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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70.9%로 1위이다. 10명 중 7명이나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셈이다. 서열화 된 대학은 대학에 진학한 사람을 좋은 대학에 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경쟁은 울타리 밖의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을 경쟁조차 불가능한 '하위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대학 서열은, 좋은 대학에 들어갈수록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지위는 더 높아지고, 생애소득은 더 많아진다는 사고를 사회에 뿌리 깊게 심었다. 학문을 연구한다는 대학의 본질과는 다르게 대학은 앞으로의 인생을 험난하게 살 것인가, 풍요롭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됐다. 사회는 대학을 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넌 능력이 부족하고 열등하므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해'라고 낙인찍는다. OECD국가 중 대한민국이 대학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의 임금격차가 가장 큰 것이 이를 설명한다.

어디서든 요구하는 대학자격증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 내용 재가공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 내용 재가공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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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포털 <커리어>는 자사 회원 중 고졸 직장인 357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지난 4월 23일 밝힌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가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 졸업장이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을 나누는 자격증으로 전락한 것이다. 응답한 고졸 직장인 중 49.02%가 이러한 학력 차별에 맞서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 대학진학을 희망하거나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졸학력자 취업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부 역시 대학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 조사결과 임상심리사 자격증 취득조건의 경우 '학과에 상관없이 4년제 대학졸업자 또는 대학졸업 예정자 + 1년 이상의 실습수련 또는 2년 이상 실무에 종사한 자'만 응시할 수 있다. 고용부는 임상심리사의 경우 환자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건강 관련 업무를 수행하므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해 임상심리사 2급 자격시험 응시요건을 '대학졸업(예정)자'로 정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전문대에서 심리학 관련 학과를 전공하거나 사이버대학에서 관련 과목을 이수해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해도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반면, 심리학 관련 과목을 한 차례도 수강한 적이 없는 4년제 대학졸업자는 응시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 자격증이 성실함, 능력을 대변하는가?

"대학 나온 사람들 모두가 실무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지는 않아요. 4년제 호텔조리학과에서 조리를 배우고 들어온 사람들은 다 그만뒀거든요. 저는 그들이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성실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이 학교에서 보낸 시간 동안 저는 직접 부딪치면서 값 진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월 매출 2억 원이 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문신권씨는 말했다.

"기초지식은 휴일에 책을 통해 틈틈이 익혔고 조리 관련 자격증도 따왔어요. 현장에서는 연륜 있는 선배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다 따라하려고 노력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에 이러한 노력들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2014년 대학진학을 거부하고 사진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황채연씨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업은 대학의 간판이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 지 알려준다고 말하지만 입시경쟁에서 성적우위를 차지했다고 그 사람이 무조건 성실하다고 평가할 순 없어요. 저는 사진모델로 일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사진 찍는 게 취미가 됐어요. 매일 수십장씩 사진을 찍었고 매번 사진사들과 제가 찍은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보니 빛을 조절하거나 구도를 잡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블로그 활동을 하다보면 사진학과를 나오거나 재학 중인 사람임에도 빛을 다루거나 구도를 잡는 기초적인 사진기술이 모자란 경우를 보게 됩니다. 저는 사진은 이론과 실제가 함께 병행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노력이에요. 항상 이론을 뒷받침하는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대학에서 사진을 배웠다고 대학 이외의 곳에서 배운 사람보다 무조건 우수하다고 판단 할 수는 없어요."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이 낳는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뛴다.

대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대학을 가지 않는 10명 중 3명에 해당하는 그들에겐 분명 꿈이 있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대학을 포기했거나 능력이 부족한 하위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명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더 노력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 모두 대학을 가는 방법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이 낳는 차별 때문에 대학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가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현실이다. 지금처럼 차별을 조장하는 대학의 역기능이 지속된다면 학생들은 대학 선택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한다. 사회에서 쌓아온 경험과 대학에서 쌓아온 지식을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10명 중 3명이 아닌, 10명 모두를 위해 대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어야만 한다.


태그:#고졸 차별, #대학 졸업장, #대학 자격증, #대학 의무, #대학 진학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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