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보는 사람은 독자다. 반면 책을 내는 사람은 저자의 신분으로 바뀐다. '독자'의 입장을 견지한 건 50년도 넘는다. 그러다가 올 들어 난생 처음으로 마음의 치환을 결심했다. 그건 바로 나도 책을 내서 독자에서 저자로 환골탈태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작심을 하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기간은 석 달. 경비원인 나로선 주로 야근하는 시간에 집중적으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고단함과 졸음이 밀물로 닥쳤다. 하지만 강인한 내 각오를 꺾지 못 했다. 내겐 그보다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펄펄 끓는 100도의 온도를 자랑하는 열정이. 뿐만 아니라 나는 지난 20년 동안 갈고 닦은 나름의 필력(筆力)이 있었다. 그 결과 마침내 200자 원고지 약 1500매 분량의 초고(礎稿)가 완성되었다. 뛸 듯이 기뻤다. 나도 해냈다는 보람이 그 만족의 근저였다.
더욱 완벽을 기하고자 이번엔 교정과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그 기간이 다시 또 보름 여 소요되었다. 그리곤 다시 내 글을 꼼꼼히 살펴보자 더는 손을 안 봐도 되겠지 싶은 자신감이 출렁거렸다. 이제 남은 건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것.
순차적으로 출판사 서른 곳에 원고를 보냈다. 그러나 도무지 함흥차사였다. 출판의 길은 이리도 멀고도 험하단 말인가! 실망과 좌절의 쓰나미가 동시에 몰려왔다. 속이 상하여 내 속을 모두 보여드리는 선배님 앞에서 눈물까지 뿌렸다.
선배님은 내 등을 토닥이며 반드시 좋은 소식이 올 거라고 하셨다. 선배님의 선견지명 덕분이었을까...... 이튿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원고를 봤는데 너무 잘 썼다고. 내일 상경하여 출판계약을 할 수 있겠느냐는 출판사 사장님의 전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순간 뿌연 안개가 앞을 가리면서 보이지 않았다. 상경하여 출판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무된 기분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드디어 아빠도 책 낸다!" 아들과 딸의 축하메시지가 달려왔다.
"와~ 아버지 정말 대단하세요~ 사랑합니다!♥(아들)" "진짜 울 아빠는 명불허전이세요. 축하드립니다!♥(딸)" 아이들의 문자에서 나는 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책 한 권을 사보는 독자는 얼마나 많은 저자의 노력이 그 안에 담겼는지 모른다.
물은 100도가 되지 않으면 끓지 않는다. 열정도 마찬가지다. 99도의 열정이 있더라도 나머지 1도가 망설임으로 주춤거린다면 그 물은 결코 끓지 않는다. 가뜩이나 부족한 잠(수면)이다. 그 소중한 잠조차 내던지고 지난 석 달여 고생한 덕분에 이젠 나도 저자가 된다.
벌써부터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저만치서 환한 미소를 띠며 다가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