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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인터넷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올라온 사진이다.
▲ 노란색 반송 스티커 지난 3일 인터넷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올라온 사진이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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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노란색 '택배 반송 스티커'의 진원지는 세종시의 한 아파트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는 아파트 주민과 협의로 배송이 재개됐지만 '을의 눈물'은 여전했다.

참다참다 '반송 딱지'... 그러나 달라진 점은 없다

7일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결과, '택배 반송 스티커'는 세종시에 소재한 4개 택배 회사 대리점 사장이 협의를 통해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A택배사의 한 관계자는 "세종시의 한 아파트 측이 택배 차량을 단지 내로 들여보내주지 않았고, 경비실은 물건을 맡아주지 않으면서 상품 배송에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 7월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들 택배사는 실제로 해당 아파트에 배달해야 할 택배에 노란색 반송 스티커를 붙여 반송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스티커를 붙여 반송했었고, (고객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다, 심지어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관련기사] "택배기사는 노예 아닙니다" '택배 반송 스티커'의 진실은?

현재는 다시 해당 아파트에 물건이 배달되고 있다. 그러나 택배 차량을 아파트 정문에 주차한 뒤, 짐을 손수레에 옮겨 담아 배달하는 상황은 이전과 바뀌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결국 (반송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면서 "지금은 책임감으로 한다, 나도 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무작정 상품을 배송 안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전과 달리 경비실에서 택배를 맡아 주고 있는 점도 배송를 재개한 이유 중 하나다.

A택배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아파트 주민들이 갑질을 한다는 얘기는) 언론에 의해 많이 와전된 얘기"라면서 "택배를 받으러 내려오기도 하는 등 택배 기사한테 협조해주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많은 주민들의 의사와 달리) 몇몇 아파트 동 대표나 회장분들이 택배 차량의 진입을 막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던 '택배 반송 스티커'는 사라졌지만, 택배 기사들은 여전히 배송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택배 차량의 출입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면서도 택배 기사들의 근무 여건을 개설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해법의 일환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실버 택배' 모델이 시행되고 있어 주목된다.

'갑질' 대안으로 떠오르는 '아파트 실버 택배'

7일 정오, 서울시 1호 '실버종합물류소'에서 상품 분류 작업 중인 실버 택배원들.
 7일 정오, 서울시 1호 '실버종합물류소'에서 상품 분류 작업 중인 실버 택배원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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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왔어."

7일 정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967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 백련산 힐스테이트 3차 안. 건물 사이로 높이 3.5m 남짓의 2.5톤 cj대한통운 트럭이 들어서자 파란색 조끼를 맞춰 입은 노인 다섯 명이 모여들었다. 등에는 '배달의 기수'라고 쓰여 있다. 파란색 야구 모자 아래로 희끗한 모발이 보이는 이들은 이 단지 안에서 택배 운송을 담당하는 '실버 택배원'들이다.

실버 택배원들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최초로 민관이 협력해 추진한 '어르신일자리 아파트 택배사업'을 통해 고용됐다. 민간 기업인 cj대한통운과 기초자치단체인 은평구청 그리고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노인 일자리 증진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 취지를 긍정적으로 여긴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안에 '실버종합물류소'가 들어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줬다.

이곳에 고용된 노인은 총 10명. 대부분 70대 남성 노인으로 5명씩 조를 이뤄 격일(월수금, 화목토)로 근무한다. 매일 정오께 cj대한통운 은평지점이 이 아파트 단지로 배달 온 상품들을 전달하면 실버 택배원들이 집집마다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실버종합물류소'가 담당하는 주민은 2차와 3차, 총 2115세대. 하루 평균 이곳으로 오는 200~500개의 상품을 다섯 명이 나눠 배달하면 오후 6시께 일과가 끝난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면 월 평균 40만~50만 원의 급여를 손에 쥔다.

7일 정오, 서울시 1호 '실버종합물류소'에서 상품 분류 작업 중인 실버 택배원들.
 7일 정오, 서울시 1호 '실버종합물류소'에서 상품 분류 작업 중인 실버 택배원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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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의 출발은 노인 복지와 일자리 창출이었지만, 최근에는 예상치 않게 택배원들의 고통도 덜어주는 부수적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서울시 1호 실버종합물류소가 들어선 이 아파트는 지난 2011년 12월에 입주를 시작한 신축 아파트다. 시공사가 '쾌적한 자연환경'과 '청정 생활'을 내건 아파트답게 지상에는 주차공간을 최소화하고, 그 자리에 울창한 나무를 심고 쉴 공간을 마련했다. 차량 또한 정문부터 지하주차장까지 한달음에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주민들에게는 새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는 평온한 공간이지만, 상품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들에겐 고역인 구조다. 이 지역에서 10년째 배송 업무를 담당한 이정민(44) cj대한통운 은평지점 팀장은 "요즘 아파트는 택배 기사들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멋있게만 지으려고 한다"라면서 "주차 공간이 없고, 세대마다 입구도 제 각각이라 핸들카를 끌고 수십 번을 오가야 하는 곳도 있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배송 건당 소액 수수료를 챙기는 택배 기사들에겐 효율이 극히 떨어지는 공간이다. 이 팀장은 "시간이 곧 돈인 택배 기사들은 하나라도 더 배송해야 하는데 단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딱지를 붙여 반송한 택배 업체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또 "안해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며 '진입 금지'로 인한 배송 업무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결국 조급한 택배 기사들은 떠넘기듯 경비실에 상품을 맡겨두고, 경비원에겐 순찰 업무 외에 택배 보관이라는 가욋일이 추가된다. 경비원 부재 시에 상품을 찾으러 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가는 주민의 불만도 클 수밖에 없다. 이는 최근 세종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반송 스티커'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노인-주민-택배원-경비원 모두 '윈윈'... 1석 4조 효과

서울시 1호 '실버종합물류소' 인근 아파트 단지 경비실 외벽이 붙은 '택배 협조 안내문'. 신축 아파트는 택배 기사들의 배송 효율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에, 건당 수수료를 챙기는 기사들이 떠넘기듯 경비실에 상품을 맡겨 갈등을 겪는다.
 서울시 1호 '실버종합물류소' 인근 아파트 단지 경비실 외벽이 붙은 '택배 협조 안내문'. 신축 아파트는 택배 기사들의 배송 효율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에, 건당 수수료를 챙기는 기사들이 떠넘기듯 경비실에 상품을 맡겨 갈등을 겪는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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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실버 택배'가 빛을 발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실버 택배원들은 물류소에 상품이 오면 자신의 몸집만한 전동 카트에 상품을 실어 집집마다 방문 배달하는 게 원칙이다. 집 앞에서 두세 차례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으면 그제야 경비실로 향한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실버 택배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단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박아무개(63)씨는 "젊은 택배 기사들은 빨리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집 앞까지 가지 않고 경비실에 던져두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친절하고 집까지 일일이 찾아갈 수 있는 실버 택배가 전 택배사로 확대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경비실 외벽에는 '직접 집까지 배송하지 않아 불편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의 '택배업무 협조요청문'이 붙어 있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날 실버 택배 8개월 차 김정일(75) 택배원으로부터 상품을 건네받은 주민 이아무개(35·여)씨는 "주민에게 직접 전달하려고 애쓰는 친절함"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 택배가 각종 범죄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탓에 잔뜩 경계를 하며 문을 여는 주민들도 실버 택배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경계의 눈빛을 풀기도 했다.

사업을 추진한 주체들도 만족감을 표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최근 언론보도로 '택배 차량 진입 금지' 문제가 화제가 됐지만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택배 기사들이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다"라면서 "실버 택배는 노인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신축 아파트 단지 내 배달 효율도 높이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왔다"라고 전했다.

이윤진 은평구청 어르신복지과 주무관 역시 실버 택배의 '의도치 않은 효과'에 주목했다. 이 주무관은 "처음엔 어르신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낮 시간 택배를 받은 여성 주민들의 안전 문제도 해결하는 1석2조의 효과를 예상했다"라면서 "지금은 신축 아파트에서 배달의 어려움을 겪는 택배 기사들의 고통도 분담하고, 경비 업무 외에 택배 수령까지 담당해야 하는 경비원의 가욋일도 덜어주는 1석 4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어 실버 택배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택배, #갑질, #실버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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