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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도입돼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듣던 검사 적격심사제로 검사 1명이 면직처분 됐습니다. 주요 언론들은 '11년 만에 첫 탈락자가 나왔다'고 단신으로 보도했지만 검찰 내부는 이 일을 두고 술렁였습니다. "내년엔 내 차례가 될 것"이라며 법무부의 적격심사 강화를 저지하겠다는 검사도 나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가뜩이나 '정치 검찰'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검찰, 여기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치는 일선 검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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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움직였다.

5월 26일 국회 의원회관, 과거사 재심사건 때 상부 지시를 어기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해 징계를 받았던 임은정 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휴가까지 내고 여의도를 찾은 그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실들을 분주히 오갔다. 손에는 법무부의 법안 개정에 반대한다는 8쪽짜리 의견서가 들려 있었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법무부 법안 취지를 설명하러 온 검사는 봤어도, 법무부에 반대한다며 찾아온 검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임 검사를 움직인 법안은 지난해 10월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검찰청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검사 적격심사 강화'다. 최근 현직 검사들의 뇌물수수, 성추문 등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땅에 떨어진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법안을 내놨다. 7년마다 검사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적격심사를 강화, 문제 검사를 제대로 걸러내겠다는 취지였다.

법무부는 우선 첫 적격심사를 검사 임명 2년 후 실시한 뒤, 5년에 한 번씩 심사를 진행하려고 한다. 또 '직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검사로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정해져있는 부적격 사유를 ▲ 신체상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있거나 ▲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고 ▲ 검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바꾸려고 추진 중이다(☞ 법무부 검찰청법 개정안 바로 가기).

평검사의 반란 "법무부에 반대합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 법안에 '자정 의지'를 담았다고 하지만 임은정 검사의 견해는 정반대다. 그는 법사위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적격심사 강화는 검사의 신분 보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까지 흔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검사가 소신껏 일하기는 더욱 힘들어질뿐더러 적격심사 자체가 '검사 길들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임 검사는 부적격 사유 구체화의 문제점도 조목조목 따졌다. 그는 '신체상 또는 정신상의 장애'는 이미 현행법에 '심신장애로 인한 퇴직' 규정이 있는 만큼 부적격 사유에 추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또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한 경우'로 개정한다면 무리한 실적 경쟁으로 오히려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법관 연임제처럼 검사 적격심사에 '품위 유지 곤란'을 탈락사유로 추가하는 것 역시 맞지 않다고 했다. 판사들의 임기는 헌법상 10년이다. 사법부는 이 임기가 끝나면 내부 평가로 연임 여부를 정한다. 일종의 재계약이다. 반면 검사 적격심사는 현직을 해고하는 것과 비슷한 제도다. 임 검사는 법원과 검찰의 인사체계가 다른 만큼 법관 연임제와 검사 적격심사를 동등하게 볼 수 없다고 했다.

'적격심사가 문제 검사를 제대로 걸러낼까'라는 의문도 남는다. 임 검사는 최근 문제를 일으킨 검사들은 평소 근무실적이 우수해 요직을 차지했던 인물들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업무능력이 '부적격'하다고 평가받을 가능성이 낮은 검사들이었다. 임 검사는 이 일은 현재 인사시스템의 한계인만큼 적격심사 강화로 극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적격심사위원회의 구성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적격심사위원회는 ▲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법률전문가 1명 ▲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변호사 1명 ▲ 교육부 장관이 추천하는 법학교수 1명 ▲ 법무부 장관이 위촉하는 사법제도 전문가 2명 ▲ 법무부 장관이 지명하는 검사 4명 등 9명으로 꾸려진다. 심사위원의 3분의 2를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셈이다.

이 숫자는 부적격 검사 퇴직 의결정족수와 동일하다. 임 검사가 적격심사 강화가 아니라 적격심사위원회의 외부위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한 까닭이다. 그는 일본처럼 국회의원과 변협회장, 판사, 학자 등 외부 인사들로 적격심사위원회를 꾸려야 심사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수뇌부와는 철저히 다른 목소리다. 

적격심사 최초 탈락자는 '임은정 지지' 검사

임 검사가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넘기기에는 법무부의 최근 행보가 이상하다. 지난 2월 법무부는 B지방검찰청 소속 A검사가 직무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며 퇴출시켰다. 적격심사 도입 후 최초였다.

4월 27일 언론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 안팎에선 그가 '괘씸죄에 걸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A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이프로스)에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을 지지하는 글을 수차례 올린 일이 화근이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A검사는 탈락사유를 모른다. 그가 받은 공문에는 '퇴직을 명함'이라는 말만 쓰여 있었다.

그런데 A검사는 임은정 검사의 1년 선배다. 내년이면 임 검사가 자동으로 적격심사 대상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A검사의 적격심사 탈락이 임 검사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임 검사 본인도 4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많은 동료들이 내년에는 제가 퇴직당할 것이라고 걱정한다"고 올렸다.

그는 국회를 방문하기 전 이프로스에 쓴 글에서 "검사 신분을 포기하기 어려워 적격심사의 파고를 넘을 때까지 참으라는 동료들의 만류에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 보장을 떠나 '강직한 검사 솎아내기'가 걱정스러운 만큼 더 이상 손 놓고 있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검찰청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검찰이 더 망가지겠구나 싶어 비겁해지려는 저를 억지로 돌려세웁니다. 법무부 개정안은 검찰과 국가의 현재와 미래에 소탐대실의 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돼 부득이 반대의견을 개진하려 합니다."

법사위는 현재 법안심사1소위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을 심사 중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검사 적격심사, #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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