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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2일부터 6월 14일의 일본 오사카 여행 기록입니다. 일본의 여행 정보와 여행지에 관한 내력을 알아보고, 올바른 여행 문화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기자말

도리이와 서문 시텐노지로 들어가는 가장 번화한 문이다.
▲ 도리이와 서문 시텐노지로 들어가는 가장 번화한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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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빠듯한 오사카 여행 일정 중 겨우 틈을 내 시텐노지(四天王寺)를 가기로 했다. 오사카는 여러 번 와 봤지만 이 시텐노지는 그동안 묘하게 나와 인연이 없었던 곳이다.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나는 나와 뜻이 맞는 2명과 함께 여행 그룹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우리는 신사이바시(心斎橋)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사천왕사로 향했다.

한 여행 친구가 대뜸 한국말로 '사천왕사'를 가자고 하니 택시 기사 아저씨가 멀뚱멀뚱 쳐다본다. 그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행선지를 말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택시 기사는 내 짧은 일본어를 알아듣고 '시텐노지'로 향했다.

차가 시텐노지를 향해 타니마치스지(谷町筋)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도로 왼쪽으로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 하나가 지나간다. 순간, 그 건물의 회사 이름이 눈에 박히듯이 들어왔다. 곤고구미(金剛組)! 불현듯 시텐노지 건축물들을 유지, 보수하는 가업을 무려 40대 후손이 지금까지 잇고 있다는 회사 이름이 기억 속에서 머리 밖으로 튀어나왔다.

언젠가 일본의 기업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감명 깊게 본 역사 오랜 회사다. 이 회사는 바로 백제계 후손인 유중광이 자신의 일본 성을 따서 세웠다는 곤고구미(金剛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나는 시텐노지를 함께 향하고 있는 여행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방금 전에 지나간 곤고구미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유중광이 578년 설립한 회사입니다. 그러니까 올해로 1400년이 넘는 회사예요. 곤고구미는 사찰과 신사를 새로 짓거나 보수할 때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의 결을 이용해 가공하고 조립한다고 합니다."

시텐노지로 향하는 길

시텐노지 쇼토쿠 태자가 세운 일본 최초의 역사적인 사찰이다.
▲ 시텐노지 쇼토쿠 태자가 세운 일본 최초의 역사적인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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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먼 옛날 파도를 건너 이 머나먼 일본 땅에 사찰을 지은 백제인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의 여행 친구들은 이 역사적 사실들이 그리 놀랍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계속 나만의 고대사 여행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자세히 보니 남문(南門)이 아니고 시텐노지 서쪽의 문인 서문(西門)이었다. 사찰의 창건 과정이나 구조를 생각하면 남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정상이지만, 서문 주변이 교통이 좋고 더 번화해서 지금은 서문이 정문 같이 사용되고 있다.

서문을 향해 걷는데 싱가포르에 산다는 한국인 아가씨가 시텐노지 지하철역 가는 길을 물어온다. 나는 오사카 지도를 함께 보며 서문 앞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후 큰 길을 만나 우회전해서 걸으면 지하철역이 나올 거라고 말해줬다. 

고쥬노토 백제 장인의 기술로 만든 아름다운 오층탑이다.
▲ 고쥬노토 백제 장인의 기술로 만든 아름다운 오층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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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우리나라 삼국 시대와 일본의 고대 문화 속으로 들어갔다. 평지에 세운 사찰의 경내는 시원스러울 정도로 넓었다. 멀리서 봐도 곤도(金堂)를 둘러싼 회랑 너머로 보이는 5층탑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이 목제 5층탑, 고쥬노토(五重塔)는 서기 593년 일본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발원하고 백제에서 장인들을 초청해 건립한 탑이다.

당시 일본의 긴 내전에서 승리한 쇼토쿠 태자는 적군에게 포위됐을 당시 자신을 구해주면 큰 절을 짓겠다고 부처님에게 맹세했고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그는 대사찰 건설에 착수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는 사찰을 세울 장인이 없었고, 결국 쇼토쿠 태자는 백제에 기술자 파견을 요청하게 된다.

백제에서 4명의 장인이 일본으로 파견되고, 그 중 한 사람인 유중광(柳重光)은 쇼토쿠 태자로부터 '곤고(金剛)'라는 성을 하사 받는다. 일본 이름으로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는 오층탑과 함께 당시 일본 최대의 사찰인 사천왕사를 짓게 된다. 고대국가 일본에 백제인이 세운 이 시텐노지는 일본 최초의 사찰이자 현재도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 유산이 돼 있다.

나는 고쥬노토(五重塔) 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탑 위로 올라가려면 신발을 벗어두고 올라가야 한다. 내부에는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는데 경사가 아주 심하다. 탑의 내부는 상당히 좁다. 불교의 다섯 세계인 하늘, 바람, 불, 물, 땅을 상징하는 각 층을 나는 차근차근 올랐다.

진신사리탑 불심이 깊은 고대인들은 부처님 진신사리라고 진심으로 믿었을 것이다.
▲ 진신사리탑 불심이 깊은 고대인들은 부처님 진신사리라고 진심으로 믿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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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마다 금동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불상 주변의 각 면에는 놀랍게도 여러 가족의 위패가 층을 이루며 빽빽이 들어차 있다. 유서 깊은 5층탑이 일반인의 위패 봉안소가 돼 있는 모습은 다소 엉뚱하게 보였다.

고쥬노토의 맨 위층에 올라와 보니 바깥 전망은 잘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 사찰의 부도(浮屠)같이 생긴 석가모니의 황금빛 진신 사리탑이 안치돼 있다. 물론 인도에서 너무나 머나먼 이 시텐노지의 고쥬노토에 진짜 진신사리가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종교에 의지하던 당시의 고대인들은 이 진신사리를 진심으로 대했을 것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닮은 시텐노지의 본존

곤도 기본적인 가람배치가 우리나라 사찰의 배치와 같아서 마음이 포근하다.
▲ 곤도 기본적인 가람배치가 우리나라 사찰의 배치와 같아서 마음이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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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상 쇼토쿠 태자는 전장에서의 약속대로 이곳에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 관세음보살상 쇼토쿠 태자는 전장에서의 약속대로 이곳에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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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탑에서 내려와 시텐노지의 중심인 곤도(金堂) 안으로 들어섰다. 곤도 안에는 부처님이 살아온 생애가 벽면 가득히 장엄하게 그려져 있다. 곤도 중앙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그 주위에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곤도는 분명히 2차대전 공습으로 파괴된 이후 1963년에 재건된 건물이지만, 옛 그대로 복원해선지 건물 내부에는 옛 고대 건축물의 묘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강하게 풍긴다. 사찰의 금당 안에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것도 이색적인 데다 관세음보살의 얼굴에서 풍기는 온화함이 아주 매력적이다.

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과 옷주름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우리나라 국보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관음보살상과 곤도, 그리고 고쥬노토를 보고 있으면 일본의 신사를 볼 때와는 다른 편안함이 느껴진다.

로쿠지도 세계대전 중 미군의 공습을 피한 유일한 목조건물이다.
▲ 로쿠지도 세계대전 중 미군의 공습을 피한 유일한 목조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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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지도와 연못 로쿠지도 앞에는 극락과 연결된다고 믿는 연못이 있다.
▲ 로쿠지도와 연못 로쿠지도 앞에는 극락과 연결된다고 믿는 연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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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의 자라 불자들이 방생한 자라들이 연못 안에 가득하다.
▲ 연못의 자라 불자들이 방생한 자라들이 연못 안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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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시텐노지의 가람 배치도 중문, 탑, 금당, 강당이 남북선상에 이어지고 사방은 회랑을 네모로 빙 두른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이다. 이는 우리나라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定林寺址) 등 백제의 여러 사찰에서 익히 보아왔던 가람배치이다. 나는 마치 옛 역사 속의 백제 땅에 들어온 듯한 묘한 신비로움을 느꼈다.   

목재로 만들어진 시텐노지의 주요 건축물들은 창건 이래 여러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 복원 과정을 되풀이해 왔다. 에도 시대에 재건된 목조 건물 중에는 곤도 뒤편의 로쿠지도(六時堂) 만이 다행히 미군의 공습을 피해서 아직까지 잘 남아 있다.

이시부타이 백제인 미마지는 이 돌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었다.
▲ 이시부타이 백제인 미마지는 이 돌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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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친구와 함께 로쿠지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 로쿠지도 안의 마루 바닥에 앉아 있던 정장 차림의 여러 사람이 일제히 슬픈 눈빛으로 로쿠지도 내부를 둘러보려는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는 로쿠지도 안에는 죽은 이의 위패도 모시고 명복을 비는 죽은 이들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백제인들이 지은 불국토는 현대 일본인들이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비는 사원이 돼 있다. 일본인들은 로쿠지도 남쪽 연못의 돌거북 입에서 솟는 물도 곤도(金堂) 지하의 극락과 이어진 연못에서 솟는 물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이 돌거북의 물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패를 씻으면 극락왕생 한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이 오래된 연못을 들여다 보았다. 연못 안에는 불자들이 방생한 수많은 자라가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이 고대 국가로 발전하면서 최초로 만든 시텐노지는 경건한 사찰이라기보다 기복 신앙의 도량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로쿠지도 거대 기둥의 역사 오랜 나뭇결을 만지다가 로쿠지도 앞에 석재로 만들어진 이시부타이(石舞台)를 만났다. 해마다 4월이면 시텐노지를 창건한 쇼토쿠 태자(聖德太子)를 기리는 쇼료에(聖靈會) 행사가 치러지는 무대다. 이 대형 돌무대 위에서는 불교의 춤과 함께 일본의 아악(雅樂)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시텐노지의 목재 건축물은 불타 없어졌지만, 이시부타이의 돌로 만든 무대는 아직까지 남아 백제의 혼을 전해주고 있다. 백제사람 미마지(味摩之)는 이 돌무대에서 아악을 연주하며 사자춤과 탈춤 공연을 하였다. 그는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에서 전래된 음악에 따라 거문고와 피리를 연주하며 너울너울 춤을 추었을 것이다.

그 옛날, 깊은 바다의 높은 파도를 헤치며 일본까지 왔을 백제인들의 진취성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한반도에 백제의 역사는 미약하게 남아 있지만, 이곳 일본땅에 남은 백제의 영향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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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