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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의 후마윤 묘지(Humauyun’s Tomb, Delhi) 지나가던 두 여인을 불러 세웠다. 그저 한 폭의 그림 같아서
▲ 델리의 후마윤 묘지(Humauyun’s Tomb, Delhi) 지나가던 두 여인을 불러 세웠다. 그저 한 폭의 그림 같아서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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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네가 내 결혼식에 오지 않는다면 납치를 해서라도 인도로 데리고 가겠어."

나는 대답했다.

"납치를 당하기 전에 내 발로 직접 가겠어!"

신랑, 신부 다 친분이 있었지만 나는 신랑과 더 막역한 사이다. 신랑을 안 지는 4년, 신부와는 1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새신랑이 될 산디와의 추억은 한강에서의 치맥, 주말 홍대, 한국어 스터디, 두 번의 머드 페스티벌, 새로운 인연을 만나길 기대하며 강남에 타로점을 보러 간 일까지…. 세어보려니 손가락이 모자라다.

워낙에 가고 싶었던 인도를 결혼식까지 초청받고서 갈 생각에 기분이 붕 떠버렸다. 마침 동방항공에의 저렴한 티켓까지(왕복 49만 원) 나를 도와준다. 생각보다 거리는 멀었지만 예상보다 항공권 가격은 저렴했다. 뉴델리에는 오전 2시 도착, 한국으로 돌아갈 땐 다시 오전 2시 출발에 상하이 9시간 체류라는 다소 터프한 일정이었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함께 결혼식에 초대받은 프랑스 친구들과는 뉴델리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며 그렇게 인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친구 결혼식을 위해 향한 인도, 저렴하게 출발

새벽 도착은 여러모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불편함과 맞서며 공항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택시를 타고서라도 편하게 숙소에서 머물 것인가. 라는 잠시의 고민도 없었다. 그냥 전철이 다닐 때까지 공항에서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장시간 보내야 할 터(?)를 물색하던 중에 두 자리가 연이어 비어있는 의자를 발견했다. 내가 앉게 될 의자 옆에는 허벅지까지 닿을만한 큰 배낭을 가랑이에 끼고서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 남자는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이었다. 상하이에서도 봤고 심지어 내 앞자리에 앉았었다.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일본어를 봐서는 분명 일본 사람이었다. 의자에 앉으며 가방을 만지작거리다 두어 번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종명군에게서 받은 사진. 함께 밤을 지새었던 공항노숙(?) 동지들
 종명군에게서 받은 사진. 함께 밤을 지새었던 공항노숙(?)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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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상하이에서도 만나지 않았던가요? 좌석도 앞 뒤였는데…."

이것도 인연이라며 한국말로 "신기하다" 혼잣말을 내뱉는 순간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한국 분이세요?" 그렇게 셋이서 함께 대화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여행의 시작을 앞둔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반가운 존재였을 테다.

구미에서 온 종명군은 2년 전 다녀간 인도를 잊지 못해 다시 찾았다고 한다. 그때와 똑같이 두 달간 혼자서 여행할 거라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20대 후반에 일을 그만두고서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온 이 친구에게서는 용기와 여유가 물씬 느껴졌다.

"누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좋은 사람 같아요."

신나는 여행을 앞두고서 어디 얼굴 찌푸린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봐주는 당신이 분명 따뜻한 사람이겠지. 오사카에서 온 유키는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었다.

'인도가 처음이면 너무 세지 않아요?'

인도 다음에 동남아로 떠날 거라는 파릇파릇한 20살 청년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넘치는 자신감과 패기, 자신을 향해 펼쳐질 찬란한 순간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설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싱그러웠다.

"상하이 도착했을 때 중국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했지 뭐예요. 실패해버렸네요."

여행이 처음이라 무조건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줄 알고 종이를 들고 왔다고 한다. 다이어리에 출입국 신고서를 붙이며 '나의 첫 번째 실패'라고 써 붙이는 유키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마냥 두근거리고 있었다. 여행은 이렇다. 실패마저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마법이 존재한다.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는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 뉴델리 역을 빠져나온 뒤 들었던 생각은 황톳빛 난국. 내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세계. 가공되지 않는 삶이 눈 앞에 펼쳐진 이곳은 바로 인도였다. 이래서 인도, 인도 하는구나. 나와 유키는 생경함과 신기함이 뒤섞여 두리번거리기 바빴지만 이미 길을 알고 있는 종명군은 "눈길 주지 마세요, 저 따라오세요"하며 우리를 안내하기 정신없다.

"수지상, 오길 잘한 것 같아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신기해. 너무 달라."

뉴델리 기차역 근처에 들어서자 이내 긴장을 했다. 인도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종명군이 내 옆에 붙으며 "시선을 주지 말고 무조건 앞만 보고 걸으세요"라고 조언해준다. 덜컥 겁도 났다. 가방을 부여잡고 수십 번을 지갑과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확인했다. 역에서 넘어가는 길도 릭샤를 유도하기 위해 외국인에게는 길을 내주지 않는 곳. 어디서 왔느냐고 수십 번 물으면서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바가지 씌우는 소녀에게 당할 뻔

나의 첫 릭샤 이 릭샤를 선택했던 이유, 흰색 수염, 흰색 터번, 흰색 의상을 입은 흰 노인.
▲ 나의 첫 릭샤 이 릭샤를 선택했던 이유, 흰색 수염, 흰색 터번, 흰색 의상을 입은 흰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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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숙소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두 사람과 조금 더 있고 싶은 마음에 배낭 여행자의 거리라고 불리는 파하르간지(Paharganj)까지 가게 되었다. 한 나라의 수도 내에 있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낙후 정도가 심각했다. 갖은 향신료 냄새와 대략 100명의 겨드랑이가 섞인 것 같은 암내는 후각을 마비시켰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최고의 악취였다. 온갖 썩은 냄새가 종류별로 진동하는 거리를 지나서 겨우 찾아낸 인터넷 카페는 어느 호텔 로비였다. 1시간 30루피라더니, 2시간밖에 못 준다며 다시 60루피. 정작 주는 건 30루피 1시간짜리이다. 허허, 도대체 뭐하자는 거지?

끊어질 듯 말 듯한 와이파이를 공유하며 우리는 SNS를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기약한 채로 헤어졌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종명군은 내 캐리어를 끌면서 길을 앞장섰다. 내가 다시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가겠다고 말하니 한참은 떨어진 그곳까지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한다.

"제가 지난번 인도 왔을 때 정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별거 아니지만... 짐 무거우시니까."

종명군에게 꼭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인도에 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설 명절 귀경길을 연상케 하는 지하철 표 끊기부터 여성들만 탈 수 있는 여성 전용 전철 칸까지 색다른 경험 속에 도착한 현지인 숙소는 사실 '멘붕'이었다.

화장실을 보고 어떻게 씻어야 할지 막막했고 방이 아닌 거실 바닥 게다가 적어도 침실 담요는 묵은 먼지 몇십 년은 품었을 만한 비주얼이었다. 가장 저렴하면서 '인도'스러운 집을 선택한 결과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긴 했지만, 부족했네. 그래도 집주인은 토스트와 망고주스를 건네주며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내 친구들을 소개해주겠다. 함께 파티를 하자."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이었는데 공감대 형성하기 좋은 동갑내기였다. 그가 추천해준 루트를(로터스 템플-후마윤의 무덤-인디아 게이트) 손에 쥐고서 나는 숙소를 나섰다. 그는 친절하게 거리마다 릭샤 금액도 알려주었다. 릭샤를 타고서 주위를 둘러보면서는 '정말 오길 잘했구나' 싶었다.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막무가내로 다가와서 헤나를 내 손목에 그렸다. 팔찌는 10루피라고 말해놓고선 나중엔 전부 500루피라고 우기는 무서운 소녀.
▲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막무가내로 다가와서 헤나를 내 손목에 그렸다. 팔찌는 10루피라고 말해놓고선 나중엔 전부 500루피라고 우기는 무서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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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않고 내 손에 헤나를 그리던 어린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다가 무시무시한 바가지를 씌우려고 덤벼든 속내를 알아채고선 역정을 내며 실망하기도 했다. 왜 나와 사진을 찍고 싶은 건지 스타가 된 기분처럼 사진 요청에 수십 명과 사진을 찍은 오늘 하루. 내 사진기에는 풍경보다는 사람이 많이 담겨 있었다. 내 얼굴을 내어주고 나는 그들의 얼굴을 챙겨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얼마 되지 않는 숙박비에 저녁이라며 탄두리 치킨과 모모(인도식 만두)를 챙겨주는 친절한 호스트 덕분에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가도 15분 동안 겨우 한 번 헹굴만한 물을 받고서 머리에 뿌릴까? 몸에 끼얹을까? 심각한 고민을 한 탓에 다시 아주 많이 저렴한 곳은 머물지 않으리 다짐을 하기도 했다.

모르는 남자와 한집에서 자야 한다는 것은 (물론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위험하고 아무렇지 않으면 또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호스트의 친구 (룸메이트)가 오면서 나도 모르게 인도 친구의 사진도 보여주며 결혼식에 초대받았단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 결혼사진을 보여주면서 남편에 대해서도 은연중 쏟아내는 중이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지? 남편과 인도 친구에게 잘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내려고 해."

오늘 하루, 나를 들었다 놨다 간을 쪼그라트렸다 퍼트렸다 기분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내일만 지나면 프랑스 친구들이 오니까 여기서 잘 버텨보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일 또한 오늘처럼 잘 지낼 수 있겠지?'란 생각에 기대되었다. 불편한 게 많지만, 이상하게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대란 무엇일까? 어느새 내일에 대한 기대가 제법 커져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천장의 선풍기가 내가 자는 도중에 떨어지지 않을까? 그냥 창문을 열어놓고 자야 하지 않을까? 그 걱정에 잠 못 이룰 것 같지만 지금 글을 적으면서도 잠이 쏟아지고 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기쁨이 온몸에 스며들면서도 꼿꼿이 누워 최대한 담요에 몸을 닿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내일은 더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굿 나이트.'

델리, 로터스 템플(Lotus Temple)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 황홀한 미소와 따봉.
▲ 델리, 로터스 템플(Lotus Temple)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 황홀한 미소와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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