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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잡을 수 없는 빅북구연팀의 열정인가요?
▲ 호랑이가 점점 목소리가 커졌어요~ 겉잡을 수 없는 빅북구연팀의 열정인가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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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일 계속입니다.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도 '메르스'의 영향인지 뜸하고, 늘 찾아오는 사람들은 잠시 책만 읽다 돌아갑니다. 이러다간 도서관도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닌지 괜히 걱정이 밀려옵니다. 잠잠하던 울산도 요즘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시끄럽고, 저희 도서관이 속한 건물이 공공기관이다 보니 여기 저기 '메리스' 예방한다고 바쁜 날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주위를 더욱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하고, 책 서가마다 아침마다 걸레질하면서 소독도 열심히 하게 됩니다. 평소에도 나름 깨끗하게 한다고 노력은 하지만 새삼 앞으로는 더 신경을 각별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나른한 오후입니다.

"샘~와이리 조용함니꺼~"
"그러게요~부쩍 이번 주는 조용하네요~찾아오는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도서관 환경에 신경을 쪼매 더 써야겠네요~그쵸~"
"얼른 잠잠해지고, 예전대로 활기찬 도서관으로 돌아갔으믄 좋겠네요~"

청소를 마치고, 도서관 문 열기 전에 도서관 샘들과 앉아 차를 마시며 한마디씩 주고받았습니다. 얼마 후,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작년에 한번 <빅북공연>을 요청해 한 적이 있는 동구의 한 교회였습니다. 다문화여성들이 많이 찾아오는 교회라 다문화가족을 위한 작은 행사를 하나 하고 싶은데, 가능할지를 물었습니다. 저 혼자만이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의논한 후에 다시 연락을 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샘들~작년에 갔었던 ○○교회에서 빅북공연 요청이 있는데~우짤란교~"
"아~그래요~그때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다문화가족을 위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샘들끼리 의논하고 연락주이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다음달이나 여름방학 때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때까지 일정이 안 나와서 그러니 굳이 빠른 시일 내에 해주길 바랬습니다. 다행이 빅북구연팀의 일정과 그쪽에서 요청한 일정이 순조롭게 연결이 되었고, 모처럼 한산하던 빅북공연으로 도서관은 바빠졌습니다. 한동안 좀 조용히 지낼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그건 생각뿐이었나 싶습니다.

드디어 공연하는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큰 책과 대본을 챙기고, 앰프,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제책갈피까지 든든하게 챙겨 공연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엄마들이 더 좋아합니다~~
▲ 빅북공연이 한창입니다~ 엄마들이 더 좋아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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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와 이리 떨리노~샘은 안 그래요?"
"갑자기 잡힌 것이라 쪼매 당황되고, 걱정되고, 떨리기까지 하네요~"
"은희샘은 요 며칠 공연을 안 가서 더 긴장될낀데~"
"다른 날보다 쫌 떨리기도 하네요~평소 하든대로 하믄 되겠죠~"
"은희샘이 호랑이 할끼고, 내가 해설 하믄 될란가요~"
"아이고, 샘은 은근슬쩍 또 다른 배역 할라꼬 넘보네~히히"
"가만 보니 은희샘 목소리가 좀 그렇네~아픈건 아이제~"

빅북구연팀 중 한 분이 사정이 있어 당분간 빠지게 되어 기약 없이 제가 대타로 해야 할 상황입니다. 늘 그랬듯이 해설이나 간단한 대사가 몇 개뿐인 배역이 주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내 목소리로 한껏 이야기를 꾸며갈 수 있다는 것에 힘을 얻습니다.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여서 그런지 찾아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안 걸렸습니다. 교회 안이라 다소 다른 곳보다 좀 긴장되는 것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문화가족들인 엄마와 아이들 외에 자원봉사 하러 나온 분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와아~내는 이런 큰 책 처음 본데이~이래 커나~"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책이 아닐까 싶네요~우리도서관만의 자랑이기도 하구요~"
"그럴 만도 하겠심더. 아~들이 참으로 좋아하겠는데요~"
"그렇지예~아~들도 좋아하고, 엄마들, 어른들이 더 좋아함니더~"

가지고 간 큰 책을 준비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엄마들과 아이들이 모여 앉길 기다렸습니다. 한번도 긴장된다거나 초조해 본적이 없는데, 유달리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올망졸망 아이들이 책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르고, 분위기를 한껏 올렸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구연을 시작하였지요.

작년보다 더 많은 아이들의 호응이 있었고, 그 뒤편에 서서 가만히 듣던 자원봉사 아주머니들은 환호성까지 질렀습니다. 이쯤 되자, 긴장했던 마음은 오간데 없고,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공연이 무르익을 즈음 난데없이 호랑이가 우렁차게 대사를 하다가 그만 '큭큭' 목소리가 잠겨버렸습니다. 호응이 좋다고 신이 나서 그만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려다가 일을 내고 말았지요. 순간, 당황한 저와 구연샘들은 얼른 사인을 주고받으며 효정샘이 호랑이대사를 넘겨받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공연은 끝나고, 목이 잠겨버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은희샘은 공연이 끝난 다음에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이 쉬어버린 호랑이~~어찌해야 하나요~~
▲ 이 대목에서 그만 '큭큭' 목이 쉬어버린 호랑이~~어찌해야 하나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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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직 그때의 아찔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의 빅북공연이 있은 후, 은희샘이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그날 이후, 집에서도 멍하니 한동안 자신을 탓하며 보냈다고,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있냐고, 그동안 도서관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자책까지 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 주고, 더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하며 돌려보냈습니다. 목이 쉬었지만 호랑이 역할에 충실했던 은희샘을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냥 한번 웃으며 지나가는 거지요.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도서관답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책도 많아야 하고, 책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은 공연으로 더 많은 지역 아이들이 행복해 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자주 있었으면 합니다. 도서관을 찾아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이 함께 나서서 그들에게 더 소중한 가치를 안겨줄 수 있는 그런 도서관이 되길 바래봅니다.


태그:#빅북구연, #꽃바위작은도서관, #동아리, #도서관활동, #동화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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