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김자홍 역의 정동화 지난 7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내린 가무극 <신과 함께 - 저승편> 커튼콜. 김자홍 역을 맡은 배우 정동화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정동화는 다작하는 배우이지만, 매 작품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 준다.

▲ 김자홍 역의 정동화 지난 7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내린 가무극 <신과 함께 - 저승편> 커튼콜. 김자홍 역을 맡은 배우 정동화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정동화는 다작하는 배우이지만, 매 작품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 준다. ⓒ 곽우신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저승편>(아래 <신과 함께>)가 지난 12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서울예술단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만 관객을 만났다.

<신과 함께>는 지난 2012년 네이버에서 연재 됐던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삼았다. 웹툰은 '저승편'을 시작으로 '이승편'과 '신화편'까지 3부작으로 완결됐다. 뮤지컬 <신과 함께>는 이중 '저승편'의 줄거리만을 가지고 무대로 옮겼다.

웹툰의 원작자인 주호민 작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날카롭되 부담스럽지 않게 담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주호민 작가의 다른 작품 <무한동력>이 그러했듯, <신과 함께>의 정감 있는 그림체와 따뜻한 캐릭터들은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를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우직하게 돌파한다. 실업, 빈곤, 주거, 가족의 해체 등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를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은 채 일상 속의 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신과 함께>는 여기에 한국 전통의 신화와 전설을 버무렸을 뿐이다.

이 <신과 함께>를 무대 위로 옮기겠다고 서울예술단이 나섰다. 대극장 그것도 라이선스 공연 위주로 쏠려 있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창작극에 꾸준히 열성을 보이는 집단은 드물다. 그중에서도 서울예술단은 독보적인 곳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 <푸른 눈 박연> 등 '우리네' 정서를 무대 위에 가장 잘 옮기는 극단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네 이야기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와 우리네 이야기를 가장 신명 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극단이 만났으니,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팬들의 높은 기대, '싱크로율'로 충족하다

 지난 7월 11일, <신과 함께 - 저승편> 커튼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지난 7월 11일, <신과 함께 - 저승편> 커튼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 곽우신


2년가량의 준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관객 앞에 선보인 <신과 함께>는 팬들의 높은 기대를 보란 듯이 충족했다.

만화 속 캐릭터를 무대 위에 올리는 건, 영화나 소설 속의 캐릭터를 가지고 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신과 함께>는 만화 속 캐릭터를 훌륭하게 실체화한다.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캐릭터들은,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그 이상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코믹하게 바뀐 강림도령의 캐릭터에 '손발이 오글거리는' 장면이 여럿 되지만, 대신에 시종일관 음울할 수 있었던 저승삼차사의 이야기가 활력을 띠었다. 덕춘은 원작보다 훨씬 더 귀엽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애정 전선을 형성하는 강림과 덕춘의 '애드리브'는 탄성(혹은 야유)을 불러낸다.

김자홍의 캐릭터에는 설정이 더 추가됐다. '제대로 연애를 못 해 본' 원작의 김자홍은 '여자와 한 번도 자보지 못한' 김자홍이 됐다. 남에게 싫은 소리 제대로 못 하는 '무골호인'인 그는, 원작보다도 더 소심하고 겁 많은 소시민으로 묘사된다. 그가 진기한에게 매달리며 '징징'거리는 부분은 매번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여기에 '메르스'나 '싱크홀' 등 사회 현안을 깨알같이 '디스'하는 것도 포인트.

진기한은 원작에서나 뮤지컬이나 한결같은 매력을 선보인다. 아는 것 많고 철두철미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지 약간은 허술하고 우스운 인간미를 드러낸다. 재판을 진행하는 저승시왕들도 극적으로 변했고, 지장보살은 원작에 없던 '재치'를 갖췄다.

<신과 함께>의 강점이 인물만은 아니다. '가무극'을 표방하는 서울예술단의 작품답게 극 중간마다 등장하는 군무가 꽤 미려하다. 저승열차 재현에서도 그렇고 무대 장치가 대체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다소 '판타지'스러운 저승삼차사의 등장과 싸움은 조명을 통해 어색하지 않게 소화됐고, 원귀가 악귀로 변하는 과정은 앙상블들이 훌륭하게 묘사했다.

다만, 2막의 '인간은 신과 함께' 정도를 제외하면 킬링 넘버가 드물다는 점, 해원맥, 할락궁이, 염라대왕 등 원작에서 더 많은 매력을 보였던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든 부분, "저승최강"을 아무렇지 않게 자꾸 외치는 강림의 유치함이 '과할' 때가 있다는 건 아쉽다.

작은 '톱니바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다

 원귀(유성연) 역을 맡은 배우 최석진과 유성연 어머니를 연기한 정유희 배우가 지난 7월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한 후 돌아가고 있다. <신과 함께 - 저승편>은 '망자'의 이야기이다. 유성연은 이야기의 한 흐름에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그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많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원귀(유성연) 역을 맡은 배우 최석진과 유성연 어머니를 연기한 정유희 배우가 지난 7월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한 후 돌아가고 있다. <신과 함께 - 저승편>은 '망자'의 이야기이다. 유성연은 이야기의 한 흐름에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그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많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 곽우신


<신과 함께>는 두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한 축은 일산에서 죽은 김자홍이 49일 동안 7개의 지옥을 통과하는 이야기이다. 모든 영혼에게 부여된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에 의거, 김자홍은 염라국 국선 변호인 진기한의 첫 의뢰인이 된다. 김자홍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진기한의 도움을 받아 7번의 재판을 거친다.

또 한 축은 저승삼차사가 이끌어 간다. 저승으로 가는 열차에서 탈출한 원귀를 쫓아가는 저승사자 삼인방의 우여곡절을 그린다. 저승삼차사의 리더인 강림도령과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은 억울하게 죽은 원귀가 더는 이승에서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루빨리 잡아 저승으로 압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언뜻 보면 <신과 함께>의 주인공은 '진기한'과 '강림도령'인 것 같다. 캐릭터의 매력도 그렇고, 비중만 봐도 이들이 분명 각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신과 함께>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간 질환으로 사망한 '김자홍'과 억울하게 죽은 원귀 '유성연'이다.

이 두 망자 사이에는 큰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선도 악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 거대한 세계 구조의 틀에 갇혀 있던 '톱니바퀴'이다.

김자홍은 새 달력에 부모님의 생일을 제일 먼저 표시해두는 사람이다. 저승행 열차에서 내복을 살 돈이 없던 할머니에게 자신의 노잣돈으로 내복을 사다 주는 따뜻한 인물이다. 평생 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죽어서야 납골당 '로열'층에 안장됐다. 그러나 동시에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하청업체를 들볶고,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사람이었다. 결국, 한 집안을 파탄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성연은 제대를 며칠 앞둔 날, 후임의 실수로 총에 맞는다. 어쩌면 살 수도 있었던 그는, 진급에 눈이 먼 장교에 의해 암매장 당하고 끝내 죽음을 맞는다. 생전의 그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억울한 죽음에 원귀가 되어 사후에 업을 쌓게 된다. 규칙을 어기며 도망가고, 저승차사와 사람을 다치게 한다.

'악의 평범성'을 굳이 끌어올 필요는 없다. 이들이 대체 어쩔 수 있었겠는가. 모든 사람이 깃발을 들 수도, 투사가 될 수도 없다. 구조에 끼어 있는 톱니바퀴를 향해 "너는 왜 체제를 거부하지 않느냐"고 묻는 건 폭력이다.

김자홍과 유성연이 살아온 삶은, 그래서 지금 201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와 많이 닮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거대한 구조에 갇혀, 하나의 톱니바퀴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사랑하고 선행을 하는 만큼이나,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신과 함께>는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너만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토닥여 준다. 진기한은 열심히 김자홍을 변호한다. 김자홍도 체제의 피해자임을 역설한다. 지옥에 갈 사람은 김자홍이 아니라 김자홍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들고, 결국 잦은 회식으로 죽음까지 몰아넣은 책임자들이라고 외친다. 그렇다고 '면죄부'를 주는 건 결코 아니다. 김자홍은 '청소형'도 받고, 손발이 잠시 잘리는 고난도 겪고, 부모에게 자신이 던졌던 차가운 말을 되새기며 땅을 치고 아파한다.

유성연도 마찬가지이다. 차가운 것처럼 보이는 강림이지만, 유성연을 도와주겠다고 쉽게 약속해버린 덕춘을 나무라면서도 끝까지 원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강림은 유성연을 죽게 한 장교에게 낙인을 찍지만, 단순히 '징벌'만이 정의가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죄를 지은 혼이지만 유성연의 처지를 이해하고, 꿈속에서나마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다.

냉혹한 신보다 어설픈 인간의 편에 선 작품

김자홍은 진기한을 향해, 유성연은 강림을 향해 질문한다.

"혹시 신이세요?"

물론 진기한도 강림도령도 신은 아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도 아니고,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게 심판하는 판관이 아니다. 그들도 한때 인간이었으니, 인간으로서 연민할 줄 안다. <신과 함께>는, 이처럼 톱니바퀴로 살다가 톱니바퀴로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일종의 '레퀴엠'(진혼곡)이다.

"이 세상에서 작은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일지 몰라도 꿋꿋하게 걸으며 걸으며 사는 게 인간이지요."

서울예술단은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믿고 보는' 창작 집단으로 발돋움한 지 오래다. 올해에만 네 작품이나 관객을 맞는다. <이른 봄 늦은 겨울>과 <신과 함께>가 이미 호연을 마쳤고, 명성황후를 다룬 <잃어버린 얼굴 1895>와 동명 소설과 드라마를 모티프로 하는 <뿌리 깊은 나무>가 팬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매 작품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서울예술단이지만 한 작품 당 공연 기간이 매번 지나치게 짧다. 여러 작품을 올리다 보니, 한 작품을 놓치면 그 작품의 재연을 언제 볼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편에서 우리를 웃고 울린 <신과 함께>, 약간 다듬어야 할 부분은 있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완성형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으면 좋겠다. <신과 함께>가 재연할 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죄 짓는 인간일테니. "지옥에 가야할지 몰라도 씩씩하게 살아서 살아서 웃는" 인간일테니.

 서울예술단 2015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 - 저승편> 포스터

서울예술단 2015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 - 저승편> 포스터 ⓒ 서울예술단



뮤지컬 신과 함께 저승편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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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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