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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움

 마을공화국_홍동마을이야기
 마을공화국_홍동마을이야기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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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더이상 믿을수 없게 된 지금 우린 누구에 의지해야 하는가. 스스로 지키고 다잡고 해야 하는가. 누군가 손잡을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웃이면 더 좋겠고.

일정한 공간 안에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 살며 그들의 삶을 함께 가꾸는 일은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다. 내가 사는 곳, 마음 한구석에 걸리던 동네 입구의 지저분한 풍광, 밤이면 어두워서 위협을 느끼던 곳이 밝게 바뀐다든지 하는 일은 해당 시·군·구의 행정기관에서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가로등이 필요하다든지 동네에 받을 수 있는 공공사업을 주민이 함께 의논해 제안할 수 있다면 그 쓰임새에 대해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이럴 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집 현관문을 닫고 자신의 집안에서의 안락함 만에 위로받는 경우가 많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하면 함께 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동기부여가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동네가 그곳에서 작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교육, 문화, 농업, 정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고자 실험을 계속하는 곳이 있다. 무려 반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홍성군 홍동면의 이야기다.

책은 그곳에서 살거나, 살고자 하는 이들의 글을 모았다. 우리의 일상이 함께 모여서 의논하고 토론하면 어떻게 바뀌어 나가는지 엿볼 수 있다. '마을 사람'이 쓴 이야기가 담긴 <홍동마을 이야기: 마을공화국의 꿈>은 미래 농촌의 대안 모델로 평가되는 홍동마을을 담는다.

글은 대부분 철학적이다. 이렇게 잘난 사람들이 있으니 잘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과정'이 그릇을 가꾸어 왔음을 엿볼 수 있다. 그곳에는 사람이 모인다. 같거나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작은 농촌마을이 가진 희망의 씨앗은 점점 자라나 이웃마을과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여러 곳에 희망의 사례가 되고 있다.

생각하는 삶을 향해

그곳의 가장 크고 위대한 자원은 두말할 필요 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가꾸는 것은 그들을 담는 그릇, '마을'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학교가 있다. 1958년에 문을 연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약칭 '풀무학교')가 그것이다. 풀무학교는 철학하는 농부를 지향한다. 모두가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 등의 직장을 꿈꾸고 있는 때에 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지을 사람을 만드는 곳이다.

"학교는 작을수록 좋다. 지역은 산업으로서의 농사를 포함한 유기체여야 하며 사람이 그렇듯, 지역도 몸과 정신과 영혼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홍동마을 이야기: 마을공화국의 꿈> 본문 중에서

풀무생협(유통)과 풀무신협(금융)은 풀무학교에서 시작돼 자립의 여건을 갖춰나간 곳이다.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곳이다. 1975년에 오늘날에서야 국가가 지원하기 시작하는 유기농업을 시작했고 일찍이 오리농법을 도입해 농업의 새로운 방식을 선도해 나갔다.

학교엔 미래를 꿈꾸는 청년이 자란다. 마을의 논과 밭 그것을 정성스레 가꾸는 농부다. 쉬는 날이면 삼삼오오 모여 함께 마을의 미래를 이야기 하는 선배가 있다.

"홍동마을에서 마을은 세계이고 우주다. 마을은 학교, 도서관, 빵집, 목공소, 출판사, 공방, 협동조합, 연구소, 농장, 카페와 같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홍동마을 이야기: 마을공화국의 꿈> 본문 중에서

풀무학교 전공부 학생의 글은 감탄을 자아낸다. 지금의 대학교육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영성을 기르고 생각하는 힘은 밤낮 책만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주, 자연을 경험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이다. 조지 소로우의 <월든>이 그러하듯 학생들은 그곳에서 흙과 작물, 동물을 매만지고 어울리며 우주를 사유하고 있다.

거름을 낸다, 쟁기질을 한다, 로터리를 친다.
고랑을 만든다, 이랑을 만든다, 밭을 가꾼다.
나에게, 봄이 왔다.
-여준민, '나의 봄'

벽돌을 옮겼다. 힘들었다. 나 혼자서 그 많은 벽돌들을 들고 나르려 하니 힘이 들었다. 내 팔인데, 내 다리인데, 온전한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벽돌을 가지고 씨름을 하다가 혼자서는 많았던 일들을 조금씩 잘게 나눠보았다. 수레에 벽돌을 담아주는 사람이 필요할때는 수레에 벽돌을 담고, 수레를 이끄는 사람이 필요할 때는 수레를 이끌고, 트럭에서 벽돌을 정리할 사람이 필요할 때는 트럭에서 벽돌을 정리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걸음걸이, 손놀림, 작업의 속도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여전히 서툴렀지만 훨씬 더 넓게 몸을 쓸 수 있었다.
예전에는 뭐든 혼자서, 혼자서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함께, 함께 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함께는 어렵다. 벽돌 한 장 함께 나르기도 어렵다.
-문수영, '벽돌 한 장' 중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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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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