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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부산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제15회 에메랄드볼 전국 댄스스포츠 경기대회장에서
▲ 아내의 뜨개드레스 7.26. 부산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제15회 에메랄드볼 전국 댄스스포츠 경기대회장에서
ⓒ 이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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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아내 자랑을 해달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내가 뜨개질을 잘한다는 것 말고도 두 가지를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 아내는 아침에 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화장 지운 민낯은 보기에 썩 좋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고 잠에서 바로 깬 모습은 더욱 그렇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은 것이 큰 장점이다. 일상생활 중 각종 스트레스로 일그러진 얼굴의 독기가 밤새 잠을 자면서 싹 빠져나가고 아침이 되면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아침 민낯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아내는 사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내는 금은보석에 큰 관심이 없고 옷도 잘 사 입지 않는다. 내가 아내에게 해준 선물이라야 10만 원 안팎의 액세서리가 전부이고 옷 역시 그렇다. 아내는 귀가 얇고 인정이 너무 많아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해서 때론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소탈한 것이 장점이다. 옷은 스스로 뜨개질을 해서 입거나 친구들이 안 입는 옷을 얻어서 입는다. 가끔 옷을 사 입더라도 불과 몇만 원짜리 시장 패션으로 단장을 한다.

아내 자랑 하나 더 추가합니다

아내가 뜨개질을 잘한다는 것은 남들이 다 아는 사실이라서 새삼스럽게 자랑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입을 다물 수 없는 사건이 하나 발생해 나는 아내 자랑을 하나 더 추가하려고 한다.  

나는 지난 3월 25일자 <오마이뉴스>에 '댄스스포츠 삼매경... 아내는 바람난다 하지만'이란 제목으로 50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우리 부부의 댄스스포츠경기대회 참가기를 소개한 바 있다. 댄스스포츠를 반대하던 아내 때문에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이 내 파트너로 나서고, 딸이 성장해 내 곁을 떠나자 아내가 딸을 대신해 나의 댄스파트너로 대회에 참가했다는 내용이다. 이때 나는 아내와 함께 매달 여행 삼아 전국을 일주하며 댄스대회에 참가도 하고 죽을 때까지 춤추면서 즐겁게 살기로 다짐도 했다. 

그 다짐에 따라 우리 부부는 그 후 계속해 몇 번의 댄스대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댄스스포츠가 좋은 운동이긴 하지만 댄스경기에서 춤을 출 때 입는 여성 파트너의 드레스 값이 만만치 않은 것이 흠이다. 화려할수록 값이 비싸고 웬만한 것도 수백만 원에 달하므로 쉽게 사 입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내는 처음 두 번의 대회에 참가할 때까지는 딸이 예전에 입었던 빨간 드레스를 수선해 입고 춤을 추었다. 그 드레스는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딸이 중학교 3학년이던 때에 이름 없는 곳에서 150만 원을 주고 맞춘 것이다.

유행이 지난 탓인지 아내가 입으니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새로 사 입기도 부담이 되어 아내와 나는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드레스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그러던 중 아내는 어느 날부터 가느다란 노란 실로 뭔가를 뜨기 시작했다. 아내의 뜨개질은 일상적인 것이라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오랜 기간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아주 열심히 하나의 작품에 공을 들이고 있기에 도대체 무엇을 만드는지 궁금했다. 뭘 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아내는 싱긋이 웃으며 댄스경기대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만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해 코웃음을 치며 괜한 헛고생을 하지 말고 그만두라고 만류했다. 아내가 뜨개의 달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옷감이 전혀 다른 댄스드레스를 어떻게 뜨개실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새 옷 사주지 않으려면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라는 아내의 말에 나는 입을 닫았으나 어쩌려고 그러는지 내심 걱정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걱정은 두어 달에 걸친 아내의 수고가 끝을 맺는 날에 감탄으로 변했다. 노란실로 정성껏 뜬 뜨개 옷 원판에 안감을 붙이고 장식을 더하니 멋진 드레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모양 또한 어느 유명 디자이너의 값비싼 드레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내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 드레스를 입고 지난 26일 제15회 에메랄드볼 전국 프로·아마 댄스스포츠 경기대회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었다.

이 대회에서 우리는 모던 2종목(왈츠, 탱고)에 출전해 어설픈 실수에도 불구하고 1위 입상이라는 뜻밖의 수확도 얻었다. 하지만 나는 입상보다는 아내가 직접 뜨개질해서 만들어 입은 노란 드레스가 더 감동적이었다. 뜨개 드레스, 상상도 못했는데 아내의 손재주가 대단하긴 하다. 오늘은 내 기꺼이 팔불출이 되리라.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댄스스포츠, #뜨개드레스, #에메랄드볼, #노란드레스, #중년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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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즐거운 학교, 함께 가꾸는 경남교육을 위해 애쓰는 경남교육청 소속 공무원이었으며, 지금은 경남학교안전공제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댄스스포츠를 국민 생활체육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무도예술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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