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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앞 방값은 비싸다. 정부와 학교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기숙사를 새로 지으려 한다. 실제로 경희대, 이화여대, 고려대 등 서울의 많은 대학에서 기숙사 신축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고 있다. '환경 파괴'를 내걸며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는 주민에게 학생들은 섭섭해 하고, 때로는 주민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학교가 학교 땅에, 학생을 위해 기숙사를 짓는 것이 주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인지, 아니면 주민들의 님비(NIMBY)에 불과한지 판단은 '상식'에 맡기겠다."
- 2014. 11. 17. 권오은(경희대 대학주보 편집장),  "경희대 공공기숙사 논란, 임대업자에 발목 잡힌 1년", <부대신문>

"일부 지역 주민이 환경 파괴와 여가권 침해 등을 이유로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지만, 주거 공공성 확대와 환경, 여가권 보호는 배치되지 않는다." "개운산의 사면을 정리하고 둘레길을 형성하는 등 학교 당국이 타협점을 제시하는데도 일부 지역 주민이 맹목적인 반대를 지속하고 있다."
- 2015. 4. 28. 강민구(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부총학생회장). (2015. 5. 4. ""기숙사 신축으로 주거 공공성 확보하라" 안암총학, 도토리 프로젝트 기자회견 열어", <고대신문>)

어, 뭔가 이상하다. 주민. 표준국어대사전은 주민을 '일정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학교 앞 원룸, 하숙집의 주인들은 당연히 그 지역의 주민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한 국어사전은 그 원룸과 하숙에 세 들어 사는 학생들도 주민으로 부른다. 하지만 기숙사 신축에 목소리를 높이는 학생들은 스스로를 '주민'으로 부르지 않는다. 사전은 그들 역시 주민이라고 말하지만 학생들이 말하는 '주민'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주인만을 부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러한 의문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소유하지 못하고 정주하지 못하는 사람, 청년

청년을 위한 풀뿌리는 어디에?
 청년을 위한 풀뿌리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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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씨는 2014년 6.4 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서대문구 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청년 세대를 소유하지 못하고, 정주하지 못하는 '비소유, 비정주 계층'으로 정의한다. 그가 선거 과정에서 주목한 유권자 역시 청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지방선거 예비후보는 출마 지역 유권자의 10%에게 예비 공보물을 돌릴 수 있다. 보통은 전체 선거구에 걸쳐 무작위 10%를 대상으로 공보물을 뿌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요 타겟인 청년 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동의 2, 30대의 주소만을 구청에 요구했다.

담당 공무원의 반응은 이런 후보는 없었다는 놀라움이었다. 캠프에서도 선거 유세 첫 날, 수 없이 꽂힌 선거 공보물을 보면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희망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다음 날도, 1주일 이후에도 선거 공보물은 그저 꽂혀있을 뿐이었다. 청년들의 지역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소유하지 못하고 정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곧 청년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이 그렇다고 한다면 이는 사실이다. 대학생들이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면서도 스스로를 '주민'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역 정치의 주요 의제는 늘 '개발'이다. 최근 4.29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 후보 안상수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길이 뚫린다 / 물길이 열린다 / 땅값이 오른다"

안상수는 인천 강화을에서 54%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안상수 의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지역 개발론은 늘 주민의 마음에 들어앉아 있는 욕구를 끄집어낸다. 주민은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지역 개발론은 '비소유, 비정주' 계층을 정치로부터 분리한다. 땅과 집을 가진 '주민'이 아닌 세입자들에게 지역 정치는 '너희들의 리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리그'에 대한 욕망을 품는다. 하지만 그들의 욕망이 실현되는 곳은 지금 사는 곳이 아니다. 세입자들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곳은 좀 더 땅값이 싼 지역이다. 욕망의 실현을 위해 그들은 다른 곳의 주민이 된다. 지역에 땅과 건물을 가진 사람들만이 지역 '주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 정치에 활발히 참여하는 이유다. 그리고 대부분의 청년은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비소유, 비정주' 계층으로써 청년이 지역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이유가 자신의 본래 주거지와 다른 곳에 거주하는 데만 있지는 않다. 아무리 한 지역에 오래 산 청년도 언제 이 지역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대학생 전현식씨는 평생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살았다.

독립 후 쌍문동에서 계속 살 것 같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가능하다면"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주거, 또는 자신의 여건 상 가능한 주거가 지금 사는 곳에 있다는 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22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 하지만 같은 집은 아니었다. 동네 안에서 여러 번 이사를 했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부모님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 이사의 걱정이 줄었지만, 더 이상 이사가 없으리라는 확신은 여전히 없다.

청년과 지역, 이제는 연애할 때다

물론 다른 지역에 살더라도 그 지역에 관심을 갖는 청년도 있다. 하지만 투표권은 오직 해당 지역에 주민 등록이 된 주민에게만 주어진다. 관심이 있지만 투표권이 없는 상황은 기껏 관심을 갖더라도 이내 관심을 포기하도록 한다. 보증금 때문에 주민 등록을 옮기거나, 기숙사 문제에 대해 지역 정치권에 압박을 넣고자 기숙사로 주민 등록을 옮기는 경우를 뺀 대부분 학생은 실 거주지로 주민 등록 옮기기를 꺼린다. 잦은 이사의 불편함, 집안의 반대 등 이유는 다양하다.

현행 제도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고 지방세를 납부하는 사람에게 지역 정치 참정권을 주기 위해 구상된 현행 선거제도를 행정편의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 현행 제도는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은 대학생들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2015년 6.4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진행된 전국 사전 투표에서 20대 이하의 사전 투표율이 15.9%로 연령대 중 가장 높았던 점은 이러한 상황과 연관한다. 새로 시행된 전국 사전 투표 제도는 기존의 부재자 투표와 달리 사전에 신청하지 않아도 전국의 모든 투표소에서 자신의 주민 등록지에 해당하는 투표를 할 수 있다.

이는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가 다른 20대에게 보다 더 넓은 참여의 기회를 제공했다. 높은 사전 투표율은 20대의 정치 참여 욕구가 낮지 않다는 반증이지만, 현행 제도는 그들의 정치 참여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제도에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제도를 고칠 수는 없는 딜레마 속에 우리는 빠져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해결책은 분명 다른 데서도 찾아낼 수 있다. 앞서 말했든 정치 참여는 단지 투표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한 해결 방안 중 하나는 '캠퍼스 타운'이다.

한국에서 대학은 그 지역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 한 대학이 지역에 들어오고 말고는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앙대가 안성캠퍼스 이전 계획을 세웠을 때 가장 앞서서 반대한 것은 지역 주민이었다. 학교 하나가 통째로 빠져나가는 건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장과 국회의원까지 나서 이전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이 지역에게 주는 의미는 오로지 경제적 의미에 머문다.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낭만적인 관계는 경제적 관계로만 묶인 한국의 주민과 대학생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판타지'일 뿐이다.

고등학교 때,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2주를 보냈다. 2주 동안 보았던 '대학 케임브리지'와 '도시 케임브리지'는 한 데 어우러져 있었다. 대학과 도시가 분리되지 않고 구분 없이 그대로 '캠퍼스타운 케임브리지'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2년 후 들어간 한국의 대학에서 이러한 캠퍼스타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이모'들, 단골 가게 사장님한테서나 정을 느낄 수 있을 뿐 캠퍼스와 학교 앞 동네가 정으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태영씨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촌민회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대학촌'이다. 이를 위해 신촌민회는 민회 대의원에 지역 대학의 총학생회를 초청하고 있다. 신촌민회는 공공 문제를 풀어가는 '살아있는 연구소(Living Lab)'를 꿈꾼다. 자기 학습의 영역으로 지역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주민이 함께 결합하는 사회, 소비적이고 휘발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전을 공유하고 그 사이에서 서로 적극적인 갈등을 부각시키고 또 그 갈등의 해소를 통해 서로가 발전하는 관계가 있는 사회가 신촌민회가 꿈꾸는 지역 사회라고 이태영씨는 말했다.

세입자 학생과 임대업자 주민은 생활을 공유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신촌 하숙'은 더 이상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생활의 공유는 청년에게 지역과 결속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 더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리고 캠퍼스 타운은 단순한 결속에 머무르지 않고 청년들에게 지역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텃밭이 될 것이다.

캠퍼스 타운은 대학생에게만 국한하는 해결책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에게 해결책이 있다면 다른 청년에게도 당연히 해결책은 있을 것이다.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하지도, 지역에 무관심하지도 않다.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은 관심이 아니라 참여할 기회다. 그 기회가 주어진 청년들을 상상해보자. 그들이 그려나갈 새로운 풀뿌리 민주주의를 떠올려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춘희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열리는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참고문헌
- 이찬민, <신캠퍼스 연대기>, <<중앙문화>> 66호 (2014. 6.)



태그:#풀뿌리, #지역정치, #청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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