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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평가는 평가를 안 한 것과 같다.
 무질서한 평가는 평가를 안 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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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시장을 보려고 한다. 닷새마다 하루씩 열리는 오일장에 갔다. 장 골목엔 장꾼들이 벌여놓은 순서대로 상품이 진열돼 있다. 뻥튀기 옆에 과일, 순대, 해물, 옷, 두부, 가축, 쌀, 화분, 채소, 모종…… 이런 식이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오일장은 재밌다. 그런데 당신이 어떤 목적을 갖기 시작하면 조금 달라진다. 당신은 이 오일장에서 가장 값싸고 맛있는 사과를 사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별 수 없다. 오일장을 전부 돌아다녀야 당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오일장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당신은 대형마트에 갔다. 대형마트의 모든 상품은 식품, 가전, 의류, 화장품, 잡화 따위로 대분류 돼 있다. 식품 아래 과일, 채소, 육류, 해산물, 가공식품 따위로 중분류 돼 있다. 과일 아래 포도, 오렌지, 사과, 복숭아, 바나나 따위로 소분류 돼 있다.

당신은 이 대형마트에서 가장 값싸고 맛있는 사과를 사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오일장에서처럼 대형마트를 전부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식품 - 과일 - 사과로 이어지는 카데고리에 따라 사과 코너를 찾고 거기 진열된 것 가운데 가장 값싸고 맛있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여러 가지 비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대형마트에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형마트는 모든 상품을 범주, 즉 카테고리에 따라 진열했기 때문에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맥킨지 식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당신이 사려고 했던 가장 값싸고 맛있는 사과를 생존 글쓰기에 비유해보자. 가장 값싸고 맛있는 사과는 당신이 써야 할 보고서, 공문, 보도자료, 자기소개서, 이메일이다. 당신은 사과를 파는 사람이고 보고서, 공문, 보도자료, 자기소개서, 이메일을 받아보는 사장, 외부기관, 기자, 인사담당자, 수신자는 사과를 사는 사람이다.

당신은 사과를 어떻게 팔 것인가? 오일장 방식으로 팔 것인가, 대형마트 방식으로 팔 것인가? 이들은 당신의 글을 전부 읽고 난 뒤 비로소 필요한 부분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당신의 글을 읽는 순간 곧바로 필요한 부분을 알기를 원한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겠다. 당신은 캠핑을 가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시장을 봐야 한다.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장보기 목록을 메모한다.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메모를 한 뒤 목록에 가위표를 쳐가면서 장을 본다.

복숭아, 삼겹살, 마늘, 일회용 가스, 소주, 상추, 불판, 숯, 백숙용 닭, 오렌지, 맥주, 깻잎, 포도, 막걸리, 호일

이런 방식의 메모에 따라 시장을 보면 꼭 나타나는 문제점이 있다. 중복과 누락이다. 과일 코너에서 복숭아를 살 때 포도도 샀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다시 과일 코너에 가서 포도를 산다. 집에서 와서 물건과 목록을 대조해보니 아뿔싸, 숯을 빠뜨렸다. 이런 중복과 누락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보기 목록을 아래와 같이 범주화해야 한다.

과일류 : 복숭아, 오렌지, 포도 / 채소류 : 상추, 마늘, 깻잎 / 육류 : 삼겹살, 백숙용 닭 / 주류 : 소주, 맥주, 막걸리 / 잡화류 : 불판, 숯, 일회용 가스, 호일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비즈니스 글쓰기의 원칙과 방법을 발전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맥킨지 식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MECE(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다. MECE는 상대방에게 전달할 내용을 중복되지 않게, 누락되지 않게 정리하라는 것이다. MECE를 하려면 카테고리에 따라 글쓰기를 해야 한다.

무질서한 평가는 평가를 안 한 것과 같다

당신은 카테고리를 글쓰기에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고 그 구체적 방법도 알지 못한다. 당신은 지난 주 어린이집 원아들을 대상으로 배따기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결과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가운데 어린이집 평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농촌이라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고 DMZ라는 곳에 출입한다는 게 설렜다.
- 아이들이 편안하게 보고 만지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 지역이 다르지만 관계있는 어린이집들도 함께 산지 체험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보물찾기 장소가 적절하지 못하였다. 올라가는 길이 좁고 땅에 밤송이가 많았으며 철조망도 보이고 어린아이들이 다니기에는 경사가 조금 있는 언덕이라 위험성이 있었다.
- 잡풀이 많아 작은 아이들이 다니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 배따기 체험을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집중도 잘 했다.
- 배에 관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고, 농산물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 '나무가 아프다'며 울면서 배따기 체험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연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을 읽었다.
- 어린이집마다 다르지만 외부 체험 학습은 학부형들의 허락 받아야 해서 적어도 한 달 전에 공문을 전달해야 한다. 아이들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 소식지에 내용을 넣어 어린이집들에게 동기부여를 했으면 한다.
-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하고 진행이 잘 된 느낌이었다.

당신은 결과보고서를 왜 썼는가? 당신의 사장은 이 결과보고서를 통해 무엇을 알고자 했는가? 이 행사의 진행상황과 평가를 기록함으로써 다음 행사 때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더 극대화할 방안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평가를 무질서하게 늘어놓는 것은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다 읽고 난 뒤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카테고리 글쓰기로 바꿔보자.

o 참가한 어린이들의 반응
- 아이들이 편안하게 보고 만지고 뛰어놀 수 있었다.
- 아이들이 배따기 체험을 신기해하며 집중도 잘 했다.
- '나무가 아프다'며 울면서 배따기 체험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연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을 읽었다.
o 체험 장소
- 농촌이라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고, DMZ라는 곳에 출입한다는 게 설렜다.
- 보물찾기 장소는 올라가는 길이 좁고 땅에 밤송이가 많았으며 철조망도 보이고 어린아이들이 다니기에는 경사가 조금 있는 언덕이라 적절하지 않았다.
- 잡풀이 많아 작은 아이들이 다니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o 행사 운영
- 배에 관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고, 농산물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 외부 체험 학습은 학부형들의 허락 받아야해서 적어도 한 달 전에 공문이 전달되어야한다.
- 지역이 다르지만 관계있는 어린이집들도 함께 산지 체험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소식지에 내용을 넣어 어린이집들에게 동기부여를 했으면 한다.
o 총평
-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하고 진행이 잘 된 느낌이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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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보고서 보도자료 작성 교육, 일반인을 위한 자기소개서와 자전에세이 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실용글쓰기 전문강사입니다. 동양미래대 겸임교수,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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