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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모습.
 동아투위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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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10시 6분 서울중앙지방법원 457호 법정, 백발이 성성한 다섯 노인이 귀를 쫑긋 세운 채 법대를 바라봤다. 곧이어 재판장 이은희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가 주문을 읽기 시작했다.

"원고 장윤환, 박종만, 윤활식, 이기종과 안종필·홍종민으로부터 상속 받은 원고들의 일실수입(일을 하지 못해 잃은 수입) 및 고유 위자료 청구부분을 각하한다. 다른 원고들의 청구와 장윤환 등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판결 선고를 듣고 법정을 나온 5명은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항소 안 하겠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40년 전 언론자유를 외치다 해고당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아래 동아투위)' 사람들이었다.

퇴보 또 퇴보... 유신독재에 또 다시 면죄부

유신시절 정부의 보도통제를 거부하다 1975년 대량 해직당한 동아투위 사람들은 1978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주년 기념식에서 그동안 언론이 보도 못한 사건 등을 정리한 유인물을 배포했다. 당시 경찰은 이 유인물에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내용이 담겼다며 김종철, 성유보, 안종필, 윤활식, 박종만 등 10명을 줄줄이 영장도 없이 연행, 구속했다.

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될 때까지 모두 1년 안팎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이들은 2013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긴급조치 발동 자체가 불법인데다,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자신들을 체포, 구금한 일 등도 위법이므로 국가는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9일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장윤환·박종만·윤활식·이기종씨와 고 안종필·홍종민씨의 유족의 경우 이미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심의위원회에서 생활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피고 대한민국'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하므로 일실수입과 위자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법하다는 얘기였다.

☞ 배상-보상 구분 못한 대법원... "민주화보상법 문제없다" 기습 판결

재판부는 다만 다른 원고들의 청구는 그 내용을 살펴볼 때 인정할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미 대법원에서 긴급조치를 두고 '당시에 합법이었다'며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 2014년 10월 대법원은 유신시절 긴급조치 9호대로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해 수사한 수사기관이나 그에 따라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고, ▲ 지난 3월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국민 개개인에게 피해를 보상해야 할 책임은 없다고 선언했다. 국가의 과거사 배상 책임을 크게 덜어주는 판결이었다.

☞ "후배 법관들의 뒤통수를..." 되살아난 '긴급조치 9호' 논란
☞ 과거사 피해자들, 헌재에선 웃고 대법원에선 울고

"사법부를 사법부라 부를 수 없을 정도"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완패'라는 결과를 예상이라도 한 듯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결과가) 많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헌법 체계를 부정하는 판결"이라며 "요즘 다 그렇긴 하지만 혹시나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법관이 있는가 확인하러 왔는데, 결국 없더라"고 말했다.

동아투위로서는 연이은 패소에 더욱 우울할 따름이다. 이들은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을 바탕으로 제기한 국가배상금 소송에서 대부분 패소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일부 원고는 승소 취지로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내긴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5월 29일 진실·화해위 결정 취소판결이 확정지으면서 동아투위 사람들이 언론 탄압을 이유로 국가에 배상금을 청구할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 '동아투위' 사람들, 40년 만에 국가배상금 받을까
☞ 또 다시 국가에 '면죄부' 준 대법원

그럼에도 항소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려있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 긴급조치 사건 등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가면 전부 패소"라며 "지금 (사법부가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유신헌법 자체가 위헌이라고 이미 나왔는데 대한민국 사법부는 적어도 박정희 정부 과거사 문제에선 사법부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태그:#동아투위,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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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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