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18일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엘리엇은 합병안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이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심각하게 불공정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본사.
▲ 엘리엇 "삼성 지배구조 개편 지지하나 합병은 불공정"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18일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엘리엇은 합병안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이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심각하게 불공정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본사.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법원이 연거푸 삼성의 손을 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아래 엘리엇)가 합병 주주총회 무산과 삼성물산 '백기사'인 KCC의 무력화를 노렸지만 법원의 벽은 높았다.

연거푸 삼성 손 든 법원 "삼성물산 자사주 KCC 매각 문제없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재판장 김용대 수석부장판사)는 7일 엘리엇이 삼성물산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KCC에 매각한 자사주(5.76%)의 의결권 행사 등을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이 재판부는 지난 1일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합병 주주총회 소집통지와 결의 금지 가처분신청도 기각했다.

엘리엇은 지난 6월 초 삼성물산 지분 7%를 보유해 3대 주주로 올라선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번 합병이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과소평가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이유였다.

이에 맞서 삼성물산이 지난달 11일 합병 결의에 필요한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고 제일모직 2대주주인 KCC에 자사주를 모두 매각하자,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이사진, KCC 등을 상대로 자사주 매각 지분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엘리엇은 "자사주 처분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신주 발행과 유사하다"면서 "다른 주주에게 매수 기회를 주지 않고 특정 주주에게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합병 주총을 앞두고 제일모직 주요 주주인 KCC에 매각한 것도 '사회통념상 현저히 불공정하고 사회질서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날 결정문에서 "자기주식 처분은 이미 발행된 주식을 처분해 회사 자본금과, 거래 당사자가 아닌 기존 주주들의 지분 비율도 변동되지 않아 신주 발행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면서 "신주 발행에 관한 규정과 법리를 자기주식 처분에 유추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또 "자사주 처분 목적이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지배권 유지 등에만 있고 회사나 주주 일반의 이익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엘리엇 쪽 주장에도 법원은 "건설 및 상사 분야의 매출 성장세가 예전보다 침체된 상황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레저, 패션, 식음료, 바이오 분야 등에서 강점과 잠재력을 가진 제일모직과 합병을 추진할 만한 경영상 이유가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삼성쪽 손을 들어줬다.

아울러 처분 상대방을 KCC로 정한 것이라든지 장외 거래를 통한 자사주 처분 방식, 가격, 시기도 자사주 처분에 별도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 삼지 않았다.

참여연대 "자사주 제3자 매각, 재벌총수 지배권 유지에 악용"

다만 법원은 "입법론적으로 자기주식 처분의 방식과 절차, 내용 등에 관해 지금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가하거나,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과 유사하게 자기주식 우선 매수권을 인정하는 등의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따로 논의할 문제"라고 밝혀 상법과 자본시장법 등 현행법의 자사주 처분 규정 미비를 지목하기도 했다.

실제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그동안 자사주 처분이 지분율이 낮은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 등에 악용되고 있다며 규제 법안을 준비해 왔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12일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 비판 논평에서 "그동안 자사주 제도는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고 주가를 지지하는 간편한 제도로 활용됐지만 다른 한편 재벌총수 등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부당하게 유지하거나 방어하는 제도로 악용되기도 했다"면서 "이런 잘못된 관행은 주주평등 원칙을 위배하고 회사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왜곡하기 때문에 시급히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11년 상법 개정 전까지 자사주 취득과 보유를 엄격하게 규제했다. 하지만 이후 자사주 취득을 자유롭게 풀면서, 자사주 처분을 신주 발행과 동일시해 주주평등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법무부가 지난 2006년 입법 예고한 상법 개정안에는 자사주 처분시 주주의 신주인수권 규정을 준용하도록 해 주주평등주의를 명문화했지만 재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법원의 기각 결정에 대해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장은 "당시 상법에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자사주 처분을 신주 발행과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는데도 법원이 엉뚱한 논리를 들이댔다"면서 "자사주 처분에도 주주평등주의를 적용해 경영권 방어 목적의 제3자 배정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야당에서도 자사주 처분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특히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0명은 지난달 17일 자사주 처분시 원칙적으로 소각하거나 기존 주주 지분율에 비례해 배분하는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해외 투기자본에 맞선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원 판결은 규제 구멍 탓... 자사주 처분 규제 법안 필요"

자사주 처분 규제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현행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에는 자사주 처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법원에서 제3자 배정을 불법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그동안 자사주 제3자 배정에 대한 소송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주주평등주의에 위배된다는 의견은 소수였고 다수는 법 규정이 없어 문제없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판결도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한편 참여연대를 비롯해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는 삼성물산 최대주주(지분 11.6%)인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를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오전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합병은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즉 3대 세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각 회사의 고유한 영업 판단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국민연금은 이번 합병이 합병 목적의 타당성, 합병 비율의 적정성 등 가입자와 수급권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의결권 행사의 방침을 결정해야 한다"고 합병 반대 의결권 행사를 압박했다.

아울러 "투기자본이 삼성의 합병 결정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합병 결정을 수용하고 총수일가의 부당한 세습을 위한 전횡과 비리를 눈감아 줄 수는 없다"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에 대해서 삼성총수일가의 편을 들 것이냐, 국제투기자본의 편을 들 것이냐는 잘못된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태그:#삼성물산 합병, #엘리엇, #자사주 처분, #제일모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