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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웬 서양 여자 한 명이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엥, 뭐지? 누구지? 왜 여기서 자고 있지?"

깊이 잠들었던 나는 누가 옆에 있는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나 말고 누가 숙소 예약한 사람이 있었나 말이라도 해주지. 여자의 정체는 알고보니 호스트 차란의 친구. 가끔 차란의 집에 놀러와서 자고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다부는 델리에만 2년을 살았다고 하는데 차란 만큼이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제와 같은 아침식사를 챙겨주던 차란이 오후 7시까지 숙소로 올 수 있냐고 묻는다.

"친구 집에 가서 파티를 할 건데 함께 가자!"

나는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오겠다고선 흔쾌히 응했다. 그는 숙소를 나서려는 나에게 자신의 교통 카드를 챙겨주며 말했다.

"어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하철 표 끊기가 힘들다고 말했잖아, 이걸 써."

숙소를 나서는 내 손에 들린 교통카드

나는 쓴만큼 돌려주겠다고 말했지만 "오 나의 친구여, 이건 네가 인도에 온 환영 선물쯤이라 해두자, 하하 그치만 카드는 쓰고 돌려줘"라며 얼마가 들어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하루는 충분히 다닐 거라고 말한다. 현지인 숙소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호텔이나 호스텔 직원에게선 느낄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 성큼 다가와 있다. 그냥 잠시 머물다 갈 사람이 아니라 이 집에 초대된 손님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나를 챙겨주는 마음과 허울뿐인 서비스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거지. 

"오~ 고마워 나의 친구야. 좋은 하루 보내. "

'오 나의 친구'가 쑥스럽기보다는 불쑥 튀어나온 내 능청스러움이 놀라울 뿐일세. 그의 환영 선물(?) 덕분에 줄 한 번 서지 않고 현지인 처럼 '삑' 카드를 찍고서 편안히 지하철 탑승을 했다. 어제도 그랬지만 여성전용칸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정말 금남의 세계이다. 가끔 사내아이를 데리고 타는 엄마들은 있지만 그 나이제한도 여탕 출입 가능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종명군과 유키와는 지난 밤에 서로의 루트를 확인했다. 유키는 인도에서 유학하는 친구를 따라 움직일 예정이라 어찌될지 모르겠단다. 종명군은 올드시티 쪽을 다시 가보고 싶다는데 나는 마침 레드포트(올드시티 내)를 갈 계획이었다. 

"저도 레드포트 주변만 둘러봤지, 안에 들어가보진 못했어요." 
"그럼 같이 갈까?"

만남의 장소는 메트로 옐로우 라인 (찬드니 촉 방향) 첫 번째 칸 앞,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이상 기다려도 상대가 오지 않는다면 그냥 미련없이 떠나기. 서로 연락을 할 수 없으니 만약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약속을 정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종명군을 약속시간 안에 만났다. 우리는 레드포트로 가기 위해 찬드니 촉 역 (Chandni Chowk)에서 하차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자전거 릭샤를 타고서 목적지로 향했다. 더운 날씨에 10루피 (170)원을 깍기 위해 흥정하는 내 모습이 과연 맞을까? 고민하면서도 우겨서 끝끝내 10루피를 깍고야 만다. 그래봤자 자전거 릭샤 기본요금(15루피)을 그대로 낸 것이다.

 레드 포트 (Red Fort) 만리타국에서 느껴지는 반가움 KOREAN
 레드 포트 (Red Fort) 만리타국에서 느껴지는 반가움 KOREAN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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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여행지에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은 그 나라 화폐 단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이러하다. 물 500ml, 맥도날드 빅맥세트, 택시, 버스, 지하철 기본 요금 등에서 어떻게 돈을 써야할지 정리해나간다.

릭샤의 기본요금은(오토의 경우) 25루피부터(450원) 시작되었다. 기본요금은 저렇다 치더라도 정말 가까운 거리는 20루피까지 가능하다고 차란이 알려주었다. 한국의 물가와 비교해본다면 "와, 이렇게 저렴한데 더 준다고 손해는 아니겠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한국이 아니라 인도에 있다. 상황에 따라 고마움에 팁을 더 줄 수는 있겠지만 대놓고 가격 던지고 보는 상술에 호락호락 넘어가고 싶진 않았다.

레드포트에서 오디오 가이드 언어권을 살펴보자 힌디, 영어 그리고 한국어가 보였다. 세상에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국어가 있다니!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려는데 신분증이 없으면 보증금 2000루피를 맡겨야 한다고 한다. 왜 그리도 직원의 말이 불안하게 느껴지는지 2000루피를 건네면서도 사실 마음은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의심인가? 돈을 못 받을까 불안해하는 나에게 종명군은 "인도에 오셨으면 우선 믿으셔야 해요."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처음 말한 가격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는 인도사람들의 무리한 요구에 본인도 마음이 많이 상했다는 것.

"물론 더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마음을 다쳐버려서 그렇게 하질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럼에도 우선은 믿어야 해요. 안 그러면 인도에서는 하루도 못 버텨요."

그래 우선 믿고보자. 내가 믿어야 해. 보증금과 함께 113루피를(오디오 가이드 대여료) 내려니 동전이 없었다. 직원은 "거스름돈 7루피는 나중에 주겠다"며 영수증 뒤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거스름돈 7을 적었다. 내가 못 미더워하는 표정을 짓자 "돈을 주겠다 걱정말라"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레드 포트 (Red Fort) 여유로운 오후는 청설모와 함께
 레드 포트 (Red Fort) 여유로운 오후는 청설모와 함께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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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 포트 (Red Fort) 붉은 요새에서의 달콤한 시에스타
 레드 포트 (Red Fort) 붉은 요새에서의 달콤한 시에스타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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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포트를 둘러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벌거벗게 된 문화유산이었다. 많은 국가들에게 약탈 당하며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고 한다. 과거 속 찬연했던 모습은 오디오 설명으로만 들을 수 있었는데 화려했던 색채와 문양 그리고 보석 장식을 뜯어간 흔적들이 곳곳마다 바래져 있었다.

붉은 사암으로 높게 쌓아올린 외부 성벽의 웅장함에 비해 내부의 모습에선 가슴 아린 역사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오디오 가이드를 반납하며 아까 받지 못한 거스름돈을 요구하자 "4루피 밖에 없으니 4루피만 주겠다"며 동전 두닢만 건네준다. 그때 깨달았던 것은 113루피라는 애매한 오디오 가이드 대여료의 실체였다. 한국 돈으로 51원. 그냥 웃으며 보증금만 받고서 나와버렸다.

소고기 패티가 하나도 없는 인도 맥도날드

마땅히 점심식사 할 곳을 찾지 못해 맥도날드로 갔다. 모든 메뉴는 치킨버거. 정말로 소고기 패티가 없을 줄이야. 감자튀김은 염전에서 놀다왔나보다. 거의 한 입 베어 물면 소금을 한 줌 털어넣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인지 콜라로 소금기를 잘도 씻어가며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 말을 하는 편인가? 듣는 편인가? 말수가 적었던 종명군은 전적으로 내 말에 귀기울여 주었다. 말을 하는 편인 나에게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그의 얼굴은 굳이 웃지 않아도 미소가 자국처럼 남아있었다. 그의 밝은 인상에서 느껴지는 선한 기운은 마음을 참 편안하게 했다.

2년 전에 인도를 두 달간 여행했고 또 다시 두 달간 여행한다는, 별 다른 이유없이 그렇게 다녀온 곳을 또 가고 싶다는 종명군이 나도 이유없이 좋았다. 이처럼 모든 일에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진 않을 것이다. 인도가 좋은 이유도 사람이 좋은 이유도. 그저 내 마음을 따르는 것 뿐일테다. 더위를 피해서 찾아간 쇼핑몰 셀렉트 시티워크(Select Citywalk)에서는 티타임을 가지며 대화를 마저 이어갔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겪었던 삶의 허기마저도 참 비슷한 동시대 청춘들은 이리도 할 말들이 많다.

 찬드니 촉 역 (Chandni Chowk) 낮잠 자는 릭샤 기사들
 찬드니 촉 역 (Chandni Chowk) 낮잠 자는 릭샤 기사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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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다시 들렀다. 카메라만 없었다면 저 분수 위로 올라갔을텐데 못내 아쉬워하며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다시 들렀다. 카메라만 없었다면 저 분수 위로 올라갔을텐데 못내 아쉬워하며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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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군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오늘 쓴 돈을 계산해보았다. 890루피, 한화로 약 1만 6000원정도였다. 도대체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물, 릭샤비, 레드포트 입장료, 가이드 오디오, 점심 식사는 심지어 내가 계산했으니 물가가 정말로 저렴하긴 하다. 일 마치고 돌아온 차란은 친구집까지 스쿠터로 이동할 거라며 나에게 오토바이 헬맷을 씌워주었다. 일반 좁은 도로에선 괜찮았는데 강변북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때는 정말이지 기겁할 뻔했다.

"다른 길 없어? 나 진짜 불안해서 그런데... 무서워. 곧 죽을 것 같아."
"오늘 죽으면 어때? 내일 죽으면 어때? 우리는 어짜피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다 죽을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미리 겁먹지마. 너 좋아하는 노래 없어? 그냥 노래 불러봐!"

그의 말을 듣고서 불현듯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나는 사나이이~~"
"와우 캉~남~쓰따일!!!!!!!!!"

두 소절 듣고 게다가 한국어로 부르는 내 노래를 단번에 알아맞추는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인 메가 히트곡이 맞나보다. 나는 열창을 하며 후렴구에서는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오빤 강남스타일~! 빠바바빠빠빠빠~섹시 베이베!!!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 노래를 부르며 정말 모든 걸 던져버릴 정도로 강남스타일을 외쳤다. 운전하는 차란도 함성을 지르며 신이났다. 나더러 웃겨죽겠다며 진짜 이상한 캐릭터란다.

"방금 전까진 무섭다 난리치더니 지금은 너무 즐기고 있잖아. 너 정체가 뭐야?"

차란의 집에서 목적지까지는 스쿠터로만 30분 가까이 걸렸다. 초대받은 집에는 스페인 커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1년 반 동안 델리에 머물고 있었는데 "인도를 사랑해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이었다. 다른 인도 친구도 오고 일을 마치고 온 다부도 합류했다. 맛있는 파스타와 모히또를 대접받으며 여행과 인도를 사랑하는 이들과의 대화는 무르익어 갔다. 스페인 커플의 집을 나서면서는 다부까지 탑승하며 삼치기(?)가 되었다.

이 동네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다며 다시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5층 계단을 올라 건물 옥상까지 갔다. 그를 따라간 곳에는 러블리한 옥탑방이 있었다. 차란과 다부의 절친, 그리고 그의 독일인 여자친구가 함께 사는 곳이라고 한다. 갑자기 술판이 벌려져 차란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차란은 계속 나를 마이 프렌드 수지라 칭했다. 사람들과 자연스레 섞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 주려고 애썼다. 그 옥탑방을 나서며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길목에서 또 차란의 친구를 만났다. 정말 베스트 프렌드라며 친구의 가족들과 한참을 또 이야기 나누다가 수박까지 얻어먹고서야 자리를 떴다.

"수지 피곤하지 않아? 힘들지?" 
"차란 그거 알아? 오늘은 정말 하루가 일주일 같았어."

말한 그대로다. 정신없었지만 이 경험은 인도에 온 여행객 아무나가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인도에 온 지 이틀 만에 델리를 다 순회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 델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그럴 거일테지.

"수지 괜찮아? 바부 괜찮아?"

차란은 계속 우리의 상태를 체크했다. 우리는 괜찮아!!! 동시에 대답하자 그가 요리조리 스쿠터를 움직거렸다. 우리는 와!! 환호성을 뿜어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다시 강남스타일을 불렀다. 둘은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강남스타일만 따라 외치고 있다. 갑자기 집 근처에 다와서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어디론가 방향을 틀었다. 막 문을 닫고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뛰어 들어갔지만 이미 영업이 끝난 것 같았다. 우리는 문에 매달려 약 5분간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애원했다. 사장은 문을 닫았다고 안 된다고 했지만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우리는 가게 문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저는 이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 머나먼 한국에서 왔단 말이에요. 꼭 주세요 제발요!!"

사장은 피식 웃으며 다시 불을 켜고선 냉동고를 열며 말했다.

"아이스크림 맛을 선택할 수는 없어. 주는 대로 먹어. "

 기다렸던 아이스크림, 어찌나 맛나든지!
 기다렸던 아이스크림, 어찌나 맛나든지!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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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맛인들 어떠하리.(그래도 각자 다른 맛을 주심)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게 된 우리는 서로 떠먹여주며 사진을 찍고 말도 안되게 가까워져 있었다. 자신의 입에 들어갔던 숟가락에 아이스크림을 떠 먹여줄 정도로 친숙한 사이가 되버렸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한참을 더 떠들고 놀았다. 자연스럽게 SNS를 교환하고 나에게 언제 델리를 떠나냐고 두 사람은 물었다. "내일도 같이 놀자. 아니다 너가 떠나는 날까지 함께하자." 나와 다부는 차란의 터번을 번갈아 쓰면서 인도 요가도 흉내내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셋이서 나란히 이부자리를 깔고서 서서히 잠 들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을까?
분명 '오 나의 친구'라 부르는 순간부터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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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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