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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본동 '104마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중계본돈의'104마을'에 유난히도 태극기가 많다. 제헌절이 지난 다음날의 영향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라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 김민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서울시에서 재개발 지구로 선정이 된 곳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와 건설사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뒷전에서 팔장을 끼고 있고, 그 사이에 이미 재개발을 노렸던 투기꾼들은 한 건씩 다 해먹고 나간 모습이다.
백사마을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언덕길을 내려 마실을 가고 있다. ⓒ 김민수
폐가 폐가의 유리창 사이로 담벼락을 타고 오른 담쟁이 덩굴의 이파리가 무성하다. ⓒ 김민수
재개발 지구에 남은 이들은 선정과 취소, 찬성과 반대 등으로 의견이 갈리면서 지지부진한 사이 슬럼화돼가는 재개발 지역에서 열악한 환경들을 감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중계본동 '백사마을(104마을)'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정부의 철거민 정책에 의해 1960년대와 1970년대 청계천과 안암동 일대에 살던 이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을 하면서 마을을 일궜다.

불암산 자락의 중계동 104번지 일대에 터전을 잡아 '104마을'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으며 숫자 대신 한글로 '백사 마을'이라고 흔히들 부른다. 처음엔 동네에 백사가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나 싶었다. 그러나 불암산 자락이라 뱀은 있을지언정 백사가 많아 붙인 이름은 아니다. 이제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 빈집이 점점 늘어나면서 동네 이름과는 상관 없이 산자락 가까운 곳에 있는 집에는 진짜로 뱀이 출몰하기도 한단다.
백사마을 배급받은 시멘트를 그냥 담으로 쌓아버렸다. 푸대는 다 삭아없어지고 시멘트만 남았다. 이제 그 시멘트에도 초록생명들이 비집고 꽃을 피우고, 사람들이 오가던 골목길엔 개망초가 만발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준다. ⓒ 김민수
이곳으로 이주한 이들에게는 천막이 먼저 배급되었고, 차후에 시멘트가 배급되었단다. 열악한 환경에서 직접 벽돌을 찍어 집을 짓기도 했기에 튼튼한 집을 짓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제때 맞춰 시멘트가 배급되지 않거나 굳어버린 시멘트는 위의 사진처럼 그냥 포개어 담장이나 축대를 만들었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흘러 푸대는 다 삭아 없어지고 푸대에 담긴 형상의 시멘트만 덩그러니 남았고, 그나마 사람들이 떠나면서 초록 생명들이 시멘트의 영역들을 잠식해 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떠난 집은 초록 생명들이 집주인 행세를 한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이전에도 이곳에 살던 이들은 살아가는게 만만치 않았을 것이기에 이사한 집들은 세간살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이사를 하는 차에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할 엄두조차도 낼 수 없는 퍽퍽한 삶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네어귀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온다. 귀여워서 한번 쓰다듬어 줬더니만 내내 따라올 모양인지 한동안 졸졸거리며 따라온다. 겨우 겨우 "애끼놈!"하고 겁을 준 후에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백사마을 마을 어귀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다음 번에 왔을 때에도 나를 이렇게 반갑게 맞이할까? ⓒ 김민수
화재로 소실된 주택, 위태위태 서까래와 슬레이트 지붕이 남아 있다. 서까래 위를 유유자적하며 걷는 길고양이의 자태가 자뭇 고양이과의 최상이라 할 수 있는 호랑이나 표범의 자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늠름하다.

사람들이 떠난 폐가와 골목길에는 제법 고양이들이 많았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와 쓰다듬어달라고 꼬리를 치켜 세우고 발에 자기 몸을 비벼댄다. 사람이 떠난 곳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은 행복할까?

홀쭉한 배를 보니 아닌듯하다. 그래도 사람이 있어야 뭐라도 얻어먹을 것이 있을 터인데 사람들이 떠나 휑한 골목에서 먹이를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으니 그들도 행복하진 않을 듯하다.

"여기 살던 사람 고생 많았지요"
백사마을 마을에서 만난 현영자(80세)어르신, 이곳에 터전을 잡은지 50년이 되었다. 어서 개발이 되어야 할 터인데 언제 될지 기약이 없으니 안타깝다고 하신다. ⓒ 김민수
현영자 어르신의 손 주로 채소를 떼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했다. 젊을 때에는 언덕길도 아니었는데 관절염이 와서 이젠 몇 걸음 걷기도 벅차다고 하신다. ⓒ 김민수
마을길을 걷다 현영자(80세)어르신을 만났다. 가게가 없어 필요한 물건을 사러 저 아래 동네까지 갔다오다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옛날엔 지금 쉬고 있는 곳이 가게였단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가게도 문을 닫았고, 이젠 작은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저 아래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 아래'는 말이 '저 아래'지 작은 산언덕을 하나 내려가는 거리만큼이다. 현영자 어르신은 이곳에서 50년째 살고 있단다.

얼마 전, 어느 방송사에선가 카메라로 할머니의 집과 할머니를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 지난 17일 출연료를 가져온다고 해 종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며 '속았는가 보다'하셨다. 그런 말 끝이라 사진을 찍자고 하기가 어려웠는데 어르신은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시며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셨다.

"내가 여기서 50년을 살았어요. 채소를 떼다 팔아서 아이들 다 키웠지요. 젊을 적에는 이까짓 언덕쯤이야 짐을 잔뜩 이고도 펄펄 날았는데, 지금은 그때 고생을 많이 해서 병신이 되었어요. 관절염 때문에 짐이 없어도 한 걸음에 올라가질 못해요. 사람들이 많이 떠났지요.

여기 빨리 개발이 되야해요. 사람들이 떠나면서 동네가 다 망가졌어. 산하고 가까운 곳엔 집에 뱀까지 나왔데요. 그뿐인가, 비가 오면 비가 새지, 여름에 뜨거워서 집안에 있을 수가 있나, 겨울엔 연탄 가스 걱정, 여긴 사람 사는 데가 아니에요. 나랏일 하시는 분들 한 번 여기와서 하루만 자보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아니, 하루도 못잘거라."
백사마을 저 언덕길 끝에는 또다른 골목길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골목골목 좁을 지언정 막힌 골목은 없었다. ⓒ 김민수
어르신은 지난 8일 서울시청에서 하는 집회도 참석하셨다면서 "서울시장 나와서 해결하라고 소리쳤지" 하며 웃으신다.

"여기서 살던 사람들 고생 많았어요. 버스도 하루에 두 번 들어올때는 시내 한 번 나가려면 전쟁이었지. 우물도 그렇고, 화장실도 뭐 하나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젠 좀 살만할까 했는데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문제가 생긴 거요. 이젠 방법이 있겠어요? 보시다시피 개발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요."

골목길들은 막히지 않고 용케도 이어져 있었다. 저 언덕 꼭대기가 끝일까 올라가보면 또다시 골목길은 시작되고, 낡은 기와지붕과 비닐을 씌운 집들과 사람이 떠난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다.

사람이 사는 집은 골목골목마다 집집마다 화분이나 자투리 땅에 어찌도 그리 꽃이나 채소를 잘 가꿨는지 감탄을 했다. 꽃을 가꾸고 채소를 가꾸는 사람의 마음이 악하지 않을 터이고, 그런 것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면 삶을 대충 살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백사마을 "조금만 더 힘내요. 거의 다 올라오셨어요", 저 글귀가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이들에게 힘을 주었을 것이다. 나도 그 글귀를 보면서 '이젠 다 왔나보다' 숨을 내쉴 수 있었다. ⓒ 김민수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의 잘못이다. 언덕길에 이어진 계단길, 그곳에 '조금만 더 힘내요. 거의 다 올라오셨어요'라는 글귀가 써있었다. 그곳을 따라 올라가니 불암산 산책로가 이어진다. 잠시 그곳에서 숨을 고르며 백사마을을 바라본다.

아파트 숲 언저리에 퇴락한 달동네, 이건 낭만이라고 할 수가 없고, 추억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의 삶의 터전을 저당 잡아 놓고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개발을 미루는 것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의 개발 방식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무엇이든 주민과 대화를 통해서 지금같은 방식의 재개발이 아니라 이곳에 살던 이들, 이곳을 가꾼 이들에게 이익을 주는 재개발이 속히 이뤄지길 바란다. 더는 백사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이렇게 열악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국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7월 18일에 다녀왔습니다. 혹시라도 근자에 현영자 할머니를 촬영하시고 출연료를 약속하신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꼭 그 약속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약속을 어기는 것은 다양한 작업이나 봉사를 위해서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누가 될 수 있는 행동입니다.

태그:#백사마을, #104마을, #달동네, #중계본동, #재개발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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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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