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가장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불온한 뮤지컬이 돌아왔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아래 <지크슈>, 'Superstar'의 바른 우리말 표기는 '슈퍼스타'이나 제작사는 이전부터 '수퍼스타'로 쓰고 있다)가 지난 6월 12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지난 2013년 이후 2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은 이번 공연은, 오는 9월 13일에 커튼을 내릴 예정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지크슈>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대사없이 노래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송 스루(Song Through)' 작품의 대표주자, 배우의 목을 혹사시킬 정도로 고음 위주인 록 뮤지컬의 정점, 40년이 넘도록(1971년 브로드웨이 초연) 여전히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 <캣츠>와 더불어 앤드류 로이드 웨버라는 작곡가를 '슈퍼스타'로 만들어 준 뮤지컬.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 전 7일부터,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를 그린 이 뮤지컬은 기독교적 색채가 무척 강한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히 성경 속 서술을 무대에 재현하는 데 그쳤다면, 이 작품이 비종교인들에게까지 사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신성성에 갇혀 있던 예수와 사도(특히 유다)를, 그 껍데기에서 벗겨내 '인간'으로 바라본다.

때문에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교단으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받은 전례가 있다. '록' 자체가 '악마의 음악'이라고 주장하던 이가 심심치 않았던 시대, '록 오페라'를 표방한 채 예수와 유다의 인간적 고뇌를 다룬 작품은 존재 자체가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예수의 인간미 조명... 그는 누구를 위해 죽었나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설이 정론으로 채택된 이후, 예수의 성격에 대한 정의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신 '야훼'의 아들이자 주 그 자체이다. 인간의 육신을 지녔으나 기적을 발휘하는 신성한 존재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이며, 또한 주님의 아들이라는 속성을 함께 지녔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의 비범함과 고결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성경 속에서 예수가 보이는 인간적 고뇌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계획된 운명을 확고하게 믿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 <지크슈>의 지저스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인물이다. 그의 목적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이다. 그러나 자신을 '슈퍼스타'처럼 떠받드는 대중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자체가 어떤 인물인지 보는 대신, 각자의 욕망을 투영한 메시아로만 받아들인다. '슈퍼스타'를 향한 대중의 열망은 그가 무너지자마자 원망과 저주로 변한다.

자신을 따르는 제자, 사도들 역시 매한가지다. 열성당원 시몬도, 수제자 베드로도 지저스의 원대한 뜻을 가늠하지 못한다. 오직 유다만이 그의 진의를 알지만, 이에 반기를 든다.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 앞에서, 계획된 죽음은 점차 지저스의 목을 죄어 온다. 그의 눈에는 누가 자신을 배신하고, 누가 자신을 모른다고 부정할지가 보인다. 그는 계획의 완성에 왜 자신의 죽음이 포함돼 있는지 강한 의문을 갖는다.

 지난 6월 16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지저스(예수) 역을 맡은 마이클 리가 커튼콜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마이클 리는 가창력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배우이다. 한국어 발음이 약간 어색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지난 6월 16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지저스(예수) 역을 맡은 마이클 리가 커튼콜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마이클 리는 가창력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배우이다. 한국어 발음이 약간 어색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 곽우신


"의심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우나무노 이 후고의 이 명언은, 지금도 무조건적이고 교조적인 신앙을 경계할 때 많이 회자된다. <지크슈>의 지저스는 아버지의 뜻을 의심한다. 인간의 대속자로 내려온 메시아가, 자신이 죽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부분이야말로 이 극의 하이라이트이다.

"다가오는 죽음이, 난 너무나 두려워져. 흔들리는 마음, 지쳐버린 몸. 무얼 위해 싸워 왔나. 누굴 위해 죽는 건가. 이 고통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되나요. 나 죽을 때, 예언하신 당신 뜻을 이루시겠죠. 날 못 박고, 치고, 찢고 죽이시겠죠.

내가 죽어, 얼마나 더 대단한 걸 갖게 되나요. 얼마나 더 위대한 걸 이루시나요.

왜 죽나요. 보여줘요. 내 죽음이 갖게 될 의미, 알려줘요 내 죽음이 갖게 될 영광. 헛된 죽음 아니란 걸 보여줘 제발. 난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인가요, 왜."

대신 지저스가 확신을 가지고 분노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몸을 파는 여자라는 이유로 공격받자 이들을 꾸짖는다. "누구든 죄 없는 자만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며, 가장 천대 받는 이를 감싸고 보호한다. 성전을 오염시킨 장사치들을 꾸짖고 이들을 내쫓는다. 그가 낮은 자를 감싸고, 세속적 욕망을 경계한 이유는 그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연민할 줄 알고, 분노할 줄 아는 한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지크슈>의 진짜 주인공은 유다?


신앙적으로 보면, 유다는 만고의 역적이자 인류의 배신자이다. 유다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종파는 역사적으로 수차례 있었으나, 그때마다 이단으로 낙인찍힌 채 박해받고 사라졌다. 뮤지컬 <지크슈>의 진짜 매력은, 유다를 인간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발상 자체부터 이단적인 그 시도에 있다.

<지크슈> 속 유다는 지저스를 '애증'하는 인물이다. 그가 지저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존경과 사랑, 원망과 증오가 뒤섞여 있다. 또한 그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그의 계획이 어그러지기를 바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의 양면성과 모순적 태도는, 철저하게 타락한 '악인'으로만 유다를 그리던 전통적 해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리 함께 꿈꾼 그 모든 건 신보다 위대한 인간의 길, 난 아직도 그 뜻을 굳게 믿고 있는데... 왜 다 버리려 하나. 왜 하필 이 선택인가. 배신당해 죽어야 할 운명."

지저스와 갈등하고 충돌하는 인물이지만, 유다의 고뇌에 관객이 공감하는 이유는 그가 결코 '악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크슈>의 유다는 가난한 자를 사랑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지저스에게 향유를 바치자, 유다는 일갈한다. 저 값비싼 향유 하나 살 돈이면, 병들고 굶주린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외친다. 화려하게 겉을 치장하느니, 실질적으로 백성들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수단을 갈구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자의 친구였다.

 유다역을 맡은 배우 윤형렬이 지난 6월 16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커튼콜에서 앙코르로 넘버 '슈퍼스타(Superstar)'를 부르고 있다. '슈퍼스타'는 유다가 사망한 후,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해 지저스에게 따져 묻는 내용이다. 신나고 활기찬 음율에 비해, 가사는 다소 도발적이다.

유다역을 맡은 배우 윤형렬이 지난 6월 16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커튼콜에서 앙코르로 넘버 '슈퍼스타(Superstar)'를 부르고 있다. '슈퍼스타'는 유다가 사망한 후,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해 지저스에게 따져 묻는 내용이다. 신나고 활기찬 음율에 비해, 가사는 다소 도발적이다. ⓒ 곽우신


작품에서 유다는 고통받는 민중의 편에 섰다. <지크슈>의 유다가 배덕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로마로부터 핍박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저스를 중심으로 모인 이스라엘 군중을 조직해, 로마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다. 유다는 권력에 빌붙는 대신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이며, 이스라엘 민중이 굶주리지 않는 세상을 바랐다.

"지저스 지금 여길 생각해봐, 결국 빼앗긴 우리의 땅. 짓밟힌 채로 피 흘려 고통 받는 우리를. 저기 침략자들과 당신 목숨 건 거래. 이 선택은 너무 위험해, 너무나 위험해. 지저스 우린 여길 지켜야 해, 우린 이겨 내고 살아야 해."

<지크슈>의 유다는 무엇보다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았다. 지저스를 배신했지만 그 대가로 쥐어진 돈을 던져 버린다. 유다가 지저스를 팔아넘긴 것은, 그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채찍을 맞아 피 흘리며 고통 받는 모습을 보았을 때,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책한다.

그는 예수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자신을 죽인 건 지저스라면서, 끝까지 예수를 '애증'하는 채로 죽는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지저스의 계획에 어떤 원대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작금의 한국 기독교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

<지크슈>가 '완벽한' 극은 절대 아니다. 여러 조연들은 금세 휘발된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 마리아마저 존재감이 희미하다. 오리지널과 달리 헤롯왕을 여성으로 표현한 이번 서울 공연의 '도전'은 여전히 '물음표'만 남기고 있다. 대사가 없는 불친절한 극이기 때문에, 성경의 본래 내용을 알지 못하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군데군데 있다.

그러나 <지크슈>는 종교의 유무를 떠나 뮤지컬 팬이라면 한 번쯤 꼭 볼만한 극이다. 1막의 첫 곡인 '마음속의 천국(Heaven on Their Minds)'부터 2막의 '겟세마네(Gethsemane)', 마지막 '슈퍼스타(Superstar)'까지 관객의 귀를 정화하는 곡이 즐비하다. 시원한 고음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인물의 고뇌상이 겹치면서, 비종교인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매력을 뽐낸다. 지저스와 유다라는 두 개의 기둥이, 몇몇 허술함에도 극을 튼실하게 뒷받침한다.

예수와 유다를 재조명하고, 성경적 해석을 비튼 문화콘텐츠는 사실 흔하다.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2015년 지금 시점에서 보면 <지크슈>의 성경 비틀기는 그저 그런 발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크슈>는 인물과 노래라는 매력 외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안고 있다. <지크슈>의 울림은 이 메시지와 만나 증폭된다.

예컨대 <지크슈> 무대 위의 지저스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름을 함부로 빌리는 예수보다 위대해 보인다. 자신들의 정치적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차별과 배제를 옹호하기 위해 거리에서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빌리는 이들은, 자기들 멋대로 지저스의 의지를 왜곡한 <지크슈>의 군중들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의 교회는, <지크슈>의 지저스처럼 자신들의 신앙에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는가. 사람들로부터 천대 받고 돌팔매질 당하는 자를 대변하고 보호하는가. 장삿속을 신의 이름으로 위장해 성전을 어지럽히는 이들을 꾸짖는가, 아니면 그 장사질에 앞장서고 있는가.

한국의 교회는, <지크슈>의 유다처럼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있는가. 고통 받는 민중의 편에 서 있는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가. 사리사욕 채우기를 거부하고 주님의 큰 뜻을 펼치고자 하는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알고, 이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염치'가 있는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포스터. 6월 16일부터 9월 23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한국 관객을 맞이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포스터. 6월 16일부터 9월 23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한국 관객을 맞이한다. ⓒ 설앤컴퍼니



○ 편집ㅣ김지현 기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 유다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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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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