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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출구벽에 붙은 공지 밑에는, 아랑곳없다는 듯 담배꽁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런 것들이 과연 의미 있는 캠페인과 계도일까.
▲ 쓸쓸하게 붙어 있는 무단투기 공지. 지하철 출구벽에 붙은 공지 밑에는, 아랑곳없다는 듯 담배꽁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런 것들이 과연 의미 있는 캠페인과 계도일까.
ⓒ 임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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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국민건강증진법에 의해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음식점, 카페 등은 물론이고 PC방 등 밀폐된 실내에서 담배연기에 노출될 수 있는 대부분의 실내공간이 금연공간으로 지정된 것이다.

이에 갈 곳을 잃은 흡연자들은, 밖으로 나와 야외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기침을 하고 눈살을 찌푸려도 그들은 오히려 본인들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댄다. 흡연자들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흡연공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도 과거에 흡연자였기에, 흡연자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가뜩이나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몸 상하는 것 알면서도 피우는 담배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까지 받아야 하니 참으로 서럽다.

탁 트인 곳에서 여유있게 한 대 피우며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데, 눈치가 보여 퀴퀴한 구석에 숨어 덩치 큰 남자들끼리 부대끼며 피우자니 이건 뭐 피우는 재미도 없다. 길거리를 걷다 담배 연기가 신경 쓰여도, 나도 겪었었던 과거의 고충을 생각하며 그냥 참고 지나가곤 했었다.

길거리 흡연자들, 예비 아빠가 되니 달리 보이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임신부인 아내를 두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나야 담배연기를 참을 수 있다 쳐도, 혹여나 담배연기가 아내와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까 몹시 걱정이 되었다.

흡연이 산모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잘 알려져 있다. 메타분석(여러 연구를 통합하여 분석하는 연구)에서 흡연하는 여성의 불임률이 비흡연자에 비해 1.6배 높았으며, 흡연자인 산모가 저체중아를 낳을 확률이 3.5배까지 더 높다는 보고가 있었다(유산, 사산, 조산율도 전반적으로 높았다).

최근에는 간접흡연(Secondhand smoke)이 임신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는데, 2011년에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간접흡연이 산모의 사산율을 1.23배 높이고, 기형아 출산률이 1.13배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특별시 금연스티커 앞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담배꽁초. 스티커 한 장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걸까.
▲ 안타까운 '스티커 행정' 서울특별시 금연스티커 앞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담배꽁초. 스티커 한 장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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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아내는 모두 직장인이며, 출퇴근시 동네 주변의 지하철역, 공원 그리고 식당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는데 이 모든 곳 중 담배연기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한 곳도 없다. 특히 필자가 사는 동네는 신혼부부가 많아, 행인 중에서 임산부와 어린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에 필자는 구청에 지하철역 입구와 흡연이 잦은 골목에 대해 흡연부스 설치와 단속 등을 요청하였는데, 그들의 답변은 씁쓸했다.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것은 위치 및 통풍 등으로 인해 찬반논란이 많고,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 등 안전문제 등이 있고... 지하철 출구, 인도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실효성 확보가 어렵고... 우리 구는 금연구역 지정 및 단속 등에 더불어 캠페인, 홈페이지 홍보, 금연클리닉 운영 등을 하고 있습니다... 양해 바라고 앞으로도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극존칭 경어체의 장문으로 쓰여진 답변에는, 요약하면 '그냥 아무것도 못해주니 참아라' 는 내용만이 들어있었다. 이에 필자는 다시 한 번 민원을 제기했다.

'앞으로도 조언을 부탁하신다 해서 외람되지만 한 말씀 더 올립니다... 담배꽁초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과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것 중 어느 쪽이 화재의 위험이 높을까요... 야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환기시설을 갖춘 부스 안에서 피우는 것 중 어느 쪽이 통풍에 문제가 덜할까요... 캠페인과 계도를 하신다는데 무엇을 하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실질적으로 임산부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듣고 싶습니다...'

보통 구청 민원은 하루, 늦어도 이틀이면 답변이 달리는데 이 민원은 5일이 지나서야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당황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장문의 답변에는, '지하철 출구에 계도형 스티커를 붙이고 xx길을 담배꽁초 무단투기 상습지역으로 선정하여 단속반 운영시 추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단속하겠다'는 내용이 있었고, 민원의 내용은 비공개로 바뀌어져 있었다.

최근 민원에 제기한 곳을 방문해 보니, 새 것으로 보이는 금연 스티커들이 몇 군데 붙어있었다. 그러나 그뿐, 흡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고 담배꽁초들은 군데군데 수북했다. 금연표지가 붙은 지하철 출구 옆에 재떨이로 쓰이는 휴지통이 있었는데, 스티커를 붙이던 관청 직원들은 과연 그 스티커가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스티커 행정'보다 실용적인 정책 있어야

금연구역 스티커가 붙어있는 지하철 출구에, 재떨이 용도의  휴지통이 놓여 있다.
▲ 금연구역 앞의 꽁초통 금연구역 스티커가 붙어있는 지하철 출구에, 재떨이 용도의 휴지통이 놓여 있다.
ⓒ 임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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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2001년, 길거리에서 행인이 피우던 담배 불똥에 한 어린이가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후 길거리 흡연이 금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9월, 담배꽁초가 유모차에 떨어져 12개월 아기가 화상을 입는 일이 일어났다. 소를 몇 마리나 잃어야 외양간을 고칠 것인가. 이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보여주기 식의 스티커 행정'이 아닌, 진정 의미있는 정책을 만들어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흡연자들을 '악의 축'으로 만들어 쫓아내는 식의 행정은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또한 말하고 싶다. 담배는 폐암 발병율을 20배나 높이고, 구강암, 위암, 유방암 등 거의 모든 암의 발병율을 증가시키며 호흡기 질환, 심혈관계 질환을 야기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보건적 관점에서 보면, 담배는 사실 정부적 개입으로 진작에 국민건강을 위해 차단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했고, 중독성이 마약만큼 강한 담배는 이미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졌고 세금 수입, 관련 산업 등 경제적인 문제와도 연결이 되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되었다. 흡연자들도 이런 일련의 과정에 얽힌, 희생자이다.

타의에 의해 자신의 습관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실적인 보건증진 및 혐연권 보호를 위해서, 금연 공간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흡연자들이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실적이고, 무엇보다 민첩한 정부 및 지자체 등의 노력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금연, #흡연, #임산부, #어린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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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고통을 수용하지만, 문제는 외면하면 더 커져서 우리를 덮친다. 길거리흡연은 언제쯤 사라질까? 죄의식이 없는 잘못이 가장 큰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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