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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10대 낙원'으로 꼽은 '토레스 델 파이네'가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 3대 트레일 가운데 하나로도 꼽히죠. 또한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여행지였습니다. 이 두 곳이 내가 남미 여행을 떠난 이유였죠. 잊을 수 없는 남미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 말

까사 뻬르라
 까사 뻬르라
ⓒ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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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남자도 모자라 허당까지!

푸에르토 몬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오소르노와 발디비아를 거쳐 남쪽 나라로 내달렸다. 창밖으로 오소르노 화산이 완벽한 좌우 대칭을 뽐내고 있었다.

푸콘 출발 6시간 만에 푸에르토 몬트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터미널에서 한국 여성 여행자 두 명을 만나 '호스페다헤'(Hospedaje : 칠레에는 우리식 민박과 비슷한 숙박 형태가 많다) 숙소 '카사 페르라'(Casa Perla : 주소 Trigal 312)로 향했다.

호스페다헤는 현지 생활 상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숙박 형태지만, 배낭 여행자에겐 이도 비싼 때가 많았다. 카사 페르라 5인실 가격은 8000페소였다. 당시 환율로 거의 20달러라는 얘기였다. 한국 물가와 차이가 없는 칠레 물가는 정말 사악하기 짝이 없었다. 담배 한 갑에 5000원이 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갈 흡연자들이여! 담배는 꼭 아르헨티나에서 사 가길!

"Señora~ Muy Caro! Descuento, Por Favor~(아주머니, 너무 비싸요. 좀 깎아 주세요.)"

한 달 간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서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스페인어로 'I Love You'는 몰라도 이런 현실적 문장은 머릿속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문장이야말로 내 남미 여행의 '필살기' 같은 구절이었다.

하지만 숙소 주인아주머니는 예상했다는 듯 매몰차게 "NO" 한 마디로 내 필살기를 묵사발 내버렸다. 애교 섞인 내 간곡한 청을 단칼에 거절한 아주머니는 미동도 없는 안광으로 내 흔들리는 눈망울을 압박해 왔다.

간사함의 극치를 보여준 이집트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준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럴 때 뻔뻔해져야 한다는 것. 압박이 들어오면 탈압박으로 벗어나야 했다. 여기서 돈을 그냥 달라는 대로 주는 건 내 세계일주 반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여정이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었다.

당당한 표정을 순식간에 거두고 최대한 공손하면서 비굴하지 않은 약자의 미소로 두 손을 모으고 영어의 'Please' 격인 "Por Favor~"를 반복했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아주머니가 피식 웃는 게 아닌가. 연타 공격이 필요한 찬스였다. "Por Favor~ Señora~" 아양을 떠는 어투에 눈웃음을 더해 아주머니의 사리 분별력을 흩트려 놓았다. 거기다 약간의 스킨십까지.

"7000!" 아주머니는 더는 못 깎아 준다는 근엄한 표정으로 마지막 가격을 불렀다. 나도 더는 깎고 싶지 않았다. 아니 여기서 더 깎을 능력이 없었다. 짐을 풀고 곧장 '앙헬모'(Angerlmo) 시장으로 직행했다.

앙헬모시장
 앙헬모시장
ⓒ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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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또
 꾸란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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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칠레 전통요리 '쿠란토'(Curanto)를 먹는 게 정석. 쿠란토는 해물·고기·떡 등을 섞어 만든 칠레식 해물찜 정도 되는 음식이다. 가격은 보통 한 그릇에 4000페소.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호객꾼이 달려들었다. 그는 정보대로 4000페소에 흥정해 왔고, 난 3500페소로 깎았다. 적당한 협상이어서 별 거부감 없이 "OK"를 하려고 했다. 이 정도 수순이면 '윈윈' 아니겠는가.

위장과 대장 기능은 긴 버스 여행 탓에 활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음식이 위장에 들어가 1차 소화되고, 대장 속에서 가스를 만들어 내야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쿠란토를 걸신들린 듯 입 속에 쑤셔 넣고 싶었다.

"3500페소면 적당하네요. 여기서 먹죠?" 같이 시장 구경을 나온 누나들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선뜻 대답이 없었다.

"싫으세요? 배고픈데 빨리 드시죠?"
"아이고~ 이 사람 쉬운 남자였네."
"헐~ 네~엣? 이 무슨..."

내가 누구란 말인가.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중국 차마고도와 실크로드, 그것도 모자라 육로로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넘어 파키스탄을 여행한 사람 아니던가. 그리고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를 홀로 돌아다닌 건 어떻고, 이것뿐이랴 여행중 만난 이집트 사람의 간교한 사기술에 한 번도 덤터기 맞지 않은 철벽 방어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탄자니아에선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쉬운 남자라니! 이런!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성 짙은 이 한마디가 죽창이 돼 가슴 한복판에 박혔다. 내가 A형 같은 B형 남자라는 사실과 그녀들이 입에 가시가 돋친 이들이라는 것을 피차 알아보지 못한 결과였다. 오지 여행 중 모국어로 대화한다는 건 큰 기쁨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한국어를 내뱉는 내 앞에 그녀들이 그리 유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오랜 홀로서기로 얻은 삶의 지혜를 십분 발휘하며 3500페소에서 500페소를 더 깎아 냈다.

'이집트 사람들을 뛰어넘는 슈퍼 울트라 '네고' 고수는 내가 아닌 이들이었단 말인가.'

뿌에르또 몬트
 뿌에르또 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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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에르또몬트
 뿌에르또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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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초절정 네고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호객꾼을 따라나섰다. 조용히 그녀들의 그림자를 쫓았다. 그리고 난 그녀들의 등 뒤에서 500페소 때문에 당한 맛살 비틀어지는 굴욕에 몸서리쳤다. '되~엔~장!' 속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단 그녀들과 맛나게 식사를 하려면 평정심 유지가 먼저였다.

쿠란토는 큰 대접에 해산물과 칠레식 떡이 함께 담겨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푸짐한 쿠란토를 보고 있자, 조금 전 모멸감이 새털처럼 가볍게 사라졌다. 좁은 테이블 한쪽에 연어 튀김 한 접시도 자리를 잡았다. 갓 튀긴 연어는 두껍지 않은 춘추용 옷을 적당히 껴입고 바싹 구워져 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연어 위에 라임즙을 뿌려주니 상큼한 향이 더해지면서 식욕을 용솟음치게 했다.

서둘러 한마디씩 맛을 평가하곤 특별한 이야기 없이 배를 채우는데 열중했다. 해산물의 짭조름한 맛과 식감이 입안에서 '굿거리 장단'을 시작했다. 칠레 해산물 요리는 거부감 없이 혀끝에 착착 감기며 식도락 여행의 진수를 맛보게 했다. 순식간에 테이블 한쪽에 갑각류와 패류 무덤이 만들어지고, 나체가 된 연어는 앙상한 뼈를 드러냈다. 게 눈 감추듯 한 끼 식사를 해치우자 포만감이 차올랐다. 우린 말없이 주섬주섬 돈을 모아 셈을 치렀다.

식욕을 잠재우고 일행들과 수산시장 구경에 나섰다. 누나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면 비유를 맞추는 척 방긋 웃으며 셔터를 눌렀다. 배가 부르자 까칠한 그녀들의 기분도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시장에선 저녁 찬 거리를 사기로 했다. 조금 전 굴욕을 만회할 좋은 기회였다.

"Señora~ Soy Estudiante. Descuento, Por Favor~(아주머니, 저 학생이에요. 좀 깎아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면서 간곡한 스페인어 '뻥'이었다. 쿠란토 네고에서 입은 내상을 보란 듯 치유하고 싶었다. 아프리카 여행이 좋았던 딱 한 가지 이유는 내 나이를 무척 어리게 본다는 사실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선 날 21살(당시 내 나이는 35살이었다)로 본 사람도 있었다. 남미라고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그들 눈에 학생이란 말이 전혀 설득력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은 학생보다는 "저 사표 낸 백수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표정은 최대한 비굴하게, 몸짓은 최대한 의욕 없게, 눈빛은 최대한 애절하게 유지하는 게 포인트였다. 매번 이 전략이 먹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남미 여행에서 유용한 한마디였다. 그런데 가게 아주머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귓구멍을 후벼 파는 한마디가 날 아연 실색하게 만들었다.

"아니, 네고를 한다더니, 고작 그게 다예욧!"

옆에 있던 그들이 비릿한 웃음으로 날 흘겨보며 말했다.

"아... 그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이 한마디가 고막을 뚫고 뒷골까지 파고들어 뇌 깊숙이 박혔다. 저렴한 스페인어를 나불대던 세 치 혀가 그대로 자신감을 잃고 목구멍 속으로 말려들었다.

그녀들 입에선 유창한 스페인어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스페인어를 잘하시면 처음부터 네고를 하시던지"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이미 분위기는 요단강을 넘어간 뒤였다. '터벅터벅' 해산물 봉지를 들고 그녀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쉬운 남자에다 완전히 허당이었네, 그랬어! 그랬네!'

세상의 끝에서 짬뽕을 탐하다!

푼타아레나스
 푼타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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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 몬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푼타아레나스 공항에 안착했다. 일단 여행자 안내 센터를 찾았다. 공항에서 곧바로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거점 도시인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가 있느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라는 기대이하의 답변이 돌아왔다. '없다', '있다'도 아니고 대답이 '모르겠다'였다.

"휴~"

안내센터 직원은 버스 가격도, 택시 가격도 몰랐다. 그냥 택시를 잡아 시내로 가면 된다는 말뿐이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밖에 나가서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심까지 가는 버스가 어떤 거냐고 물어물어 버스에 올랐다.

길은 감상에 젖기 딱 좋은 풍광이었다. 진청색 바다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해 보였고, 낮은 구름과 파란 하늘은 그 쓸쓸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부셨다. 푼타아레나스 콜론 거리 한쪽에 있는 버스회사(Pacheco)로 직행해 일단 오후 6시 버스를 예약했다.

그리곤 '땅끝 라면집'을 찾아 나섰다. 골목을 헤매다 스페인어로 된 광고판 사이에서 빛바랜 '辛라면'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게 손짓하는 게 보였다. 목적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정말 푼타아레나스에 말로만 듣던 라면집이 있었다. 여행 중 이런 순간이 오면 꼭 보물찾기 게임 속에 들어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푼타아레나스 라면집
 푼타아레나스 라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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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면 좀 먹으러 왔어요."

헌걸차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어서 와요!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지금 한국사람 올 시기도 아닌데... 아주 단골 손님처럼 자연스럽게 들어오는데."
"인터넷에서 유명한 곳이던데요."
"사장님 짬뽕라면도 있네요. 진짜 짬뽕은 없겠죠? 암튼 저는 짬뽕 라면요! 배고파요~"

옆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칠레 군인들의 시선이 모두 나한테 꽂혔다. 당연하게도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뽐내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뽀글뽀글 라면이 노란 양은 냄비 안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몸을 풀어냈다.

"파 좀 넣어줄까?"
"파요! 와~ 좋죠!"
"그치, 라면엔 파가 들어가야 해."

사장님이 달걀을 라면 속에 입수시키며 말했다. 잠시 뒤 노란 분화구 안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는 듯한 라면 사발을 받았다. 매콤한 냄새가 코를 뻥 뚫어 주었다.

'후루룩~ 후루룩~' 면발은 그걸로 끝이었다. 사발을 들고 벌건 국물을 '호~ 호~' 불어가며 홀짝홀짝 들이켰다. 따끈한 국물이 식도를 간질이며 지나갔다. 막혔던 속이 칼칼한 라면 국물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타는 듯한 작열감이 식도에서 위로 이어졌다.

"아~ 좋다~ 꺼~억."

설거지를 따로 할 필요도 없이 말끔하게 비워진 사발이 바닥을 보였다.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셔봤지만 더는 먹을 게 없었다. 사발에 묻은 양념 찌꺼기를 핥아 먹고 싶었지만, 칠레 군인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한 그릇 더 하고 싶은 마음이야 '제2 롯데월드' 같았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칠레 땅끝 푼타아레나스에서 짬뽕라면이라... 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가. 라면 가게 벽은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의 이름 석 자로 빼곡했다. 휘갈겨 쓴 필체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라면집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펜을 들고 남겨진 공간을 찾았다. 천장 구석 한쪽에 내 악필을 남겼다.

'산 사나이 김동우 라면 먹고 감!'

라면을 먹곤 푼타아레나스 중심부에 있는 마젤란 동상 앞에 섰다. 남미 땅끝 해협을 발견한 마젤란이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세계 일주자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목숨을 내건 그의 모험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묘한 동질감과 아련함이 전해졌다. 또 한편으론 그가 원주민들에게 행한 악행을 생각했다.

푼타아레나스
 푼타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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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아레나스
 푼타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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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 동상
 마젤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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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 동상의 구두한 쪽이 자체 발광하는 것처럼 반짝였다. 이 발을 만진 사람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

마젤란이 손짓하는 해변을 향해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자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스산했고, 같은 하늘, 같은 땅, 같은 바람이었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애처롭게 다가왔다. 해지고 깨진 채 어깨를 맞댄 집들은 시간의 무게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햇살이 골목 안을 언뜻 비추고 있는 모습에선 과거 영화가 떠올랐다. 두리번거리는 여행자의 긴 그림자가 골목 안을 채웠다.

푼타아레나스
 푼타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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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아레나스
 푼타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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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남미여행
 세계일주 남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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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림자 끝에서 서걱거리는 바다가 펼쳐졌다. 심상치 않은 바람이 해협 위를 날고 있었다. 모자가 벗겨질 것 같은 바람에 온몸을 맡겼다. 바람이 뱀처럼 몸을 휘감으며 지나갔다. 눈앞에 하얀 포말이 높은 파도를 타고 떠밀려 내려오는 요동치는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 너머 아득한 곳에 남극이 있었다.

깨알 정보
매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1월 사이 푼타아레나스에선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 4,897m) 등반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트레커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남극 최고봉 등정을 위해선 푼타아레나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패트리어트 힐(Patriot Hill) 남극 기지로 간 후, 다시 빈슨 매시프 베이스캠프까지 항공편으로 이동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등정에 필요한 일정은 일주일 정도지만, 한국에서 출발해 귀국하기까지 한 달 정도가 걸리는 먼 길이다. 날씨에 따라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일이 많아 넉넉하게 예비 일을 포함한다.

특히 길이 50km, 폭 15km에 달하는 거대한 빈슨 매시프 등정에는 4000만 원(항공편, 숙식, 장비, 가이드 포함) 이상이 든다.

한국에선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이 한국 남극관측 탐험대를 파견해 허욱, 이찬영, 허정식 대원이 1985년 11월 29일, 세계에서 6번째로 등정에 성공한 바 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남미여행, #칠레여행, #푼타아레나스, #남미의 땅끝,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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