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돈나>에서 해림 역의 배우 서영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마돈나>에서 해림 역의 배우 서영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로 춘사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한 이후 서영희는 <추격자>(2007),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 등에 출연하며 강렬한 모습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영희는 "굳이 의식하진 않았지만 평면적이지 않은 살아 있는 여자 이야기가 탐이 나서 결정한 것들"이라고 답했다.

개봉(7월 2일)을 앞둔 <마돈나>도 굳이 따지자면 앞선 작품과 같은 맥락이다. 극 중 VIP 병동의 간호사 해림 역을 맡았는데 영화 전면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다.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미혼모 미나(권소현 분)를 바라보는 관찰자 같은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서영희는 "그동안 겉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쭉 했으니 이번엔 오히려 표현을 자제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며 출연 이유를 밝혔다.

관심과 무관심 사이를 복잡한 감정으로 채우다

한 재벌가 회장을 간호하던 해림은 꿈도 희망도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인물이다. 회장의 아들 상우(김영민 분)는 무의식 상태인 미나의 장기를 기증 받기를 원한다. 신체가 하나의 도구이자 재료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미나의 연고자를 찾아 장기 기증 동의서를 받아오라는 위험한 제안을 수락하면서 해림은 점차 내면에 복잡한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낀다.

그 감정은 연민과 분노 사이 어느 지점에 있었다. 이 땅을 사는 여성의 삶을 표현해야 했는데 서영희는 연출을 맡은 신수원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마냥 어렵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았다"며 "감독님이 중심을 잘 잡고 있었기에 맡기면 됐다"고 말했다.

 영화<마돈나>에서 해림 역의 배우 서영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마돈나>에서 해림 역의 배우 서영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마돈나>에서 해림 역의 배우 서영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해림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님이 몇 편의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그것들을 보며 느낌을 잡아갔다. 그리고 친구 중에 사실 해림일 수도 미나일 수도 있는 이가 있다. 그 친구 생각을 많이 하면서 몰입했다. 원래 주사 놓는 방법도 배우긴 했는데 영화에서 쓸 일이 거의 없더라. 정작 내가 주사 맞는 걸 참 싫어하기도 하고. (웃음)

영화 전체 중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미나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 나오는 장면인데 텔레마케터, 공장 노동자 등으로 일하던 미나가 자기 이름을 불러 준 동료 직원에게 '내 이름 불러 줘서 고맙다'고 하잖나. 그게 가장 기억난다.

이름을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관심의 표현이다. 기억하기 싫고 부르기 귀찮아서 '야'나 '너' 등 다른 호칭을 쓰는데 그러면서 사는 게 팍팍해지는 거 같다. 점점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살기 힘든 요즘이다. 여성도, 남성도, 아이들도 자기 단속을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세상이 되는 거 같아 마음 아플 때가 있다. <마돈나>를 하면서 그런 감정들이 떠올랐다. 결혼식 문자도 스팸일까 봐 마음 놓고 못 열어보는 시대지 않나. 그만큼 못 믿고 살게 되는 거다."

"일은 일, 나는 나...일상의 소중함 누구보다 알고 있어"

삶의 이유와 방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 보였다. 예쁜 얼굴과 우아한 분위기로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에 어울릴 법했지만 서영희는 그 순한 얼굴로 섬마을 사람 7명을 무참히 죽이는 복수극을 펼치는 등(<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자신 만의 개성을 작품에 담아 왔다.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나라고 왜 아쉬움이 없겠냐"며 서영희가 웃었다. "대본을 읽다 보면 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 있다. 그걸 해오다 보니 20대를 그렇게 강렬하게 보냈다"고 덧붙였다.

그 중심엔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장르 불문하고 동화적이거나 상상의 산물이기보다 왠지 옆에서 벌어지거나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것들에 끌렸단다. 물론 "마냥 예쁘게 보이는 역할은 사실 잘 주지 않더라"고 귀띔한 그녀의 솔직함도 미리 깔아두자.  

 영화<마돈나>에서 해림 역의 배우 서영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마돈나>에서 해림 역의 배우 서영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20대에만 표현할 수 있는 풋풋함이 있는데 그걸 못 해보고 넘겨서 아쉬움은 있다. 그런 역할이 탐은 났지만 현실 속에서 건강하게 잘 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마 작품 속에서 예뻐 보이는 것에 욕심을 냈으면 또 다른 고민이 생겼을 거다. 물론 내 인상이 왠지 슬퍼보인다, 우울해 보인다는 타인의 말이 좀 불편하긴 했다. 이건 앞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거니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분명한 작품관이 있는 만큼 서영희는 자신의 일상 또한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언급한 '현실 속 건강한 삶'이 오히려 배우로서 남들이 갖지 못한 매력을 유지하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지난 2011년 결혼 당시 서영희는 양가 친척과 지인만 초대한 비공개 식을 올렸다. 여러 업체의 협찬도 거절한 소규모 결혼식이었다.

"날 무척 아끼고,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게 서영희의 인생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나 이렇게 산다'고 보이고 싶지도 않다"는 서영희는 "힘든 역할을 해왔다고 삶도 우울할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사뭇 진지해졌다.

그러고 보면 데뷔 때부터 서영희는 분명하게 인생관을 세우고 있어 보였다. "무대 위 삶이 재밌어 보여서" 부모님 반대에도 연기 공부를 했고, 학전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했다. "하다 보니 별로 후회할 것 같지 않았다"며 당시 기억 일부를 덤덤하게 전했다. 

<마돈나> 이후 서영희는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을 채울 예정이다. 밀렸던 독서도 이어갈 계획이다. 다음 작품에서 만날 서영희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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