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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한 백인천. 생각보다 빠르게 1년 반 만에 1군으로 올라가는 기회를 잡게 된다.
 일본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한 백인천. 생각보다 빠르게 1년 반 만에 1군으로 올라가는 기회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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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수 : "넘어갑니다!"
백인천 : "요시 그란도시즌!"
임용수 : "시즌 1호 홈런, 이승엽!"
백인천 : "요시, 좋다!"
- 2008년 7월 27일, <SBS 스포츠> 일본프로야구' 중계에서


당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던 이승엽 선수는, 2008년 부진한 시즌을 맞고 있었다. 시즌이 중반을 돌던 7월 27일에서야 시즌 1호 홈런을 터트렸다. 무려 299일이나 기다린 '손맛'이었다. 바로 그 경기의 중계였다. 탄성을 지른 해설위원은 삼성 시절, 이승엽의 스승이었던 백인천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백인천 리더십 <백인천의 노력자애>
▲ 책표지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백인천 리더십 <백인천의 노력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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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사의 '역대급' 유행어라 평가되는 '요시 그란도시즌'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요시'는 일본말로 '좋다'는 뜻이고, '그란도시즌'은 영어 '그랜드 시즌(Grand Season)'의 일본식 발음이다.

그때 백인천 해설위원이 환호하며 내뱉은 "요시 그란도시즌"은 야구팬 사이의 이른바 '예송논쟁'을 불러왔다. 정말로 백인천 해설위원이 "요시 그란도시즌"이라고 말한건지, 아니면 "하나, 둘, 셋이야"라고 말한건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실제로 해당 발언 이전까지, 백인천은 해설 도중 여러 차례 "하나, 둘, 셋" 타격 타이밍에 맞추어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뜨거웠던 뒷말에도 백인천 위원은 그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 사실이 무엇이든 "요시 그란도시즌"은 인터넷에서 유행어가 됐고,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다. 인상적이거나 강렬한 일에 대한 감탄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중 백인천 위원(현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의회장)의 자서전 <백인천의 노력자애>가 지난 4월 출간됐다. 야구계의 '예송논쟁'은 끝나는가. 참을 수 없이 궁금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한국 야구사의 한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재미난 일화가 넉넉히 실려, 허기짐을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몇 가지를 소개한다.

'스케이트'와 '야구'의 양다리, KBO 4할 기록 없을 뻔

경동고 시절의 백인천. 스케이트 선수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경동고 시절의 백인천. 스케이트 선수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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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르면, 백인천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접했지만 스케이트에도 재미를 붙였다. 아버지를 졸라 장만한 스케이트를 신고 눈만 뜨면 수유리의 논에서 온종일 스케이트를 탔다. 경동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세계빙상선수권대회 대표 선발전 예선에서 500미터와 1500미터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일본에 진출하며 야구를 택했지만, 당시 스케이트를 통한 하체 단련은 야구생활에도 도움이 많았다고 했다. 겨울에 스케이트를 탔으니 자연스레 동계훈련이 된 셈이다. 만약 스케이트로 진로를 결정했다면, 지금 KBO의 유일한 '4할 타자' 기록은 없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백인천의 일본 진출에는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군대'였다. 일본 구단인 '도에이'와 계약한 시기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이듬해였다. 특히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소장과 더불어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던 실세, 육군 준장 이주일은 대한체육회장도 겸하고 있었다. 일본 구단과의 가계약 사실이 알려지자, 그가 백인천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호출했다. 후에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도 당시에는 이주일의 참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주일은 '여론조사'를 통해 진출을 결정해보라고 대한야구협회장에게 지시했다. 사회 여론 주도층의 의견을 들은 결과,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게 백인천의 일본 진출은 결정됐다. '백인천이 여론조사 끝에 일본에 진출했다'는 얘기는 여기서 비롯됐다. 다만 '2년 뒤 귀국해 병역을 마칠 것'이란 단서가 붙었다.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 이유는?

1963년 '도에이 플라이즈'에서 1년 반 만에 1군 승격 후의 백인천. 7번 (사진 맨 우측)이 백인천이다.
 1963년 '도에이 플라이즈'에서 1년 반 만에 1군 승격 후의 백인천. 7번 (사진 맨 우측)이 백인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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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롯데 오리온스' 시절 백인천의 타격 모습.
 일본 '롯데 오리온스' 시절 백인천의 타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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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백인천의 포지션은 포수다. 외야수로 전성기를 맞아 야구팬들에게 '포수 백인천'이 낯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야구를 시작하고 계속해서 포수로 뛰었다. 그러던 중, 백인천의 포지션 변경은 정말 '우연한' 계기로 벌어졌다. 일본 진출 후 이미 두 시즌을 1군 포수로 보낸 뒤였다.

포수는 다른 포지션보다 장비가 많다. 특히 다른 포지션에서는 쓰지 않는 '마스크'를 쓴다. 투수의 공을 직접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꼭 필요한 보호 장비다. 그런데 시즌 중, 이 마스크를 쓸 수가 없게 됐다. 바로 턱에 난 '뾰루지'때문.

책에서 그는 당시 상황을 직접 기술했다. 전화위복이었다. 오히려 포지션을 변경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썼다.

1965년 시즌 도중 턱에 뾰루지가 났다. 원래 나는 여드름이 많은 편이었는데 뾰루지까지 나는 바람에 마스크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이 외야수 전향을 지시했다. 나의 외야수 전향은 오른손 강타자가 부족했던 팀 사정도 작용했다. 강한 어깨와 파워 넘치는 타격도 고려한 조치였다.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외야수로 변신한 것이 주효한 덕분이다. - <백인천의 노력자애> 본문 중에서

백인천은 1963년 '도에이 플라이어즈'를 시작으로 1984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은퇴하기까지 일본에서 19년, 한국에서 3년을 프로야구선수로 살았다. 1975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수위타자를 하기도 했고 1982년 한국에서 그가 세운 타율 '0.412'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14년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시상식에서 황대인 선수에게 'BIC 0.412 상'을 수여하는 백인천.
 2014년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시상식에서 황대인 선수에게 'BIC 0.412 상'을 수여하는 백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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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그가 현역을 은퇴하고 감독으로의 삶, 또 이런저런 강의에서 활용한 원고 등도 함께 실렸다. LG 감독 시절의 이야기에서는 팬들에게 붙들려 '노상 청문회'를 당했던 섭섭함도 묻어났다. 삼성 감독 시절, 입단 2년 차 이승엽 선수를 만난 인상도 적었는데 마치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았다고 술회했다.

"스승님은 야구선수는 언제, 어느 날 성적이 터질지 모르니 하루라도 훈련을 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당신 경험에 비추어 스윙부터 시작해서 홈런왕에 걸맞은 타자가 될 수 있도록 설명해주셨다. 스승님 말씀에 따라 몸에 배도록 훈련을 계속한 나는 1997년 32홈런을 기록, 어느새 홈런왕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 - 이승엽, <백인천의 노력자애> '추천사' 중에서

지난 5월 16일, 한국야구위원회는 올 시즌 프로야구 관객수가 2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지난 시즌 프로야구 총 관객수는 675만 명에 달했고, 한국야구위원회는 올해 목표치를 역대 최다인 836만 명으로 설정했다.

백인천이 꼽은 한국프로야구 올스타
포수 : 박경완
1루수 : 이승엽
2루수 : 박정태
3루수 : 한대화
유격수 : 김재박
외야수 : 장효조·김일권·이순철
지명타자 : 양준혁
투수 : 송진우

- <백인천의 노력자애> 본문 중에서
분명 프로야구 초창기에 비해 지금은 많이 변화했다. 관객의 폭도 넓어졌고, 야구장에서 제공하는 볼거리·즐길거리도 다양해졌다. 그에 따라 한국야구의 역량도 상승했고 많은 기록들이 쏟아지고, 또 깨지고 있다.

그러나 백인천의 최고 타율 기록만은 넘기가 힘들어 보인다. 가장 근접했던 1994년 당시 해태 이종범의 타율은 '0.393'이었다. 4할을 넘지 못했다.

그래도 언젠간 깨지리라 믿는다. 과학적으론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걸 넘어서기 위해 존재하는 게 기록이리라. 백인천 자신도 내심 바라고 있지 않을까. 이번 시즌도 기대한다. 한국야구, "요시, 그란도시즌!"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백인천의 노력자애> (백인천 지음 / 스타리치북스 펴냄 / 2015.04 / 2만 원)



백인천의 노력자애

백인천 지음, 스타리치북스(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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