 없었다. 

20세기 전시하 여성의 존엄과 명예가 손상되었다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바로 곧 21세기 여성인권을 지키기 위해 세계를 주도하겠다고 강변하였다.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마저 부정하고, 국가책임과 전후보상도 하지 않으면서 궤변을 늘어놓은 셈이다.

제대로 된 반성도 없으니, 사죄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성과 사죄는 본인 내지 국가의 정서를 표현한다. 국어사전에 있는 반성(反省) 개념은 과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다. 난징대학살이나 3.1운동 양민학살,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되돌이킬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반성은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한 후회, 회한이 담겨 있다. 영어로 'remorse', 'reflection'에 해당한다.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자신과의 대화이자 타자를 향한 발신이다. 반성은 재발 방지가 중요하며, 미래 지향적이다. 사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가해자로서 일본이 피해자인 한국, 중국에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서 반성에는 반드시 사죄가 따라야 한다. 하나의 담화 속에 두 개 용어가 동시에 들어가야 한다.

사죄는 보상을 포함하고 있다. 보상은 사죄를 물질적 차원에서 분명히 드러내는 행위이다. 전후보상은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 다루지 않았던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물적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을 포함한다. 한일 간 미해결된 쟁점 사항들이다.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 미쓰비시 중공업, 산케이 신문을 상대로 미국의 재판소에 전후보상을 요구하는 국제소송을 제기하였다. 지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노역 해석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전후보상 소송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베 총리와 일본 외무성이 진정성이 담긴 사죄 표현을 꺼린 이유를 알 수 있다.

아베의 자화자찬

15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8·15 반전평화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사과없는 아베담화'를 규탄하며 종각사거리까지 행진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8·15 반전평화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사과없는 아베담화'를 규탄하며 종각사거리까지 행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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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반성과 사죄에 인색한 아베 총리가 전후 일본의 국제적 활동에는 되레 후한 점수를 주었다. 전후 일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부각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교육, 의료지원을 통해서 국제 사회에 기여했다고 자화자찬하였다. 심지어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는 듯한 메시지까지 보내고 있다.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무력행사에 반대하고, 적극적 평화주의를 높이 내걸겠다고 한다. 2003년 미국과 일본, 동남아 각국이 중국에 대하여 해양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한 내용과 비슷하다. 미국과 필리핀은 아베 담화를 환영하고 나섰다.

반성문이라기보다는 선언문에 가까운 것이 아베 담화의 내용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 혼자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걱정스럽다. 이는 '보통 일본인'의 한국, 중국에 대한 염증을 반영하고 있다.

2015년6월 나온 요미우리, 한국일보 한일 공동조사 결과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일본 총리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가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일본 75%인 반면, 한국은 단 4%이다. '위안부 보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노력을 평가한다'가 일본 54%인 데 비하여 한국은 3%에 불과하다.

한일 시민사회의 내셔널리즘이 강해지면서, 양국 정부의 외교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가 73%에 달하여, 지난 2년간 최고치에 달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을 신뢰할 수 없다'가 85%이다. 지난 20여 년간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의 대일 불신이 강했다. 그런데 요즘은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거세다.

아베 담화에 담긴 내용은 향후 한일, 중일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해법을 둘러싸고 외교당국 간 협상을 거듭하고 있다. 분리되지 않고 결합된 하나의 외교 패키지로 다루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더 이상 양국 간, 또는 국제사회에서 외교쟁점이 되지 않기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와 시민단체에 대한 활동 규제마저 요구하고 있다.

일본측이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을 원한다면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강제연행 사실과 국가책임 인정, 입법을 통한 사죄와 보상 등을 집행하는 것이다. 일본이 제 역할을 한다면 한일 양국 간 화해도 기대할 수 있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이 진정어린 사죄와 자발적인 전후보상은 피해자, 주변국과 화해를 가능케 한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다. 원전 재가동, 안보법제 강행, 오키나와 미군기지 등 반대와 비난이 드세다. 외교 성과를 거두어서 국내 지지율을 회복하고 싶은 것이 아베 정권의 속내이다. 9월 중일 정상회담이 예상되고 있다.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번이 첫 공식 아베–시진핑 정상회담이 된다. 이미 반동회의, APEC회담 중에 중일 정상회담이 두 차례 있었지만, 다자간 국제회의 가운데 약식 회담이었다. 그만큼 무게가 다르다. 한국은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하여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자 하고 있다. 위안부 등 핵심 쟁점이 기다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동아시아 정세와 한일관계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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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8.15 경축사는 실리외교를 모색하는 박근혜 정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대일 원칙 외교를 고집하면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않은 것은 국익에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외교 위기론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아베 담화에 불만이지만, 9월 6일 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외교 특사를 교환하면서 물밑 교섭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 북한과 접촉 횟수를 늘리고 있다. 베이징과 몽골에서 이미 수차례 북일 회담이 열렸다. 납치자 보고서가 상당히 완성되고 있으며,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마저 솔솔 나오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경사된 한국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한중일 관계에서, 한미일 관계에서 한국은 나홀로가 아닌가 하는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남북관계가 최악이고 한일관계 전망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담화가 기대 수준에 못 미친다면서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대일비난보다는 관계개선에 비중을 두고 있다. 분명한 어조로 위안부 해법을 요구하던 이전과 달리,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양국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0월 중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을 생각하면 대일비난은 자제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내년 4월 총선거와 하반기 대권경쟁을 생각하면 올해 연말까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통한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일본은 한중일 정상회담에 찬성이다. 중일관계도 대립보다는 관리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아베 담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한일관계,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동북아에서 외교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어떤 셈법으로 복잡다단한 동북아 국제정세를 헤쳐 나갈 것인가, 한일관계 개선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양기호님은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입니다. 이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아베담화, #무라야마 담화, #종전 70주넌, #광복 70주년,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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