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월은 가정의 달. 어버이날이 있는 달이다. 5월 7일, 이것저것 아이들과 함께 뚝딱뚝딱 편지도 써 보고, 카네이션도 만들어 보고. 또, 어버이날을 위해 비밀리에 깜짝 영상도 제작했다. 그렇게 아이들의 어버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로 바쁜 5월 7일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 그래. 나에게도 나를 지켜주는 '학부모님' 있는데 말이야.

나는 부모님께 그다지 좋은 아들은 아니다. 막내가 부리는 애교도 없고 집에 들어오고 나면 그냥 몇 마디 나누다 이내 방에 들어가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은 참 마음 불편한 달이다. 아이들한테는 매일같이 가족의 중요성, 아름다움, 사랑을 강조해 놓고선 정작 나는 외면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알면 혼날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이들한테 혼나기 전에, 이번에는 '효자인 척'이라도 해보자. 괜히 이번 달마저도 어영부영 보내지 말고 말이다. 그날 저녁, 나는 나의 부모님께 우리 반 수업을 보러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내 수업 사진들을 보여드렸을 때 그 좋아하시는 드라마도 끄고 사진에 폭 빠져 있는 부모님을 보며 언젠가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보신 적은 없으셨기에, 항상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아이들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머릿속으로만 상상하시며 기특해하던 부모님이시기에 더 늦기 전에, 꼭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5월 21일로 아이들의 학부모가 아닌 나의 아주 특별한 '학부모 공개수업'이 정해졌다(보통 '학부모 공개수업'이라하면 '아이들의 학부모님들'께서 직접 수업을 참관하는 공개수업을 말한다).

대학 시절 실습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공개수업들을 해왔지만, 이렇게 떨리기도 처음이다. 공개수업에 대해 크게 부담도 없는 편이고 크게 긴장도 하지 않는 편인데도, 나의 부모님이 오신다는 사실은 날 이렇게 부들부들 만들었다. 5월 21일 아침, 왠지 정말 왜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님과 정~말 어색한 아침인사를 나누고 나는 먼저 학교에 도착했다.

"얘들아, 이번 2교시는 정말 특별한 2교시가 될 거야."
"왜요?" "뒤에 의자 보이지? 이제 그 의자에 선생님 부모님께서 앉으실 거야."
"엥? 진짜요?" "선생님한테도 부모님이 있어!"
"그러엄, 선생님한테도 부모님이 있지! 이제 오셔서 선생님이 수업하는 걸 보실 거야."
"왜요? 왜요?"
"보고 싶어 하시니까! 선생님이 부모님께 드리는 어버이날 선물이야!"
"어버이날 지났는데요?" "선생님 나이 물어봐야겠다!" "여자친구 있는지 캐묻자!"
"으이구, 아무튼 선생님이랑 똑같이 생긴 분들이 들어오셔도 당황 말고 평소에 하던 대로 하는 거야. 알겠지?"

아이들에게는 아주 낯선, 그리고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두 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나는 초긴장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의 굳은 표정에서도 나는 묘한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아들의 수업에 당신들이 더 긴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끝나고 나니 손에 땀이 가득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선생님, 말 막 더듬었어요!", "왜 쌤 갑자기 교실 뒤에는 도와주러 안와요?", "완전 안절부절 하는 거 같았어요." 날 놀려대는걸 보니 왜 수업이 기억에 남질 않는지도 알만했다.

'어제 선생님 부모님께서 오셨는데 매우 닮았다.'
'선생님께도 부모님이 있어서 놀라웠다.'
'선생님이 그렇게 떠는 건 처음 봤다. 그런데 나도 어버이날 편지를 부모님께 줄 때 떨었었다. 난 그 마음 안다.'
'저번에 우리 엄마가 와서 우리 반 수업 볼 때 나도 엄청 긴장됐었는데 아마 선생님도 그런 것 같았다. 선생님이 좀 귀여웠다. (죄송^^)' 
[다음 날, 아이들의 아침 한 줄 글쓰기 중에서]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의 편지
ⓒ 고상훈

관련사진보기


사랑하는 아들 상훈아!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우리 아들이 새싹같은 어린이들 앞에서 수업하는 모습을 보다니! 참으로 대견하고 가슴이 뿌듯했다. 집에서 보던 아들이 논리 정연하게 가르치는 걸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이었다. 교감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 나누었는데, 칭찬 많이 해 주셔서 고마웠다. 앞으로도 모든 면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해서 초심을 잃지 않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거라! 사랑하는 아빠가.

내 아들 상훈이에게. 올해 담임을 맡고 가르치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오늘 공개수업에 초대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이런 것은 사소한 것이지만 용기가 필요할 텐데. 정말 대견스럽고 오늘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네가 태어난 날도 하늘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지만, 오늘은 그 다음으로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이구나. 항상 퇴근하여 오면 기가 다 빠져서 녹초가 된 네 모습을 보면 안쓰러웠는데, 오늘 아이들과 생기 있고 자연스럽게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아들아 사랑한다. 엄마가.

다음날, 금요일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조촐한 공개수업 뒤풀이를 했다.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모여 앉아 집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얼마만인지 싶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또, 나의 부모님에게도 특별하고 소중했던 어버이날 특집 학부모 공개수업이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5월 22일 뒤풀이 현장
 5월 22일 뒤풀이 현장
ⓒ 고상훈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 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