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는 최근, 국가란 조직이 어디까지 무능해질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이역만리 낙타에서 시작된 '메르스' 앞에 우리 정부는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위기의식은 부족했고 선제 조치는 미흡했으며 내놓는 대책들은 '뒷북'을 뻥뻥 울려 실소를 자아냈다.

똑똑한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와이저>
▲ 책표지 똑똑한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와이저>
ⓒ 위즈덤하우스

관련사진보기

무능한 인재들만 모여서 있어서?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럿이 모인 집단이 어떻게 이토록 우왕좌왕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속해 있는 인재들의 능력이 집단을 통해 취합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 선스타인 교수와 시카고부스경영대학원 헤이스티 교수는 저서 <와이저>를 통해 그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집단 구성원이 다 함께 논의하면 각자가 아는 정보를 종합하고 실수를 만회함으로써 '소수 최고 인재의 자질'을 능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자들은 이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책에 따르면, 이를 위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제거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 책은 그 실현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문제 해결에 도움 안 되는 '해피 토크'

박근혜 대통령은 평소 대면보고를 꺼린다고 알려졌다. 위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스만을 위한 별도의 자리가 아니라 정례적으로 모이는 국무회의에서 첫 대면보고가 이뤄졌다. 그마저도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난 후였다.

새누리당 한 중진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매일 회의를 열어 현황을 보고받고 지시하고 점검해야 하는데 대면보고조차 꺼리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참모들이 대통령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당연히 쓴소리나 의중과 다른 소리를 하는 건 더 두려울 게다.

리더나 동료들에게 찍히는 게 두려워 서로 듣기 좋은 환담, 이른바 '해피 토크'만 나누는 건 집단이 최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사실 '해피 토크'는 책의 주된 공격 대상이다. '해피 토크'가 집단 실패에 만연한 원인이라는 것.

책은 이런 경향이 최악으로 발현된 사례로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 사건'을 들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자문관들은 이 작전이 실패하리라는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만약 리더 역할을 맡은 특정한 집단 구성원이 사회적 형벌을 가할 의사와 능력이 있다면, 나머지 구성원은 결코 그의 주장을 대놓고 거역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리더들은 다른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 후에 맨 마지막에 발언을 한다. 선스타인이 몸소 경험했듯이,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할 기회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 <와이저>에서

침묵을 깨트리는 '악마의 변호인'과 '레드팀'

직접 백악관에서 일하기도 했던 저자들은 "대통령 자문관은 개인적인 의구심을 억누르고 단결되고 지지적인 입장만을 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어느 자문관이나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데, 의견에 도전하려면 신임을 잃을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저자들은 여러 방식을 제시했다. 그중에서 '악마의 변호인'과 '레드팀'은 특히 흥미롭다.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개념은 집단 의사와 상반된 입장을 피력할 전담자를 공식적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맡은 구성원들은 그저 주어진 소임을 다할 뿐이므로 지배적인 입장을 거부하는데 따른 사회적 압력을 모면할 수 있다.

'레드팀'은 '악마의 변호인'과 비슷하지만 보다 효과적이다. '레드팀'은 본래 팀의 실행 계획을 비판하거나 무산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팀을 말한다. 주로 두 가지 역할을 부여받는데 본래 팀을 이기려는 형태와 본래 기획에서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공격하는 형태, 모두가 가능하다.

하지만 책은 인위적으로 반대자를 임명하는 것보다 자신이 말하는 바를 진심으로 믿을 때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차선책으로 제도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더 나은 집단이 되기 위해선 '진짜 반대자'들이 필요하단 얘기다.

현명한 리더들은 팀 플레이어에 대한 특수한 정의, 즉 집단의 다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집단에 가치 있는 정보를 추가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수용한다. 리더들은 반대 의견을 내는 구성원에게 불이익을 가하기보다 보상을 안겨주는 조직 문화를 조성한다. 이것은 반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 <와이저>에서

암호문 같은 발언을 늘어놓는 대통령과 이를 침묵 속에 열심히 받아쓰는 참모들, 이도 모자라 '심기경호'까지 나서는 행태는 결코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게 국가를 책임지는 조직이라면 더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거다.

마치 책에 나온 집단 실패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다. <와이저>의 저자들이 이 상황을 알았더라면 책에서 사용한 실패 사례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와이저> (캐스 R. 선스타인·리드 헤이스티 지음 / 이시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 2015.06 / 1만 5000원)



와이저 - 똑똑한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캐스 R. 선스타인 & 리드 헤이스티 지음, 이시은 옮김, 김경준 감수, 위즈덤하우스(2015)


태그:#와이저
댓글1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