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의 포스터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의 포스터 ⓒ CJ E&M(주) 투니버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러브 레터> <4월 이야기>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이다. 2004년에 만들어진 <하나와 앨리스>의 속편으로 제작된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그 이야기가 있기 전에 두 사람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전작의 후반부에서 살짝 언급되는 앨리스(아오이 유우 분)가 이사를 온 옆집에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외톨이 하나(스즈키 안 분)가 산다는 대목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하나와 앨리스>의 이전 시간으로 가서 하나와 앨리스가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프리퀄(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내용을 담은 속편) 형식을 취한 '다음 이야기'다.

이시노모리 중학교로 전학 온 아리스가와 데츠코(앨리스)는 1년 전 3학년 2반에서 '유다가 4명의 유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고, 옆집에 사는 사람이자 유다와 동급생이고 1년째 등교를 거부하는 아라이 하나에게 유다 사건의 전모를 듣기 위해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여러 면에서 전작과 비슷한 듯 다르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의 한 장면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의 한 장면 ⓒ CJ E&M(주) 투니버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전작과 장르적인 색채를 달리한다. <하나와 앨리스>가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라는 삼각관계로 구성된 멜로 영화였다면,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유다는 정말 살해당했을까?"를 밝히는 미스터리 구조를 취했다. 묘사법에서도 차이점은 뚜렷하다. 전작은 실사였고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전작으로부터 1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에 출연 배우들의 외모엔 세월의 흔적이 더해졌다. 실사로 속편이 제작되었다면 분장을 하거나 아예 어린 배우들을 기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하면 목소리만 빌려주면 되기에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모두 속편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배우들의 진짜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사라진 점은 아쉽다.

애니메이션이란 문법을 사용하면서 얻게 된 장점은 더 있다. 2층에서 떨어지는 앨리스의 장면처럼 물리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상상력을 자유로이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러브 레터>에서 사나에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스즈키 란란은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에서 결계를 만드는 의문의 학생 무츠 무츠미로 등장하며 세월과 영화를 건너뛰어 두 캐릭터 간에 기시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나와 앨리스>에서 실사로 나온 발레교실, 꽃의 집 등의 풍경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이와이 슌지 감독은 하나와 앨리스가 같이 걷는 장면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닮은꼴로 넣어 전작과 비교하는 재미도 선물한다.

<하나와 앨리스>와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도화지와 펜은 다를지언정 성장의 한 페이지를 섬세하게 써내려가는 시선은 변함없다. 아빠에게 달리기가 빠르면 무엇이 좋으냐며 앨리스는 투정을 부리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진심과 하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달리기는 자연스레 녹아들어 따뜻함을 더한다.

하나가 앨리스에게 진심을 털어놓으면서 친구로 마음을 여는 장면은 감독의 원숙한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배경 음악이 흐르고 하나와 앨리스가 밤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별과 어우러진 그 순간은 놓칠 수 없는 올해의 명장면이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의 한 장면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의 한 장면 ⓒ CJ E&M(주) 투니버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2년 작품인 <살다>의 몇 장면을 인용했다. <살다>는 암에 걸려 죽어가는 남자가 죽음과 마주하는 끝자락에서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살다>에서 주인공이 함께 일하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며 새롭게 태어나는 장면과 마지막에 자신이 만든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장면은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에서 앨리스가 할아버지를 만나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놀이터를 가는 장면으로 재현된다.

이것은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바치는 존경의 의미도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와이 슌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의 연장선에서 읽어봄 직하다.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접하며 느낀 이와이 슌지 감독의 고민은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로 이어졌다.

많은 이의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있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를 거쳐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에서 <살다>를 인용하며 한 걸음 더 해답을 찾아간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외톨이였던 하나가 앨리스라는 친구를 얻으면서 세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와 앨리스가 함께 걷는 장면으로 끝나며 전작과 연결된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장면은 <살다>의 서사가 살짝 입혀지면서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다."란 의미로 발전한다.

<러브 레터>의 "건강하세요? 저는 잘 지냅니다"를 슬쩍 빌려 표현하자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이와이 슌지 감독은 "우리는 잘 지냅니다"라고 응답한 셈이다. 더불어 3·11을 겪은 일본 사회에 이와이 슌지는 위로를 건네며 상처를 딛고 함께 걷자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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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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