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일 공개한 '메르스 포털'.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일 공개한 '메르스 포털'.
ⓒ 보건복지부

관련사진보기


감염병 위기 대응에서 국민에게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메르스 확산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부의 자세는 최초 확진 환자 발견 23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그 단적인 예가 정부가 메르스에 관한 모든 것을 국민에게 알릴 목적으로 지난 10일 개설한 메르스 포털에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다(관련기사: 정부와 서울의 '메르스 상황판' 다르네).

환자 발생 병원 등 정확한 메르스 정보를 국민에게 알려주지 않고 초동대응에 실패한 정부는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줄기차게 받고서야 뒤늦게 10일 오전 9시 메르스 전용 포털을 만들어 국민에게 공개했다. 여기에는 메르스 환자와 격리자 현황, 세계 메르스 환자 및 사망자 발생 현황, 메르스 대처예방법, 환자 발생 병원, 의료인 주의사항, 격리자 주의사항 등이 있다.

격리자 수, 보여주기 싫어서 뺐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초기 화면 팝업창의 메르스 현황부터 각종 주의사항과 문답 내용이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으로 돼 있어 국민 불신을 오히려 증폭하고 있다. 메르스 전용 포털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개설 직후부터 일부 언론이 했지만 사흘이 되도록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먼저 첫 화면의 팝업창은 메르스 현황을 그래픽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환자 발생 수와 사망자 수, 퇴원환자 수, 격리해제자 수 등은 소개하고 있으나 가장 숫자가 많은 격리자 수(3680명)는 아예 빠져 있다. 12일 현재 3천 명이 넘는 격리자수 규모를 방역당국이 눈에 띄게 보여주기 싫어서 일부러 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메르스 관련 일문일답에서는 틀에 박힌, 너무 고지식한 답변을 하고 있어 예외적인 사례가 발생할 때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예를 들면 '메르스 바이러스는 언제부터 몸에서 배출되나요?'란 질문에 "잠복기 동안(2~14일)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다"며 "메르스의 전파는 환자와 같은 공간에 동시에 머물면서 밀접한 접촉이 있었던 경우에 제한적으로 발생합니다. 환자가 이미 거쳐 간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메르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런 답변은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서 대규모로 환자가 발생한 것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또 "환자가 이미 거쳐 간 병원은 설혹 그 직후에 다른 사람들이 방문한다 하더라도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고 하지만 그 병원을 완전소독하거나 환자가 머물렀던 공간과 사무실을 소독하는 모습을 방송 화면으로 본 시민들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소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이 제로면 소독을 아예 하지 말든지. 아니면 답변에서 감염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소통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감염 경로가 알고 싶다

경남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양성 판정 환자가 나온 가운데, 이 환자가 입원해 있었던 창원SK병원은 임시 휴업에 들어갔고, 병원 앞에 경찰차량이 배치되어 있다.
 경남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양성 판정 환자가 나온 가운데, 이 환자가 입원해 있었던 창원SK병원은 임시 휴업에 들어갔고, 병원 앞에 경찰차량이 배치되어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메르스 감염경로도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닌 중동(사우디아라비아)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현재까지 명확한 감염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모든 환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중동지역과 연관(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이 있으며 해외여행이나 해외근무 등으로 중동지역에서 체류하였거나, 낙타시장 또는 농장 방문, 낙타 체험 프로그램 참여 등 낙타와의 접촉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본 시민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 분명하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장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어떻게 전파되고 있고 어떤 경우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지, 이를 피할 수 있는 요령이나 대책이다. 중동 낙타 운운은 대다수 국민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런 메르스 정보를 본 국민은 답답하고 분노를 느낄 게 분명하다.

격리자와 관련한 내용도 문제가 있었다. 자택 격리자들에 대해서는 '공공장소나 외출을 자제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격리자의 집을 '친지들이 불필요하게 방문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안내할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해야 한다. 자제가 아니라 엄격한 금지란 단어를 쓰는 것이 좋다. '불필요한 친지의 방문'처럼 애매모호(필요한 경우는 친지가 방문해도 된다는 뜻인지, 어떤 경우가 필요한 경우인지)하게 말하지 말고 이 기간에 외부인의 출입은 아예 금지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

의료인 주의사항을 보면 이 포털을 만들 때 작성자나 관계자들이 한 번이라도 그 내용을 읽어봤는지 의심이 간다. "65세 이상, 어린이, 임신부, 암투병자 등 면역 저하자나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과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중동 지역 여행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농장 및 동물과의 접촉(특히 낙타) 삼가시기 바랍니다" 등 의료인 주의사항이 아니라 중동 여행객들에 대한 주의사항으로 채워져 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안내, 한두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도 손 놓아

메르스 환자 사례 정의도 우리나라와 무관한 아랍국가 이야기를 잔뜩 하고 있다. 의사나 한의사, 환자, 의료기관에게 의심환자를 신고하도록 안내하면서 "발열과 동반되는 폐렴 또는 급성호흡기증후군(임상적 또는 방사선학적 진단)이 있으면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 14일 이내에 중동지역을 방문한 자 또는 중동지역을 방문한 후 14일 이내에 발열과 급성호흡기 증상이 나타난 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자"로 환자 사례를 정의해 놓았다. 한마디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안내 정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기관 메르스 대상자 조회시스템 안내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안전서비스(DUR) 시스템을 즉각 도입·운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메르스 포털에서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여기에는 여전히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진자 자격조회 시스템이 올라와 있다.

메르스 종합정보망 늑장 개설이란 비판을 받은 것도 모자라 그 내용도 부실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가득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메르스 핫라인 번호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에 따라 뒤늦게 109번으로 바꾸었다.

이런 것을 종합해보면 메르스 초기대응뿐만 아니라 후속대응도 엉망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메르스 포털에 정확한 내용을 올리는 것은 누군가가 한두 시간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 이런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 당국에 신뢰를 보낼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메르스, #메르스포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