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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사회혁신 공간 데어(there)'는 동그라미재단 지원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회혁신 키워드 100'을 선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380여 명이 열린 토론에 참여하는 '사회실험실(오픈랩)' 방식으로 찾은 100여 개 키워드 가운데 일부를 5차례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소개합니다. 그 첫 키워드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신뢰'입니다. [편집자말]
전국적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에 따른 시민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앞에서 의료진이 내원객에 대한 발열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전국적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에 따른 시민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앞에서 의료진이 내원객에 대한 발열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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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끝을 아무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현재 방역당국은 최근 '진정세에 들어갔다'는 판단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삼성병원의 잠정 폐쇄 조치도 당분간 계속한다고 한다. 방역당국의 방역망 바깥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여전히 계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휴교 학교가 늘어나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전국을 뒤덮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6월을 넘어 7월까지 이어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당초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했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메르스로 무너진 건 '안전 시스템' 아닌 '신뢰 시스템' 

도대체 우리 사회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놓치고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사회적 안전 시스템의 허점을 질타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은 이번 메르스 전염병의 확산이라는 재난 역시 분명 겉보기엔 사회적 안전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의 접촉이 과도한 우리나라 병동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전염병의 조기 대응 체제의 부실함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틀림없이 고쳐야 할 지점들이긴 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사실 메르스 확산 이전부터, 심지어 십여 년 전의 사스 발생 시에도 존재했던 문제 아닌가? 그런데 왜 이번만 문제가 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안전 문제 뒤에 숨어있는 더 큰 문제, 즉 정부와 시민, 공공과 시민, 더 나아가 시민들 사이에서 '신뢰'라는 보다 근원적인 사회적 토대에 금이 가고 있음을 본다. 그 극단적인 불신이 시민들을 움츠리게 하고 공포를 키우고 있음을 본다.

발생 초기 정부의 정보 은폐와 안이한 대응은 정부와 시민들 사이의 불신을 키워갔고, 그것은 전염병 전파 속도보다 더 빠르게 병원에서, 학교에서, 지역에서 시민들 사이에 의심과 불신의 골을 키웠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처를 입는 시민들이 실제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만큼이나 늘어갔다.

급기야 각 개인들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방어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주말에 나들이와 여행을 하려던 가족들의 희망찬 계획들은 주저앉기 시작했고 문자 그대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각종 모임과 행사들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신뢰의 붕괴가 엄청난 사회적 손실로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도시에서는 관광업계 예약이 60% 이상 취소되었다고 울상이고 곳곳에서 중소상인들이 입은 영업 손실 역시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리고 이는 지표로 확인되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전달보다 무려 6%p나 급락했다.

그나마 일부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책임 있게 수습하려는 노력을 보이면서 일부 시민의 신뢰를 만회해가고 있지만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이 워낙 심각한지라 회복이 만만치 않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전염병 메르스로 구멍 나고 무너진 것은 안전 시스템이 아니라 '신뢰 시스템'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마치 꼭 일 년 전의 세월호 참사처럼. 세월호 참사 직후 청소년들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에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때는 신속하게 정부가 대처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청소년들은 '별로 그렇지 않다'(48%), '전혀 그렇지 않다'(21%)고 응답, 전체의 69%에 해당하는 대다수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헤럴드경제> 2014년 5월 7일자). 당시 청소년들의 예측이 그다지 틀리지 않았음을 이번 메르스 전염병 확산 사태는 현실로 명확히 입증해주었다. 정부에 대한 청소년들의 불신이 굳어지는 순간이다.

21세기 '불신 사회' 진입... 박근혜 정부 들어 더 악화

사단법인 '사회혁신 공간 데어(there)'는 동그라미재단 지원으로 380여 명이 토론을 벌여 사회혁신 키워드들을 뽑았다. 여기에는 개인들 사이의 신뢰관계,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신뢰 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가깝게는 가족 관계로부터 이웃과 마을에서의 관계 형성과 관계의 변화, 나아가 국가와 개인 사이의 관계,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지는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가 예고되는 가운데 얼마나 신뢰 있는 관계로 재정립할 것인가는 우리 사회가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변할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다.

신뢰의 네트워크, 사회적 자본의 연관 개념들
 신뢰의 네트워크, 사회적 자본의 연관 개념들
ⓒ 사회혁신공간 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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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나라의 신뢰 자본은 21세기 들어오면서 이미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사회 통합이 점점 더 약해지는 '불신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인데, 세월호에 이은 메르스 사태로 이제 한국인의 사람들의 '일반 신뢰'는 거의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것으로 보인다.

사회에 존재하는 신뢰의 네트워크를 '사회적 자본'이라고도 하며 최근에는 인적 자본보다 사회적 자본이 한 나라의 건강한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신뢰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소득이다. 수입이 높으면 위험을 감수할 여유가 생기고 그만큼 남을 믿을 여유도 생긴다. 둘째는 개개인이 속한 사회의 수준이다. 단결이 잘된 사회일수록, 단일 민족에 가깝고 언어도 통일되어 있는 사회일수록 신뢰 구축이 용이하다. 셋째, 소득의 고른 분배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많을수록 친밀함이 유지된다. 소득 수준의 격차가 극심하면 신뢰가 잘 생기지 않는다. 마지막 요인은 제도적 구조다.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가이다. 민주적인 국가이고 국민의 요구에 잘 대응하는 편이고, 국민에게 안전을 제공하고 번영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면 국민의 신뢰도는 높아진다." (KBS 사회적 자본 제작팀 <사회적 자본>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대병원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을 방문, 의료진과 통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대병원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을 방문, 의료진과 통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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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세 번째, 네 번째 요인이 결정적으로 악화되고 있고 그 결과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끝을 모르고 잠식당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방역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전염병 대응 초기 매뉴얼을 만든다고 무너진 신뢰가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다.

세월호 이후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고 해서 나아진 것이 없는 것처럼. 그러면 이제라도 무너진 신뢰를 되돌리는 최후의 해법은 있을까? 물론 존재하며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바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신뢰 관계 복원하려면 책임지는 리더가 필요하다

일찍이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933년 3월 4일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대공황을 맞아 공포와 혼란에 빠진 미국 시민들을 상대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어떤 이들은 지금 이 유명한 구절을 다시 들춰내면서 메르스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당시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미국 시민들에게 서로의 강한 믿음, 강한 신뢰를 기반으로 위의 발언을 한 것이다. 당연히 강한 신뢰가 밑받침된다면 남아 있는 유일한 문제는 그의 말대로 두려움 그 자체뿐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다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바로 '불신 그 자체'이다. 서로간의 불신과 특히 공공에 대한 시민들의 극도의 불신을 어떻게 되돌리는가이다.

이를 치유할 해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오직 한 가지, 책임지는 리더이다.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는 바로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신뢰의 관계'를 사회혁신의 가능성을 열어줄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로 고려한 이유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사회혁신공간 데어(There) 이사입니다



태그:#사회혁신 키워드,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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