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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판결 VS 판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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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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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 이건 당위다. 법률은 다수의 평등을 위해 존재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잣대로 차별 없이 적용되고 집행돼야 한다. 부자라고 더 가혹해도 안 되지만, 더 관대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가난하다고 해서 처벌을 더 받거나 덜 받아서도 안 된다. 이건 누구나 공감하리라."(본문 162쪽)

이러한 법 정신은 성경에도 나온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위기 19장 15절)라고 말한다. 무엇인가를 판단해야 할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불편부당해야 함을 언급한다.

<판결 vs 판결>(개마고원 펴냄)의 저자 김용국은 묻는다. "현실은 어떨까?"라고, 이 물음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는 질문에 다름없다. "법대로 하는데 왜 판결은 다를까?"라는 부제에서 법의 한계성이 제대로 읽힌다. 정치적 판결, 권력에 편향된 판결, 대통령 눈치를 보는 판결을 수도 없이 경험한 국민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재벌 3·5법칙, 유전집유 무전실형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업인이라고 해서 어떤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또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불편부당을 말하는 듯하지만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언제 기업인이 역차별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나라의 재벌과 부자들은 특혜를 받은 적은 있어도 역차별을 당한 적은 없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친재벌적이고 친부자적인 발상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역시 재판에서도 이런 정의롭지 않음은 비일비재하다. 회장님의 하루 일당은 5억 원이지만, 평민의 노역은 5만 원의 가치밖에 없다. 5억 원짜리 노역을 한 회장님은 대주그룹의 허재호 회장이고, 5만 원짜리 노역을 한 사람은 장애인 운동가 박경석씨다.

허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으로 재판을 받았다. 법대로라면 1000억 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판결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 원이었다. 그것도 2심에서 254억 원으로 줄었고 3년 안에 상환해야 한다는 규정인 환형유치 때문에 하루 노역 일당을 5억 원으로 계산해주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와는 아주 대조적인 건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인 박경석씨에게 내려진 벌금형이다. 집시법 위반과 교통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 원을 부과받았으나 벌금 대신 노역을 택했다. 그런데 일당은 5만 원이었다. 만민에게 법이 평등하다는 말은 그야말로 허울 좋은 개살구다.

세간에는 '재벌 3·5법칙'이란 이야기가 떠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기업 총수에게 3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를 내리는 우스운 재판을 비꼬아 하는 말이다. 유수한 재벌 회장들이 줄줄이 법 앞에 섰지만, 대부분 이 우스운 법칙을 적용받았음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2012년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1500억 원 배임으로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될 때만 해도 '재벌 3·5법칙'이 깨지는 것 같아 내심 많은 이들이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후에 여지없이 징역 3년 집행유예로 끝났다. 저자는 "화려한 전과를 감안할 때 집행유예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본문 157쪽)고 꼬집고 있다. 동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축의금 15만 원을 훔쳤던 윤아무개씨는 누범이란 이유로 집행유예 없는 3년 징역형이 언도돼 복역 중이다. 500만 원을 훔친 죄로 17년 형을 선고받고 갇혔던 탈주범 지강헌이 한 말은 유명하다.

"권력에 의해 법을 처리하는 법관들이 저주스럽고 죽이고 싶다. 이 사회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다. 돈에 판검사가 매수되다니 말이 되느냐. 모든 판검사를 죽이고 싶다."(본문 149쪽)

물론 그의 말을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한 서린 유서가 말하는 의미는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하리라.

벤츠 여검사 때문에 '김영란법'이?

'벤츠 여검사'로 불리는 이아무개 전 검사. 사진은 지난 2012년 1월 27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목도리로 얼굴을 감싼 채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벤츠 여검사'로 불리는 이아무개 전 검사. 사진은 지난 2012년 1월 27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목도리로 얼굴을 감싼 채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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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국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판결 vs 판결'이라는 동명의 연재기사를 써왔다. 이번에 출판한 책은 그중에서 사회적 이슈들을 추려 실었다. 저자는 책 출판의 이유를 '판결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의 비평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진영논리'에 묶여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정의의 승리'라든가, 불리한 판결은 '썩은 판결'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의 재판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알기 쉽게 짚어주는 상식적 법해석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생사를 오가는 노숙인을 역사에서 쫓아내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역무원에게 책임이 없다는 판결은 이 나라의 허무함을 보게 했다.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법'이 우리나라에 없어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도둑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 폭력남편을 의식불명에 빠지게 했던 아내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되는지에 대한 판결 또한 흥미롭다. 산 낙지 살인사건과 시체 없는 살인사건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과 증거가 없음에도 살인죄를 인정하는 법의 의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재판이 갈팡질팡해 힘없는 국민들이 사지에 몰리기도 한다. KTX 여승무원의 10년 법정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1, 2심 복직은 대법원에서 패소해 이뤄지지 않았다.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왜곡된 재판을 하는 검찰과 재판관들은 '법대로'라고 쓰고 '권력자의 입맛대로'라고 읽는다는 생각이 든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나 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이는 꼴이란…, 참 민망하다. 미네르바 사건, 종북지자체장 퇴출, 이정희 부부 종북 매도 사건, 세월호 홍가혜 사건 등이 그것이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에 대해 정부가 들고 나오는 투쟁 방법(?)도 같은 맥락이라 꼴 사납다. 헌법재판소까지 동원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전철을 밟지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차라리 소 잃고 외양간 고쳤으면...

법대로 하면 다 되는가. 아닌 것 같다. 이현령비현령의 법 판단이 존재하는 한, 정권의 입맛을 고려하는 법적용이 있는 한, 가진 자의 권력화가 존재하는 한, 법은 정의가 아니다.
 법대로 하면 다 되는가. 아닌 것 같다. 이현령비현령의 법 판단이 존재하는 한, 정권의 입맛을 고려하는 법적용이 있는 한, 가진 자의 권력화가 존재하는 한, 법은 정의가 아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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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는 사건이 터진 후에 법을 만드는 것을 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로 비유되는데 그 정도라도 되면 좋다. 그것도 안 되니 문제다. 그중 대표적인 경우가 벤츠 여검사 사건일 것이다. 한 변호사가 내연관계에 있는 여검사에게 벤츠를 선물하고 카드를 마음대로 쓰도록 줬다. 이유는 자신과 관련된 소송을 유리하게 할 목적이었다.

재판에서 '사랑의 선물'인가 '청탁의 대가'인가가 쟁점이었다. 사랑의 선물이고 청탁의 대가는 없었다는 걸로 결론 났다. 당시의 법은 청탁과 대가가 동시에 증명이 돼야 처벌받았다. 결국 무죄가 됐다. 이후 청탁의 대가가 아니어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생겼으니…, 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밴츠 여검사가 '김영란법'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법대로 하면 다 되는가. 아닌 것 같다. 이현령비현령의 법 판단이 존재하는 한, 정권의 입맛을 고려하는 법적용이 있는 한, 가진 자의 권력화가 존재하는 한, 법은 정의가 아니다. 그러기에 법을 정부나 법관들에게만 맡겨놓으면 안 된다. 저자의 말대로, '비판적 시각으로 비평하기'가 필요한 이유다.

대부분 권력자들은 명분을 가지고 법을 사용한다. 국제앰네스티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유죄판결을 유감이라 표현했듯, 우리도 재판에 대해 '바로보고 비평하기'가 필요하다. 이는 법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된 책무의 문제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판결 VS 판결>(김용국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2015. 6 / 296쪽 / 1만4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판결 VS 판결 - 법대로 하는데 왜 판결은 다를까?

김용국 지음, 개마고원(2015)


태그:#판결 VS 판결, #김용국, #서평, #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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