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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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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10대 낙원'으로 꼽은 '토레스 델 파이네'가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 3대 트레일 가운데 하나로도 꼽히죠. 또한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여행지였습니다. 이 두 곳이 내가 남미 여행을 떠난 이유였죠. 잊을 수 없는 남미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 말
칼라파테 ⓒ 김동우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을 거쳐 '엘 깔라빠떼'(el Calafate)에 오후 2시쯤 도착했다. 깔라빠떼 버스 터미널 여행자 정보센터 직원은 '후지 여관'(Av. Peron 2082) 위치를 자신있게 지도 위에 그려주었다. 그녀의 환한 표정에 고무돼 한달음에 지도 위에 그려진 장소로 달려갔다. 여행자마다 궁합이 맞는 장소가 있기 마련인데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는 내게 딱 그런 장소였다. 앞뒤로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잠시 뒤 두 다리를 휘청이며 맥이 '탁' 하고 풀렸다. 여행자 정보센터 직원이 가르쳐준 장소는 금시초문, 금시초견, 금시초면이었다. 다시 방향을 잡고 물어물어 바람을 뚫고 언덕을 올랐다. 여행이 너무 쉽게 풀릴 때마다 하늘은 이런 식으로 내게 시련을 안겨 주었다. 어디선가 CCTV로 내 행동거지를 조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후지 여관에 짐을 풀었다. 후지 여관은 일본인 사장님과 한국인 사모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한국·일본 여행자들에겐 무척 유명한 장소다. 두 분은 깔라빠떼에서 초밥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계셨다. 사모님은 반갑게 내 이름을 물었다.

"김동우라고 합니다."
"어머! 동우씨였어요?"
"저를 아세요?!"

'이 상황은 뭐지. 한국을 떠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내 명성이 파타고니아까지 뻗쳤단 말인가? 아니면 내 블로그를 애독하시나? 아버지가 남미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당장 인터넷에 접속해 스포츠신문 '오늘의 운세'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물론 알죠!"
"진짜! 저를 아세요! 어떻게요?"

기분이 좋으면서도 검은 덫의 향기가 풍겼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상황이었다. 탄자니아 모시에 도착했을 때, 내 이름이 써진 피켓을 들고 서 있던 호객꾼을 보는 것 이상으로 얼떨떨했다.

"자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짐부터 푸세요!"
"네~에… 짐이야…."

숙소를 잡고 '마법의 자리'에 앉았다
칼라파테 ⓒ 김동우
짐을 풀고 말로만 듣던 후지 여관 '마법의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파타고니아의 순도 100% 새바람을 즐겼다. 작은 식탁이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빛살까지 날려 버릴 듯한 바람을 감상하기엔 더없이 좋았다.

창밖 맞은편에서 나무 한 그루가 쉴 새 없이 바람에 나부끼며 전경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적잖은 여행자들이 이 자리가 깔라빠떼를 쉽게 떠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그 사이 사모님이 늦은 출근을 한다며 숙소를 나섰다.

배낭 속에 밀폐시켜 놓은 묵은 빨래를 꺼내 개인정비를 했다. 여행 중 갖고 다닌 옷이야 몇 벌 되지 않았지만, 빨래가 밀리면 입었던 옷을 계속 입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삶은 일정한 궤도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합이다. 여행은 옷가지를 챙겨 배낭에 넣고 풀기를 반복하는 좀 다른 일상 속 어디쯤 있었다.

빨래와 샤워를 마치고 커피 한 잔으로 마법의 자리를 다시 즐겼다. 아무도 없는 숙소에서 파타고니아의 바람을 바라봤다. 바다 위에 부표처럼 떠 있는 위태로운 길 위의 여유였다.

'우~웅' 바람이 지붕과 전신주에 걸렸다. 창문이 덜컹거렸고, 마당의 빨래는 허공에 휘날리며 탱고 스텝을 밟아 나갔다. 그 사이 사모님이 일을 마치고 사장님과 함께 돌아오셨다.

"사모님 빨리 이야기해주세요! 절 어떻게 아셨어요?"
"호호호. 그거 별거 아니야.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미사랑 사장님이랑 통화하다가, 동우씨 온다고 매니저 자리 이야기해보라고… 우리 집 매니저가 그만둔다고 해서. 호호호. 여기 좀 있다 가요! 응?"

여행자 숙소를 이용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를 만나게 된다. 격일로 근무하기도 하고, 몰아서 일주일을 일하고 일주일을 쉬기도 한다. 보수가 거의 없고, 보수가 약간 있다고 해도 그리 큰돈도 아니다.

숙식을 제공받고 노동력을 맞바꾸는 형태가 많다. 주로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청소, 예약 관리 등과 여행자에게 여행지 정보 등을 제공한다. 남미를 여행하다 좀 오래 머물고 싶다면 매니저로 몇 달 일하면서 천천히 다음 일정을 잡는 것도 방법이다. 남미 한인 숙소는 언제나 구인난에 시달릴 때가 많으니 자리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압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모레노 빙하
모레노빙하 ⓒ 김동우
빙하계 본좌 '모레노 빙하'를 예방하는 날이었다. 이 빙하는 지구 온난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최대 2m까지 몸집을 키워가는 중이다. 여기다 빙하 위를 걸어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어 나와는 궁합이 잘 맞는 장소였다. '무자격 전문 트레커'를 자처하고 있는 마당에 빙하를 먼발치서 눈으로만 즐기는 건 본분을 망각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다.

트레킹은 보통 긴 거리를 걷는 '빅아이스'와 시간이 짧은 '미니트레킹'으로 나뉜다. 640페소를 내고 미니트레킹으로 코스 결정. 그런데 알고 보니 국립공원 입장료 100페소는 따로내야 한다고. 아놔! 당시 환율로 모두 110달러가 넘는 금액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으로 소고기 수제 햄버거를 만들었다. 소를 닭 잡듯 하는 아르헨티나에선 고기로 만들 수 있는 건 모든 게 저렴했다. 갈비찜, 떡갈비, 양곱창 등 한국에서 제대로 먹으려면 적잖게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요리를 자유자재로 조리해 볼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완성된 수제 햄버거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짐을 챙겼다. 여행자를 태운 버스는 깔라빠떼를 벗어나 숲길을 내달렸다. 멀리 빙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면 위에 유빙이 길게 늘어서 있을 뿐,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유창한 영어로 모레노 빙하를 설명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가이드는 다시 만날 시간을 정하고 자유 시간을 허락했다.

길은 빙하가 희미하게 보이는 옅은 숲길로 이어졌다. 목제로 단장된 길은 길지 않았다. 바로 앞에 빙하가 있었지만, 마음은 그럴수록 더 조급해졌다. 꼭 홍대 클럽에 처음 가던 날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빙하가 제일 잘 보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그리고 모레노 빙하가 내 앞에 어…어…마어마한 덩치를 드러냈다.

"뜨아~악! 크다 정말! 어떻게 저런 색이…."

설산의 희고 고운 흰색과 극명하게 다른 빙하의 영롱한 빛에 눈이 부셨다. 빙하의 위용에 순식간에 압도된 채 벌어진 입이 돌처럼 굳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모레노 빙하는 호들갑을 떨 기회조차 허락지 않았다. 파키스탄에서 본 빙하도 엄청난 충격을 던져 주었지만, 여기에 비하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었다.

빙하는 고고한 몸짓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내 상식을 과자봉지 구기듯 흔적도 없이 공중에 날려버렸다. 머릿속은 상식의 저항으로 복잡 미묘했고, 여차하면 날 '코마'(Coma) 상태로 몰아넣을 것 같았다.

빙하의 터질 듯한 근육 사이로 찬란한 코발트블루 빛이 새어 나왔다. 빙하 한가운데 하늘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빙하는 산을 넘던 공기(수증기)가 얼면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빙하 색이 유독 파란 하늘빛으로 물들어 있는 이유가 설명됐다. '미증유'(未曾有)의 아름다움이었다. 빙하가 몸집을 키우며 작은 낙빙을 만들어 냈다. 머리 위로 아르헨티나 국기가 나부꼈다. 파란 국기가 꼭 빙하 빛 같았다.
모레노빙하 ⓒ 김동우
전망대 주변을 산책하다 도시락을 먹고는 페리 탑승장으로 이동했다. 승객을 태운 페리는 빙수를 헤쳐 반대편 선착장으로 향했다. 페리가 빙하에 가까워지자 승객 모두가 흥분한 채 오른쪽 창문을 바라보기 바빴다. 못해도 10층짜리 빌딩쯤 돼 보이는 빙하의 키가 제대로 실감났다.

빙하는 1981년 개봉한 영화 <슈퍼맨2>에서 슈퍼맨이 연인 로이스를 얼음 요새로 데려가 모든 비밀을 말해주던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슈퍼맨의 요새가 진짜 있다면 아마 모레노 빙하 어디쯤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세월이 녹아있는 물맛, 빙수를 들이켜며
모레노빙하 ⓒ 김동우
모레노빙하 ⓒ 김동우
선착장에 내리자 트레킹 가이드는 '크램폰'(Crampon, 등산화 바닥에 부착해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등산 장비) 착용법과 빙하 위에서 걷는 요령 등을 설명했다. 빙하 트레킹이라고 해서 크램폰 이외 다른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절벽을 오르거나, 크레바스(Crevasse,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를 따라 내려가는 탐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꽁무니를 따라 트레킹이 시작됐다. 크램폰이 빙하에 박히며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냈다. 가이드는 미니 크레바스에서 설명을 이어갔다. 가까이 보니 빙하의 갈라진 틈 안에 마치 푸른 네온사인이 켜져 있는 착각이 들었다.

미니 크레바스를 지나 '절그적, 절그적' 걷다 작은 빙수가 담겨있는 웅덩이를 만났다. 다들 여기서 빙수를 들이켜며 더워진 몸을 식혔다.

"캬~아~ 물맛 한번 좋구나!"

세월이 녹아있는 물맛은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빙수가 내 몸속을 푸른빛으로 물들일 것만 같았다. 우두커니 웅덩이를 쳐다봤다.
모레노 빙하 ⓒ 김동우
가이드는 테이블 주변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테이블 위엔 유리잔이 세팅돼 있고, 아이리시 위스키병이 놓여있었다. 가이드는 한쪽에서 피켈(빙설로 뒤덮인 경사진 곳을 오를 때 사용하는 작은 폴)로 빙하를 쪼아 담은 뒤 테이블 위 유리잔에 아무렇게나 쏟아 부었다. 그리곤 준비된 위스키를 적당량 따랐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는 빙하 조각이 위스키의 뜨거움을 식혀 간다. 위스키가 아지랑이를 만들며 빙하 속에 서서히 녹아든다.

'딸그락. 딸그락.'
모레노빙하 ⓒ 김동우
잔을 빙빙 돌리며 아지랑이의 퍼짐을 재촉해 본다. 여행처럼 늘쩍지근한 알코올의 나른함이 신경을 타고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바람과 함께 파타고니아 지방을 대표하는 건 빙하다. 이 지역엔 5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빙하가 있으며, 그 규모는 전 세계에서 남극, 그린란드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1981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급속히 줄고 있는 지구상의 다른 빙하와 달리 유일하게 팽창 중이라고 한다. 과학자들도 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모레노 빙하는 하루 최대 2m, 1년에 700m씩 몸집을 불리는 중인데, 수년 만에 호수 건너편에 닿을 정도로 커졌다. 이 때문에 모레노 빙하엔 '하얀 거인'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빙하의 붕괴현상을 관찰하기 쉬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레노 빙하는 길이 30km, 폭 5km, 높이 60m에 이른다.

활어회를 향한 집념으로 송어낚시를...
칼라파테 ⓒ 김동우
'활어회'는 세계 일주 중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그런데 어디 활어회 문화가 흔하던가. 회를 맛보려면 직접 고기를 낚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나 일본식 초밥 레스토랑은 있었지만, 활어에 길든 입맛이 생선회에 만족할 턱이 없었다. 활어 한 마리만 있으면 고추장은 간장과 겨자로 대체하고, 소주는 백포도주로 대신해 고향의 성찬을 차릴 수 있었다.

깔라빠떼 여행을 계획하면서 생각해 둔 낚시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후지 여관 게시판에는 월척을 들고 활어회로 저녁을 보낼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는 여행자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 같이 저주받은 혀를 갖고 세계를 돌고 있는 여행자에게 이보다 자극적인 간접광고는 없었다. 이건 쭉쭉 빵빵 모델의 이상야릇한 사진, 아니 야동 보다 격정적인 한 컷이었다.

후지 여관 사장님은 낚시 투어를 운영 중이었는데 깔라빠떼가 송어 낚시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적잖은 돈이 들었지만, 월척 사진을 본 뒤 이미 판단력이 흐려질 때로 흐려진 지 오래였다. 암튼 이번에 소화해야 할 배역은 '강태공'.

후지 여관에 머무는 두 미녀(?)를 반강제로 설득해 송어낚시를 같이하기로 했다. 사실 송어는 이곳 토종 어종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 사람들이 손맛을 보려고 풀어 놓은 송어가 어느새 이곳 대표 어종이 됐다고. 뭐, 이건 지금 따질 게 아니었지만.

송어의 탁월한 맛은 일찍이 잘 알고 있었다. 투어 참가자 3명은 낚시 투어 전날 각자 한 마리씩 잡아 두 마리는 회로, 나머지 한 마리는 매운탕으로 먹자며 전의를 불태웠다. '송어 회를 콩가루에 찍어 먹으면, 으아~'

결전의 날이 밝았다. 후지 여관 사장님은 깔라빠떼 앞 호수 건너편 약간 측면이 낚시 포인트라고 일러주었다. 사장님 차에 장비와 도시락을 태우고 40분을 달렸다. 차 안에서 우린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모두 월척을 낚겠다며 조잘대기 바빴다. 첫 번째 포인트에 도착해 설명을 듣고 낚싯대를 힘껏 던졌다.

"헐~"

바람 때문에 찌가 발 바로 앞에 떨어졌다. 지독한 파타고니아의 바람이 내 몸과 낚싯대를 휘감았다. 사장님은 곧장 포인트 이동을 결정했다.

"걱정하지마! 낚시에 바람이 문제겠어. 포인트만 이동하면 낚싯대를 던지는 족족 팔뚝만 한 송어가 딸려 올라올 거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호숫가를 응시하고 있는 동행을 위해 자신있는 어조로 목소릴 높였다. 경험은 없었지만, 초심자의 행운을 믿었다. 눈이 어두운 송어 한 마리 정도는 당연히 내 낚싯대에 걸려들 거라 확신했다. 내 자발적 호객행위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그녀들을 보고 있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끊어진 낚싯줄... 월척인 줄 알았는데!
칼라파테 ⓒ 김동우
바람의 저항이 덜한 곳에서 다시 낚싯대를 던졌다. 전보다 바람이 약해졌지만 그렇다고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잔잔해야 할 호수는 파도로 넘실댔다. 거친 바람을 안고 낚싯대를 던지길 수차례 다들 배가 고픈 눈치였다.

일단 바람이 없는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송어들도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라도 먼저 배를 채우고 송어의 밥때를 기다리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어째 일은 하나도 안 했는데 먹기부터 하는 게 영 예감이 좋지 못했다. 밥을 먹자 잔잔한 미풍이 불었다. 다들 심기일전. 호수를 향해 찌를 던지고 감기를 반복했다.

"어! 어! 여기요! 사장님!"

미녀 강태공의 찌가 움직이지 않았다. 낚싯대를 건네받은 사장님은 이리저리 낚싯대를 달래며 서서히 줄을 감기 시작했다. '월척이길, 월척이길….'

잠시 뒤 호수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어야 할 송어 대신 말라비틀어진 수초였다. 다들 첫 입질(?)이라 그런지 이 상황을 피식 웃고 넘겼다. 우린 다시 "파이팅!"을 외쳤다.

"어라~ 사장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내 찌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왔구나! 왔어.'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낚싯대가 꿈쩍도 안 한단 말인가. 후지여관 월척 기록을 내가 갈아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낚싯대를 넘겨받은 사장님은 낚싯줄을 끊어 버렸다.

"아놔! 이게 무슨 일이에요? 사장님! 내 월척을 왜…."
"이건 고기가 아니라, 바위에 찌가 걸린 거예요."
"헐~"

사장님은 낚싯대가 바위틈에 걸려 빠지지 않으면 아까운 찌를 그냥 버려야 하니 낚싯줄 감는 속도를 너무 느리게도, 너무 빠르게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염없이 낚싯대를 던졌다, 감았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아무리 해도 송어는커녕 피라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힘이 빠졌다. 보다 못한 사장님은 내게 낚시용 가슴 정화를 입으라고 했다. '허걱!' 물속에 들어가란 뜻이었다.

가만 보니 사장님은 미녀 두 명을 코치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걸 입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가슴 장화를 신는지 입는지… 여기서 그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활어가 눈앞에 있었다. 빙하 녹은 빙수 물에 몸을 담갔다.

"앗! 차가워!"

가슴팍까지 물이 올라오는 호수 안쪽까지 걸어 들어가 더 멀리 더 멀리 낚싯대를 던졌다. '그래 누가 이기나 끝장을 보자!'

가슴 장화를 신고 신내림 받은 듯 호수를 헤집고 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오래 물속에 있었던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아 계속 동분서주하며 월척을 기다렸다. 그런데 하체에 마비증상이… 더 물속에 있다가는 그대로 아랫도리가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아무리 남자들한테 차가운 기운이 좋다고는 하나, 더는 아니 될 말이었다. 들어가서 얼고, 다시 나와서 풀기를 반복해야 하는 험난한 조업이었다.

추위와 바람 앞에 의욕은 점점 사그라져 갔고, 빙수 안에서 도저히 더는 견디지 못할 때쯤 조업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애꿎은 날씨를 탓하며 얄미운 호수를 향해 조약돌을 던졌다. 돌에 맞은 송어가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니까.

'된장! 내 송어! 하늘이시여, 등반자의 지구 한 바퀴를 긍휼히 여기시어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기왕이면 활어로!'

이렇게 트레커의 강태공 역은 어획량 '0'(빵) 마리란 처참한 결과로 막을 내렸다.
칼라파테 ⓒ 김동우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남미여행, #파타고니아, #모레노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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