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등장하기 전, 요식업계에서 성공한 CEO로 이름을 알린 백종원. 배우 소유진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이끌던 때만 해도 그가 셰프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줄은 몰랐다. 그러던 그가 <한식 대첩>을 거쳐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이 시대의 중심인물로 등장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을 화제로 이끈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고급진 레시피이다. 계란 노른자로 만들어야 하는 정통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로 뚝딱 만들어 내고, 흰 콩을 불려 삶아 곱게 갈아야 만들 수 있었던 콩국물을 두부 한 모로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내는 그의 '고급지지 않은' 레시피는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백종원은 오랜 세월 연구하며 만들어 낸 레시피를 통해 그저 가게를 여럿 연 CEO가 아니라, 내공 있는 셰프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백선생이 가르치면 '집밥'도 다르다?

 <집밥 백선생>의 포스터

<집밥 백선생>의 포스터 ⓒ tvN


그러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찾아왔다. 이름하여 <집밥 백선생>. 요리의 'ㅇ'자도 모르는 네 명의 남자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요리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많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언제나 요리사의 내공 있는 실력자랑의 장이었다. 그래서 TV에 등장했던 음식을 집에서 막상 해보려고 하면 재료에서부터 시작하여 만만치 않은 과정상의 장애에 부딪히곤 했다.

이 때문에 집밥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집밥 백선생>도 뭐 그리 다르겠냐 싶었다. 그런데 달랐다. 놀라운 것은 요리 교습의 시작이 '상상하라!'라는 점이었다. 실력 있는 셰프가 주방에 서서 후다닥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옆에 세워놓고 상상하라니. 순간 어느 고승의 선문답을 보는 듯했다. 

일상을 소개한 첫 회를 지나, 드디어 주방에 입성한 윤상과 김구라, 박정철, 손호준. 요리라고는 해보지 않은 이들을 데리고 요리를 시작한 백선생. 그가 첫 번째로 선택한 요리는 김치전이었다. 

요리를 상상하라!

요리를 좀 해본 사람이야 김치를 숭숭 썰고 밀가루를 적당히 풀어 김치전을 뚝딱 부쳐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방에 처음 선 네 남자에게 김치 한 포기를 전해주고 전을 만들라니. 이들은 '멘붕'에 빠진다. 그때 백선생은 말한다. 당신들이 만들고 싶은 김치전을 상상해 보라고.

그것은 단지 첫 요리뿐만이 아니었다. 4회 '따뜻한 밥에 반찬 하나'에서 밑반찬 재료를 사 온 제자들에게 그는 다시 한 번 상상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리를 세 번 만들어진다"고 덧붙인다. 첫 번째는 머릿속으로 만드는 요리다. 자신이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요리 과정을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상상하는 요리는 실패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요리를 기반으로 재료를 준비하라고 한다. 머릿속으로 만들어보고, 그에 따라 재료를 준비하고, 그다음에 진짜 요리를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다.

흔히 요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김치를 얼마나 썰어야 할지, 밀가루는 어떻게 섞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백선생은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해결 방법으로 상상을 제시한다. 자신이 먹어본 김치전을 떠올려보고 거기에 맞춰 요리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 덕분에 초짜 요리사들은 두려움 없이 김치전을 만들 수 있었다. 

4회에는 조금 더 어려워진다. 각자 만들고자 하는 요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백선생은 가지무침, 감자조림, 달걀 장조림, 새우 볶음을 상상하라고 주문한다. 상상에 들어간 제자들은 막히는 것을 질문하고 백선생은 적절한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집밥 백선생' 백종원, 어떤 요리도 뚝딱! 12일 오후 서울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집밥 백선생> 제작발표회에서 셰프 백종원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집밥 백선생>은 인스턴트 식품, 집 밖에서 사먹는 음식에 지친 요리 초보 남성 연예인들이 백주부 집밥 스쿨 에 들어가 1인분 요리를 넘어 한상차림까지 한식, 중식, 양식, 디저트에 이르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요리인간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19일 화요일 밤 9시 40분 첫방송.

지난 12일 열린 <집밥 백선생>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백종원 ⓒ 이정민


상상을 접목한 결과, 네 제자는 요리 과정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궁금한 점을 모두 해결하고, 다시 재료를 준비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하고 나니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이는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제자 네 명과 함께 장을 보고, 그들과 만들 요리를 생각해보고, 재료를 준비해보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비록 눈으로나마 '진짜' 요리를 배우게 된다. 백선생의 교육 과정은 배우는 사람이 주체이다.

어려운 계량 용어 대신 종이컵으로 양을 잡고,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허브 대신 파를 길게 썰어 허브인 척 사용하는 융통성. 요리를 특별한 셰프의 영역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의 재미로 만들어낸 백종원은 요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한다. 그의 방식은 놀랍게도 그저 요리만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난해한 영역인 교육에 대한 본연의 질문까지 던지게 한다. 이것이 그저 요리 잘하는 백종원을 넘어, 인간 백종원의 내공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집밥 백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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