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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2000년 2월 22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한 뒤, 보수일변도의 언론지형에서 '열린 진보'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여기 <오마이뉴스>와 나이가 같은 닮은꼴이 있습니다.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시작된 학교 개혁 운동은 2009년 혁신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된 뒤,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혁신학교는 무너진 공교육을 되살리는 행복한 학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을 행복한 학교에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이수정양 (매홀고 2학년)이 오산 혁신교육지구 내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얼리버드 프로그램'에 참가해 네일미용수업을 받고 있다.
 이수정양 (매홀고 2학년)이 오산 혁신교육지구 내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얼리버드 프로그램'에 참가해 네일미용수업을 받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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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혁신교육지구 내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얼리버드 프로그램'에 참가해 네일미용수업진행 되고 있다.
 오산 혁신교육지구 내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얼리버드 프로그램'에 참가해 네일미용수업진행 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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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6시 경기도 오산시 세교고등학교의 한 교실.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학생 20여 명이 길게 이어붙인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이들 앞에 놓인 것은 교과서가 아니었다. 매니큐어를 비롯한 네일 미용 세트였다.

매홀고 2학년생 이수정(16)양은 앞에 앉은 짝꿍의 손톱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댔다. 푸셔를 이용해 손톱 뿌리 쪽에 있는 각질층인 큐티클을 손톱 바깥으로 밀어낸 뒤, 큐티클 제거기인 니퍼를 사용해 손톱을 깨끗하게 정돈했다. 네일 폴리시(매니큐어)를 조심스럽게 손톱에 발랐다. 이어 리무버로 손톱을 깨끗하게 만든 뒤, 다시 폴리시를 칠했다. 네일 미용 수업을 진행한 실용전문학교 출신 강사가 "잘하고 있다"며 칭찬했다.

네일 미용 수업은 오산 혁신교육지구 내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얼리버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일반고에서 제 꿈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교수들로 강사진을 꾸려 수업의 질을 높였다. 지난해 관광경영 과정이 처음 생겼고, 올해는 네일 미용을 포함하는 뷰티 과정과 방송예술 과정이 마련됐다. 120여 명의 학생들이 매주 두 차례 수업을 받는다. 주말에도 실습이 잡혀 있다.

수정양은 얼리버드 프로그램을 접한 것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에 사는 수정양은 예전부터 네일 미용에 관심이 많았다. 관련 특성화고에 가고 싶었지만, 문턱이 높았다. 중학교 내신 성적에 맞춰, 버스를 타고 30분 걸리는 오산의 일반고인 매홀고로 진학했다. 학원에 다니려고 했지만, 3개월 과정에 100만 원인 학원비가 큰 부담이었다.

수정양은 일반고에서 하릴없이 국·영·수 교과서를 펼쳐야 했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 학교에 갔다. 수업은 재미없었다"고 말했다. 학교 추천으로 얼리버드 프로그램을 접한 수정양은 "처음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게 재밌다. 지금은 학교에 남아서 꿈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용학원에 다니는 친구에게도 학원에 가지 말고 얼리버드 프로그램을 함께 듣자고 얘기했다"면서 밝게 웃었다.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에 부는 변화의 바람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 오산에서 마을교육공동체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교사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학부모를 비롯한 시민들이 지역 교육 혁신에 힘을 합쳤다. 얼리버드 프로그램은 오산시에서 예산을 지원해 마련된 일이다. '꿈찾기 멘토스쿨' 프로그램에는 지역의 전문가, 대학생, 기업, 공공기관이 함께 했다. 150명의 멘토단이 오산 중·고등학생에게 진로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있다.

오산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임주미(43)씨는 "2012년부터 학교에서 커피와 바리스타에 대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로부터 '진로에 큰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뿌듯함을 느낀다"면서 "제가 나온 학교 후배들이나 내가 살고 있는 오산의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말했다.

운천고 1학년생 도병현(16)군은 지난 3월 한 화장품 회사에서 이른바 향기 디자이너로 불리는 조향사를 만났다. 병현군은 "화학과 향기를 좋아해서 '꿈찾기 멘토스쿨' 프로그램에 지원했다"면서 "진로에 큰 도움이 돼 좋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병현군처럼 꿈찾기 멘토스쿨에 참여한 학생은 모두 8904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산의 교육 여건은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고일석 오산시혁신교육센터장은 "인구 20만 명의 오산은 수원·화성 등 인근 대도시에 비해 생활환경이 좋지 않다. 교장·교사들은 4년 동안 교육철학을 펼치기보다 2년 근무한 뒤 오산을 떠나려고 했다"면서 "교육의 질적인 저하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진학하면, 대도시로의 이주를 고민하는 게 오산 학부모들의 공통적인 고민이었다.

이후 오산시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의 혁신교육지구 사업 공모에 뛰어들었다. 오산시를 비롯해 6곳이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됐다. 올해 사업 마지막 해를 맞는 오산 혁신교육지구는 교육청과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오산시와 교육청이 함께 만든 오산시혁신교육지원센터는 전국 최초로 설립됐다. 오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선 탓이다. 올해 예산 44억4000만 원 중에서 오산시가 30억9400만 원(69.7%)을 낸다. 오산시만의 혁신학교 브랜드인 물향기학교도 선정하고 있다. 2011년 3곳이었던 물향기학교가 올해 28개 학교로 늘었다.

시민들의 참여도 오산 혁신교육지구의 큰 특징이다. 스터디를 꾸려 공부한 뒤 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부모가 316명에 달한다. 학생들이 오산의 17개 주요 시설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인 시민참여학교에서는 학부모 104명이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2만150명의 학생이 시민참여학교를 다녀갔다.

5월 26일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CCTV 통합관제센터 'U-City 센터'에서 운영하는 시민참여학교에 원일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견학을 하고 있다.
▲ U-city센터 견학 중인 초등학생들 5월 26일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CCTV 통합관제센터 'U-City 센터'에서 운영하는 시민참여학교에 원일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견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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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구역인 CCTV 통합관제센터인 'U-City 센터'도 시민참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학생들에게 이곳을 소개한다. 원일초등학교 6학년생 홍예은(12)양은 "수업시간에 책으로 배웠으면 따분했을 텐데, TV에서만 보던 것을 직업 보고 체험할 수 있어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학부모 정미숙(41)씨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면서 "예전에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인근도시로 이사를 가야 하는지 고민했을 테지만, 아이가 이곳에서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만큼 이사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진 학생에게 토론을 가르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날 오산중 위클래스 상담실에는 '두드림 동아리'에 가입한 학생들이 모였다. 건장한 체격의 3학년생 A군은 자신을 "양아치"라고 소개했다. 이 학교에서 주먹을 가장 잘 쓰는 학생이다. 이영환 상담교사는 "A군이 복도에 있으면 다른 학생들은 그 복도를 지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여교사들도 이 학생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고 귀띔했다.

두드림 동아리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3학년 학생들이 가입 대상이다. 이영환 교사는 이러한 위기 학생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두드림 동아리를 만들었다. 학생들과 함께 토론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한다면 변화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지난 2013년 두드림 1기로 활동했던 오산고 2학년생 최웅근(17)군은 "학교에 다니면서 '일진'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이영환 선생님이 토론을 가르쳐주겠다며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했을 때 황당했다"면서 "토론이 싫어 PC방에 갔다. 토론대회에 나가서도 토론 도중에 축구하러 갔다. 우리 때문에 토론대회가 지연됐다"고 전했다.

웅근군은 "하지만 토론대회에 나가서 다른 학교 학생들을 이기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면서 "토론을 하면서 내 생각을 잘 말할 수 있게 됐고, 학교 성적도 크게 올랐다.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환 교사는 "위기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니, 학생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저희들을 혼내기만 하고 우리가 하는 얘기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대들었다'면서 솔직하게 털어놓더라"면서 "위기 학생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상처를 회복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니,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창간 15주년 기획 : 행복한 학교
[①-1 남한산초] "대학 안 가고 하고 싶은 일 하니 행복해요"
[①-2 남한산초] 무허가 사설 강습소, 혁신학교의 시작이었다
[② 선사고] 졸업식장에 조폭이...학교가 '완전' 뒤집어졌다
[③ 조현초] 산만한 학생에게 "약 먹이세요"... 서울과 양평은 달랐다
[④ 부명초] 위장전입까지 하며 기피하던 학교, 그 놀라운 변신
[⑤ 삼각산고] '잡스런 빵' 없앴더니, 학교에 '롯데월드' 생겼다
[⑥ 전북동화중] 욕하며 대들어 뼈가 녹을 정도.. 이런 학교가 변했다, 행복하게




태그:#창간기획 : 행복한 학교, #오산 혁신교육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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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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