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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북향한 지붕들은 돌담위로 목만 빼꼼 내놓았다. 바람 무서워 그러는 거다
▲ 여서도 마을 전경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북향한 지붕들은 돌담위로 목만 빼꼼 내놓았다. 바람 무서워 그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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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를 떠난 지 두 시간, 배는 청산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소모도, 대모도, 장도를 거쳐 온 뒤라 배도,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여서도까지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곁에 섬 하나 없다. 망망대해, 배는 출렁이고 내 배는 울렁거렸다.

울렁대는 속을 달래려 선실에 들어갔다. 왼쪽은 여자석, 오른쪽은 남자석, '까칠하게' 말하면 좌석은 없으니까 여자방, 남자방이다. 누가 뒤섞여 잘까마는 그렇게 구분해 놓았다. TV뉴스의 붉은 자막은 내 눈을 자극하고 쇳소리 나는 앵커소리는 내 귀를 때렸다. 뱃머리 때리는 파도 피해 선실로 왔으나 속이 더 뒤집힐 것 같았다. 참다못해  뱃머리에 올라섰다. 뱃멀미의 역겨움은 참을 만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부리나케 달려야 해 넘기 전에 여서도에 닿을 수 있다. 완도에서 41km, 제주에서 40km, 완도와 제주, 딱 중간에 있는 섬이다. 3시간 뱃길을 포함하여 서울에서 12시간 꼬박 걸린다. 배는 하루에 한번 있다. 그마저 풍랑이 심해 출항 못하는 횟수가 잦다. 무조건 하룻밤 이상 묵어야 한다. 곁에 섬 하나 없고 드나들기 어려운 유배지 같은 외딴섬이다. 제주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도 마땅히 쉴 곳 없어 여기에 머물다 간다나.

섬사람들이나 외지인들의 발이 되고 있는 고마운 섬사랑7호, 이 섬을 드나드는 하나밖에 없는 대중교통이다
▲ 섬사랑7호 섬사람들이나 외지인들의 발이 되고 있는 고마운 섬사랑7호, 이 섬을 드나드는 하나밖에 없는 대중교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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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여서도

요새도 힘들게 드나드는데 예전에는 오죽했을까. '처녀가 이 섬에 들어오면 애를 배서 나온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마을에는 제주처녀가 물질하러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섬 총각과 눈 맞아 여기에 눌러앉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떠돈다. 

여서도는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주요무대로 가상의 섬, 들섬으로 나온다. 주인공, 최해갑(배우 김윤석)은 '국민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가족과 함께 고향이자, 낙원이라 생각했던 '들섬'에 정착하는데 개발에 목숨 건 탐욕적인 정치인에게 이 터마저 빼앗기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생전 그리워하던 '지도에도 없는 섬', '남쪽으로 튄다'는 내용이다.

2011년 폐교된 여서분교는 2013년 개봉된 <남쪽으로 튀어>의 주요무대다. 학교는 마을 맨 꼭대기에 있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여서분교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2011년 폐교된 여서분교는 2013년 개봉된 <남쪽으로 튀어>의 주요무대다. 학교는 마을 맨 꼭대기에 있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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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요배경으로 등장하는 들섬분교는 2011년 폐교된 여서분교다. 교사(校舍) 꼭대기에 '꿈을 키우는 들섬 어린이'라는 문구가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어 여서도를 들섬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 30여 가구, 50여 명이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다. 여러 성씨가 어울려 살다보니 핏줄은 뒷전이요, 이웃 간 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300가구가 살았고 60년대 말에는 180가구에, 분교 학생 수만 180명이었다. 

내가 묵었던 민박집 주인이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마을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들은 건디, 여서 나는 물자(物資)는 고구마와 보리가 전부였다는 디, 이걸로는 두 달도 못 버텼댜. 그라도 섬인지라 바닷고기로 염장질햐서 육지로 나가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것소. 그 당시 지붕은 초가라 육지에서 실코 온 건 지붕 이을 짚과 옷이며 보리, 쌀이었당게. 쌀은 귀하디귀한 거라 이 섬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딸도 쌀 한말을 먹지 못하고 시집갔다 들었소." 

이 섬의 맨 처음 이름은 남을 여(餘)에 쥐서(鼠), 여서(餘鼠)였다. 재미있는 이름이긴 한데 마을이름에 쥐가 붙어 있으니 꽤나 거슬렸을 게다. 조선 고종 대에 이르러 곱고 상서로운 마을, 여서(麗瑞)로 바뀌었다. 마을 돌비석에 유래가 적혀있다. 고려 때 7일간 대지진이 일어나 바다 속에서 거대한 산이 솟아오르자 고려 때 솟아난 상서로운 산이라 하여 여서라 했다나. 돌비석 말마따나 '천지개벽의 전설'을 안고 있는 섬이다. 

돌비석에는 '60년대까지만 해도 갈치, 멸치, 고등어, 도미, 농어, 돌돔이 많이 잡혀 물반, 고기반이란 속성까지도 있었다'는 재미난 말도 있다. 이런 속성(屬性)은 지금도 이어져 낚시꾼들이 모여든다. 이 섬에 하나밖에 없는 대중교통, '섬사랑7호'배에 탄 외지인은 대부분 낚시꾼이고 한두 명은 용케 알고 찾아온 돌담 구경꾼이다. 나는 그 중 하나, 돌담구경꾼.

바람이 만든 돌담의 나라, 여서도

담 구경하러 여기저기 다녀봤으나 여기만큼 높고 깊은 돌담을 구경하지 못했다. 바람이 그렇게 만들었다. 여서도, 바람이 만든 돌담의 나라다. 바람 앞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곡식 모두 마찬가지, 피해야 할 대상이요, 막아야할 대상이다. 왜적이나 해적을 막을 거라면 이토록 야무지게 쌓지도 않았다.

여서도 돌담은 깊다. 바람이 그렇게 만들었다. 여서도는 바람이 만든 돌담의 나라다.
▲ 여서도 돌담 여서도 돌담은 깊다. 바람이 그렇게 만들었다. 여서도는 바람이 만든 돌담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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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도 돌담은 높다. 돌담이 하도 높아 산성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이렇게 쌓았을 리 없고 바람이 우악스럽게 덤빌 때마다 한층 한층 쌓았을 게다
▲ 여서도 돌담 여서도 돌담은 높다. 돌담이 하도 높아 산성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이렇게 쌓았을 리 없고 바람이 우악스럽게 덤빌 때마다 한층 한층 쌓았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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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쌓고 또 쌓은 것이니 수백 년은 족히 되었다. 돌담 쌓는데 천부적 소질을 갖고 있는 마을사람들, 산성 쌓듯 하늘높이 쌓았다. 하도 높아 마당에서는 통 바깥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산성에 총안(銃眼)내듯 돌담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 웬만한 구멍 하나쯤 갖고 있는 게 이 마을 돌담이다.

내일 뱃일 나가는 아버지는 바다가 얼마나 성이 났는지 살피던 구멍이요, 어머니는 물고기 '염장질'해서 육지에 간 장남 무사귀환을 빌며 하염없이 쳐다보던 구멍이고 막내 동생은 돈 벌러 서울 간 언니 목 빠지게 기다리며 내다보던 구멍이다. 모진 바람 몰아치는 날이면 돌담 무너질까봐 바람에게 길을 내주던 그런 구멍이다.

빨랫줄보다 돌담이 더 높다. 구멍이 없으면 바깥을 볼 수 없다. 이 구멍으로 바람을 들이고 바깥을 내다보며 소통한다. 멀리 섬사랑7호가 보인다
▲ 돌담 구멍 빨랫줄보다 돌담이 더 높다. 구멍이 없으면 바깥을 볼 수 없다. 이 구멍으로 바람을 들이고 바깥을 내다보며 소통한다. 멀리 섬사랑7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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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은 온 마을을 휘돌아 마침내 밭으로 이어졌다. 이제 돌담은 집담이 아니라 밭담이다. 땅 한 조각 더 늘리려 밤낮으로 일군 밭이라 모진 정성 다하였다. 마을 밭은 낮에 뱃일하고 밤에 일군 밭이라 하여 '달밭'이라 부른다나. 그래서 그런지 밭모양이 달 분화구 닮았다.

집담 못지않게 밭담도 정성을 다하였다. 움푹 파여 보이는 것은 밭담 때문, 달 분화구 닮았다
▲ 여서도 밭담 집담 못지않게 밭담도 정성을 다하였다. 움푹 파여 보이는 것은 밭담 때문, 달 분화구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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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마을 우물. 모두 세 개의 우물이 있다 들었는데 끝내 한 개는 찾지 못하였다. 마을길은 뱃살 불룩한 소 한 마리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미로처럼 얽혀있어 마을사람들도 정신 안 차리면 길을 잃는다며 농을 던진다. 집과 밭에 모든 땅 내주었으니 그럴 수밖에.

집과 밭에 땅 다 내주고 길에게 야박하게 굴었다. 소 한 마리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복잡하여 마을사람들도 헷갈려한다나
▲ 마을 돌담길 집과 밭에 땅 다 내주고 길에게 야박하게 굴었다. 소 한 마리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복잡하여 마을사람들도 헷갈려한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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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은 동쪽, 서쪽에 사이좋게 하나씩 있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차가워 고단한 섬 생활에 위안이 됨직한데 거기에 7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하니 마을사람들에게는 단순히 먹을 물 이상의 신령스런 귀중한 존재다. 서쪽우물은 후덕한 후박나무 곁에 있어 물맛이 좋고 동쪽우물은 근사한 돌다리가 있어 기품이 있다. 대대로 내려오는 이 마을 농주는 달디 단 이 우물 물맛에서 나온 거라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마을 동쪽 우물가에 근사한 화강암돌다리가 있다. 산에 오를 때 산에서 마을로 들어올 때 이 돌다리를 건넌다.
▲ 마을 돌다리와 돌담 마을 동쪽 우물가에 근사한 화강암돌다리가 있다. 산에 오를 때 산에서 마을로 들어올 때 이 돌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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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신통방통 여서리 마을 우물이다. 물이 달아 소문이 자자한 농주의 끝 맛은 이 물맛에서 나온다며 입을 모은다
▲ 마을 우물 7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신통방통 여서리 마을 우물이다. 물이 달아 소문이 자자한 농주의 끝 맛은 이 물맛에서 나온다며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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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보리로 만든 누룩에 이 우물물맛이 오묘한 농주의 끝 맛을 결정한다면 농주의 첫 맛은 농주를 익히는 숙성기술에 있다. 너무 차가운 데 두면 술이 안 되고 너무 더우면 신맛이 돌기 마련인데 이를 조절하는 것이 이 마을 할머니에서 며느리로, 딸로 전해 내려온 비법 중에 비법이라, 달달하면서 고소하고 걸쭉하여 진한 여서농주 맛은 예서 나온 것이다.

요새는 미역 따느라 손이 부족하여 농주는 엄두도 못 낸다며 농주 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핀잔까지 들었다. 농주는 구경도 못하고 담쟁이와 넝쿨나무가 돌담을 휘감아 '생얼은 보지 못하고 분장한 돌담'만 보고 왔다. 나중에 한 번 더 오라는 얘기로 알고 아쉬움을 달랬다. 언제 다시 갈까, 농주 익어가는 달콤새큼한 냄새가 알려줄 거야...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5/29-30에 청산도 상서마을, 여서도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태그:#여서도, #돌담, #청산면, #남쪽으로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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